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e설] 올해 순직한 언론인 45명 중 28명이 암살, 이유보니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26일 17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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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말 카슈끄지. AP 뉴시스
자말 카슈끄지. AP 뉴시스
사우디라아비아 출신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결혼 관련 서류 발급을 위해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사우디 총영사관에 들어간 것은 2일 오후 1시 15분이었다. 그는 총영사관에 대기하던 사우디 요원들에 의해 바로 총영사 집무실로 끌려가 고문을 당하기 시작해 손가락이 절단되고 참수됐으며 바로 그 자리에서 사체가 토막났다. 불과 2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CNN은 22일 카슈끄지가 사우디 영사관 안으로 들어간 지 몇 시간 후 영사관 뒷문으로 카슈끄지처럼 보이는 남성이 걸어 나오는 화면을 보도했다. 이 남성은 카슈끄지의 옷을 입었고, 안경과 시계도 착용했다. 흰색 수염까지 가짜로 붙였다. 그는 암살팀 15명 중 한 명인 무스타파 알 마다니였다. 카슈끄지가 제 발로 영사관을 걸어 나간 것처럼 보이기 위해 체격이 비슷한 대역을 미리 준비한 것이다. 이들은 당일 전세기로 이스탄불에 입국해 당일 모두 터키를 떠났다. 철저히 계획된 암살이었다.

워싱턴포스트(WP)에 실린 카슈끄지의 마지막 칼럼. WP 홈페이지 캡처
워싱턴포스트(WP)에 실린 카슈끄지의 마지막 칼럼. WP 홈페이지 캡처


▷카슈끄지가 실종되기 이전부터 사우디아라비아의 인권침해는 극심했다. 사우디의 사실상 통치자인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는 지난해부터 ‘부패청산’을 내세워 대대적인 숙청작업을 벌였다. 라이벌 왕족과 전·현직 장관, 기업인은 물론 성직자, 언론인들을 무차별 투옥했다. 워싱턴포스트(WP)가 17일 공개한 카슈끄지가 실종 직전 써놓은 마지막 칼럼 제목은 ‘아랍에서 가장 필요한 건 표현의 자유’였다. 그는 칼럼에서 “아랍 정부는 언론을 침묵시키기 위해 공세를 하고 있다”며 “이들은 적극적으로 인터넷을 차단하고 현지 기자를 체포한다”고 썼다.

언론인보호위원회 홈페이지 캡처
언론인보호위원회 홈페이지 캡처


▷국제언론단체인 언론인보호위원회(CPJ)에 따르면 올해만 45명의 언론인이 순직했다. 절반이 넘는 28명이 암살됐는데 이 가운데 22명이 정치와 관련됐다. 최근 권력형 비리를 취재하다 암살당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만 해도 암살된 기자(18명)보다 사고로 숨진 기자(28명)가 많았다. 권력을 향해 비판의 날을 세울수록 위험해지는 것은 언론인의 숙명인 듯 하다.

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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