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석의 일상에서 철학하기]‘혼밥’의 지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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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 철학자·영산대 교수
김용석 철학자·영산대 교수
이마누엘 칸트는 통상 ‘머리에 쥐가 나게 할’ 정도로 어려운 철학이론을 전개한 학자로 알려져 있지만, 우리가 귀담아들을 만한 생활의 지혜를 전해주기도 했습니다. 칸트는 인간성에 걸맞은 복된 삶이란 “좋은 사람들과 함께 좋은 식사”를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일상에서 쉽지만은 않으니까 이런 말을 했겠지요. 여기서 칸트가 말하는 ‘좋은 사람들’이란 지인을 뜻합니다. 우리 일상에서는 가족과 식사를 하는 경우가 많으니 가정에도 칸트의 조언은 해당됩니다.

이에 덧붙여 함께 식사할 사람이 몇 명이면 좋을까 하는 아주 실용적인 조언도 했어요. 최소 인원은 ‘삼미신의 숫자’는 되어야 하고, 최대 인원은 ‘뮤즈의 숫자’를 넘지 않는 게 좋다고 했습니다. 모두 고대 신화에 등장하는 숫자인데요. 최소 인원이 세 명 미만, 즉 둘이라면 식사 도중에 대화가 끊길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지요. 셋 이상이면 대화가 계속 이어질 수 있다는 겁니다. 뮤즈의 숫자, 즉 아홉 명을 넘을 경우 우리도 일상에서 경험하듯이, 한 식탁에서 대화를 나눌 때 삼삼오오 작은 그룹으로 나뉠 가능성이 있어서 좋지 않다는 겁니다.

그런데 요즈음 ‘혼밥’, 곧 ‘혼자 먹는 밥’이 새로운 사회적 트렌드인 것 같습니다. 칸트의 입장을 따르면 혼밥은 사람들에게 복된 삶을 보장해 줄 것 같지 않습니다. 칸트는 또한 홀로 식사를 하면 과식을 하거나 아주 적게 먹을 가능성이 높아 건강에 좋지 않다고 합니다. 물론 대화를 나누지 않고 식사를 하니까 소화에도 도움이 되지 않겠지요.

그러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주거 형태, 직장 상황, 심리적 문제 등 여러 이유로 홀로 식사하는 불가피한 처지에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칸트의 유명한 사회철학적 명제처럼, 인간의 ‘비사교적 사교성’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즉, 사람은 ‘사회를 이루어 함께 살고자 하는 성질’과 ‘자신을 개별화하고 고립시키는 성질’을 모두 지니고 있는 모순적 존재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현대인들은 혼밥을 수용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자 또한 문화적 동물입니다. 사회활동뿐만 아니라 문화활동을 해야 사람답게 살 수 있습니다. 혼자 먹는 밥에는 분명 사회성이 배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문화적 요소마저 배제된다면 혼밥은 오로지 먹는 행위가 될 뿐이겠지요. 문화란 뭔가를 만들고 창조하는 행위입니다. 사회가 관계의 개념이라면, 문화는 창조의 개념입니다.

요리는 인간의 창조행위 가운데서도 독특한 것입니다. 특히 창조행위로서 요리에는 미세함의 미학이 본질적으로 깔려 있습니다. 요리에서는 미세한 차이로 맛이 확 달라지는 걸 인간 감각이 바로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혼밥이라도 즐겁게 요리해 버릇하면 섬세함과 정교함의 미적 능력이 길러져 일상의 다른 분야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지요. 가끔 하는 요리는 건강에도 좋습니다. 식사 전 요리하느라 몸의 움직임이 있기 때문에 육체 건강에 좋고, 창조행위의 하나이기 때문에 정신 건강에도 좋지요.

그러므로 혼자 하는 식사라도 주문배달이나 레디메이드 음식보다는 요리를 해서 준비하는 것이 단순한 혼밥 행위를 의미 있는 ‘혼밥 문화’로 만드는 지혜입니다. 비용 면에서 더 경제적일 수도 있습니다. 외식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집이라면 되도록 요리라는 일상의 미학적 예술적 문화행위를 향유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사회성과 문화성이 배제된 삶에 습관이 들 때는 삶의 의미 또한 조금씩 누수 현상이 보이는 법이랍니다.
 
김용석 철학자·영산대 교수
#칸트#식사#혼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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