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독서]'디제라티…'/사이버시대 이끄는 파워엘리트들

  • 입력 1999년 10월 1일 19시 13분


▼'디제라티, 디지털시대의 파워엘리트' 존 브록만 지음/황금가지 펴냄▼

92년1월 뉴욕타임스는 인류언어사에 새롭게 추가될 단어 하나를 만들어 굵은 활자로 지면에 인쇄했다. ‘디제라티(Digerati)’.

디지털(Digital)과 지식계급(Literati)의 합성어인 이 단어는 ‘탁월한 지적 능력으로 디지털혁명을 주도하는 선택된 자들’을 가리키는 신조어. 이제는 웹스터사전에까지 올라 보통명사로 인정받았다.

미국의 일급 과학기술평론가이며 디지털출판사 콘텐트콤의 설립자 겸 회장인 저자는 ‘미국의 디제라티 1세대’ 33명을 선정, 인터뷰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아메리카온라인(AOL)의 설립자인 스티브 케이스, 가장 영향력 있는 과학기술잡지 ‘와이어드(Wired)’의 편집장 케빈 켈리, MIT의 과학사회학교수 셰리 터클, 미래연구소 소장 폴 세이포, 싱킹머신즈의 공동설립자 다니엘 힐리스,예일대의 컴퓨터과학자 데이비드 갤런터…. 33명의 이름과 직함 그들이 사이버세계에서 이룬 업적 한두가지를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A4용지 몇장이 빡빡하게 채워진다.

그러나 이 책은 한달에도 몇권씩 쏟아지는 ‘인터넷 신흥갑부들’의 화려한 성공담이 아니다.

사업가 과학자 사회학자 평론가 변호사 출판인 시민운동가등 33인의 디제라티는 직업과 디지털화에 대한 전망이 제각각이다.

그러나 현재의 통신혁명을 단순한 기술적 변화가 아니라 ‘앞으로 1000년 동안 인류의 삶을 방향 지을 문명사적 전환’으로 인식한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그래서 이들의 발언은 ‘디지털’이라는 말이 막연히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간주되는 한국에서 삶이 디지털화된다는 게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프랑켄슈타인박사가 그의 창조물을 짜맞춘 것처럼 우리도 인터넷과 월드와이드웹을 통해 새롭게 확장된 우리 자신을 창조하고 있다. …내가 인터넷이고 내가 월드와이드웹이며 내가 정보이고 내가 바로 콘텐트이다. 그것(디지털혁명)은 컴퓨터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의사소통에 관한 것이다.’

‘현세대의 우리는 엄청나게 많은 업보를 쌓고 있다. 그 이유는 현세대가 앞으로 천년동안 가동될 컴퓨터 네트워크와 소프트웨어 기반을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창조적인 혼란의 순간’에 놓여있다. 나는 우리가 아직 가상세계에 빨려들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전적으로 현실세계에서만 살아갈 것도 아니라고 확신한다. 우리는 두 세계 사이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것이다.’

형식상으로도 이 책은 마치 여러개의 창을 동시에 띄워놓은 컴퓨터화면 같다. 빌 게이츠의 발언이 실리는 장에 ‘사람들이 빌을 소프트웨어의 귀재라고 생각하는 동안 그는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장사꾼이 되어버렸다’고 비꼬는 촌평이 함께 실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 언급된 33인이 미국 디제라티 1세대의 ‘1위부터 33위’는 아니다. 일례로 넷스케이프의 창시자 마크 안드레센이 빠진 것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 부분. 원문을 매끄러운 한국말로 옮기지 못한 번역도 흠이다. 430쪽 1만2000원.

〈정은령기자〉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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