여름을 서늘하게 하는 타워형 놀이기구

  • 입력 2000년 8월 2일 18시 34분


“무섭고 짜릿해요. 한여름 무더위를 말끔히 씻어내리는 놀이기구죠.”

최근 서울랜드 롯데월드 등 놀이공원에 잇달아 등장해 인기몰이에 나선 타워형 놀이기구가 여름철의 새로운 놀이기구로 주목받고 있다. 무더위를 잊게 해줄 새로운 ‘납량’(納凉) 놀이라는 것이다.

올해 4월 문을 연 서울랜드의 ‘샷 드롭’은 이미 10만명 이상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고, 지난달 20일 개장한 롯데월드의 ‘번지드롭’ 역시 실내에 울리는 비명의 새로운 진원지가 되고 있다.

보는 것만으로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이 기구들. 이색경험을 넘어서 공포와 스릴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사람들은 왜 이런 공포속에서 더위를 잊는다고 하는 걸까?

놀이기구―공포―더위의 매듭을 과학으로 풀어보자.

▽타워형 놀이기구 어떻게 작동하나〓타워형 놀이기구에는 크게 세 종류가 있다. 먼저 승객을 실은 탑승물을 아래에서 위로 로켓처럼 수직 발사한 뒤 천천히 하강시키는 샷(shot) 기종. 한때 드림랜드에서 운영했던 ‘스페이스 샷’과 같은 것이다. 이와 반대로 롯데월드의 ‘자이로 드롭’처럼 탑승물을 높이 끌어올린 뒤 자유낙하시키는 드롭(drop) 기종이 있다.

최근에 선보인 시설들은 모두 이 두 방식을 결합한 제3의 유형. 압축공기를 이용해 탑승물을 위로 약 35∼36m 높이까지 최고 시속 85∼90km로 쏘아 올린 뒤 꼭대기에서 그대로 떨어뜨리거나 다시 아래로 발사하는 방식이다. 떨어지는 속도도 이만큼 빠르다. 게다가 중간에 좀더 낮은 속도로 2, 3차례 위아래 왕복운동까지 한다. 떨어질 때는 지상 7∼10m 높이에서부터 제동을 시작해 탑승물을 안전하게 착지시킨다.

▽공포 뒤에 숨은 관성의 생리〓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릴 때 누구나 몸이 땅으로 꺼지는 느낌이나 가벼워지는 느낌을 경험한다. 이 느낌은 원래의 운동상태를 유지하려는 경향인 관성 때문에 생기는 것. 그러나 실제로는 다른 외부의 힘이 가해지지 않기 때문에 관성에 의해서 받는 관성력은 가상적인 힘이다. 엘리베이터가 정지해 있든 움직이든 항상 지구중심을 향해 아래로 중력이 작용하고 있으므로 사람들이 느끼는 힘은 이 관성력과 항상 작용하고 있는 중력을 합한 무게감(G forces)이다.의 크기는 중력+관성력이 된다. 이 무게감의 정도를 보통 G로 표시하는데, 무게감(또는 중력가속도+가속도)을 중력(또는 중력가속도)으로 나눈 값에 해당한다. 따라서 지상에 가만히 서 있는 사람이 느끼는 G는 1. 만약 G가 3이라면 체중의 3배에 해당하는 무게감을 느끼는 것이다.엘리베이터가

정지해 있는 상태에서 빠른 속도로 올라갈 때 관성력은 중력과 같은 방향인 아래쪽으로 작용해 G가 1보다 큰 값을 가진다. 이때 사람은 몸이 무거워지는 듯 느낀다. 반대로 올라가다 멈출 때는 위로 관성력이 작용해 G가 1보다 작아지기 때문에 가벼워지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느낌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G의 크기에 따라 인체 생리도 변하기 때문이다. G가 높을수록 피가 아래로 쏠려 뇌에 산소부족 증세가 나타난다. 심한 경우에는 모든 게 흑백으로 보이면서 정신을 잃는 블랙아웃(blackout) 현상이 일어난다.건강한 성인이 견딜 수 있는 +G의 한계는 6∼8. 그러나 4G 이상일 때 10초 이상 지속되면 위험하다.

―G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장기의 위치와 기능에 악영향을 주고 뇌에 피가 몰리면서 의식을 잃는 레드아웃(redout) 증상을 일으킬 수 있다. ―5G일 때 수 초, ―3G일 때 20∼30초 정도가 사람이 견딜 수 있는 최대시간으로 알려져 있다.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는 속도는 평균적으로 시속 10km 내외. 시속 85∼90km로 움직이는 타워형 놀이기구들은 엘리베이터보다 8∼9배 이상 빨리 올라가고 떨어지는 셈이다. 이때 탑승객은 느끼는 무게감도 올라갈 때 2.5∼4G, 내려올 때 0∼―1G의 무게감을 느낀다.돼 속도와 높이 때문에 느끼는 공포감을 증폭시키는 것이다. 현재의 기구로도 공중을 가르는 공포와 몸의 변화를 짧지만(2초 내외) 맛볼 수 있다는 얘기다.

▽더위를 잊는 새로운 방식〓공포에 대한 반응은 체질에 따라 개인차가 있지만 소름이 끼치고 오싹한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 이때 반응은 대뇌에 있는 편도핵이 관장하는데, 공포에 의한 오싹함과 추위로 인해 몸이 변화하는 메커니즘은 같다.

공포자극이 오면 편도핵은 대뇌피질 청반 시상하부에 신호를 보낸다. 대뇌피질은 전(前)전두엽을 자극해 공포감을 지각하고, 청반은 교감신경을 자극한다. 시상하부는 한편으로는 뇌하수체에 신호를 보내 스트레스를 받을 때 나오는 코티졸이라는 호르몬을 분비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바로 자율신경계통을 자극한다.

자율신경계통이 자극을 받아 흥분하면 피부혈관에 혈액공급이 줄어들고 근육이 수축해 소름이 돋고 추위감을 느낀다. 이것은 추위를 느낄 때 시상하부가 내리는 체온조절 명령과 같은 현상. 결국 공포를 통해 더위를 잊는다는 게 근거없는 얘기가 아닌 셈이다.

한편 삼성의료원 유범희교수(정신과)는 “공포자극은 쾌락과 관계된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을 분비시켜 비단 오싹하는 신체변화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쾌감도 동시에 느끼게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공포와 쾌락의 생리적 함수관계를 풀이했다.

그러나 그는 “심장질환과 고혈압 환자, 체질적으로 스트레스에 약한 사람들은 과도한 공포감에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신동민과학동아기자> hisd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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