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놈비밀 해독]포스트게놈시대시대 기대와우려

  • 입력 2000년 6월 27일 19시 22분


유전자 세상, 게노토피아(Gen-otopia)는 유토피아인가 디스토피아인가?

인류가 마침내 ‘생명의 설계도’를 손아귀에 넣었다. 숱한

질병을 정복하는 길이 열린 것은 물론 철학자의 ‘초인(超人)’을 탄생시키는 것도 현실로 다가섰다. 노화의 비밀이 풀려 ‘진시황의 꿈’이 실현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복잡한 윤리적 문제가 얽혀 있어 인류가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는 비판도 만만찮다.

▽초인의 탄생〓독일 칼스 루어대의 철학교수 페터 슐로트치크는 얼마전 유전자 조작으로 프리드리히 니체가 예언한 ‘초인’을 탄생시킬 수 있다고 주장해 유럽 지성계의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 논쟁은 ‘맞춤아기’ 논란과도 직결된다. 환자로부터 나쁜 유전자를 제거하고 정상 유전자를 넣는 유전자 치료는 1990년 미국에서 처음 성공했다.

일부에선 유전자 치료의 대상을 수정란 단계까지 거슬러 올라가 질병의 싹을 미리 없애버리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질병을 일으키는 유전자가 다른 질병에 대한 저항력을 길러 주기도 한다.

예를들어 특정 빈혈증을 일으키는 유전자는 말라리아에 대한 저항력을 길러준다. 따라서 나쁜 유전자를 없애는 것이 인류의 진화에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게다가 사람의 꿈은 무한하다. ‘정상’ 유전자 대신 ‘좋은’ 유전자를 넣으려는 시도가 따를 것이다. 부모들은 높은 지능과 뛰어난 예술적 감성,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맞춤아기’를 원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아무리 완벽하게 보이는 유전자도 후천적 환경에 지배받는다는 사실이 증명되고 있다.

다른 환경이 똑같을 때 어미 쥐가 쓰다듬어 키운 쥐는 그렇지 않은 쥐보다 훨씬 건강해진다는 것이 밝혀졌다. 사춘기 때 큰 충격을 받으면 유전자가 ‘정상을 벗어나는’ 돌연변이를 일으킨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불로장생의 꿈〓미국 캘리포니아기술연구소의 시무르 벤저박사는 사람이 무려 1200세까지 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생체시계를 발견한 것으로 유명한 그는 병 속에 모아둔 초파리 중 다른 초파리보다 30% 이상 오래 사는 돌연변이 초파리를 발견, 유전자를 추출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 유전자에 969세까지 살았다는 유대인 족장 므두셀라의 이름을 붙였다.

벤저박사는 “사람에게도 이런 유전자가 있을 것이며 배아나 신생아의 유전자를 조작하면 이론상 1200세까지 살 수 있다”면서 “삶에서 생체시계가 무의미해지는 대신 삶이 하나의 시나리오가 된다”고 말했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끊임없는 유전자 조작으로 100세 할머니가 20대의 아름다운 얼굴과 눈부신 몸매까지 갖고 살 수도 있다.

그러나 이 할머니가 유전자 조작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한 30대 남성과 ‘사랑’을 나눈다면…?

▽유전자 불평등〓초인이나 불로장생의 꿈이나 이로 인한 갈등은 당장 현실로 다가설 가능성이 적다. 그러나 유전자의 그늘은 현재 엄존한다.

미국에선 유전적으로 문제가 있을 소지가 있으면 보험 가입이나 취업 등에서 피해를 본다.

이 때문에 나쁜 유전자를 갖고 있으면 사회적 환경도 나빠지고 나쁜 환경이 유전자를 나쁜 방향으로 돌연변이시키는 ‘유전자 빈곤의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유전자 빈민’과 유전자를 계속 개량하는 사람의 격차는 갈수록 커질 것이다.

유전자 계급사회를 그린 영화 ‘가타카’가 꿈이 아닌 현실로 나타날지 모른다. ‘유전자 상류층’은 하층 계급을 지배하려 들 것이다. DNA칩 등 유전자 인식기술의 발달로 피 한방울만 있으면 심리성향 가족상황까지 모두 파악할 수 있게 되는 사회에서….

<이성주·이호갑기자> stein3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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