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형의 생각하는 미술관]<5>결정의 순간, 선택의 기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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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클림트 ‘유디트 Ⅱ’(1909)
구스타프 클림트 ‘유디트 Ⅱ’(1909)
이탈리아 베네치아가 시(市) 차원에서 소장 미술품 판매를 검토 중이랍니다. 재정 악화 타개를 위한 선택이라는군요. 샤갈과 함께 낯익은 이름이 매각 우선순위로 거론됩니다.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입니다. 그는 저물어 가는 19세기의 근심과 새롭게 다가오는 20세기의 흥분이 교차하던 시기 오스트리아의 화가였어요. 산업혁명과 과학의 발달로 번영의 시기였지만, 세기말의 근심도 확산되던 때였지요. 시대의 우울을 지울 무언가를 찾던 당대인들은 예술에 의탁했습니다. 유례없는 예술의 전성기, 그는 관능적 미술로 시대에 화답했습니다.

특히 그는 퇴폐미가 물씬 풍기는 여성들을 즐겨 그렸어요. ‘유디트Ⅱ’처럼요. 그림의 주인공은 성서 속 구국의 여성입니다.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고 조국 이스라엘을 구했지요. 남녀가 생과 사를 넘나들며 펼치는 드라마틱한 사건은 미술의 비중 있는 주제였습니다. 특히 미술가들은 참혹한 살해 장면에 주목했습니다. 참수 현장의 처참함도 꼼꼼히 다루었어요. 애국 여걸이 억압과 불의에 맞서 승리와 정의를 거머쥐는 순간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클림트는 좀 다른 접근을 합니다. 그림에는 살해의 행위도 현장도 없습니다. 매혹적인 여성만 있습니다. 이 때문에 주인공이 요부 살로메라는 의혹도 따라다닙니다. 자태는 몽환적이고, 옷매무새는 단정치 못합니다. 잘린 남성의 머리가 살해의 유일한 단서입니다. 가는 손가락이 승리의 확증을 낚아채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마저 기하학적 패턴의 옷감에 가려 쉽게 눈에 띄지 않습니다. ‘어떻게 적진을 뚫고 들어가 힘센 침략자를 무찔렀을까.’ 화가는 사건의 전모 대신 한 가지 문제에 집중합니다. 유디트의 눈부신 매력입니다. 쾌락의 유혹입니다. 신비로운 살해자가 당대의 복잡한 속내를 드러냅니다. 육감적인 여성을 탐하면서도 이로 인한 파멸을 염려했던 세기말의 전전긍긍이었지요.

왜 하필 클림트의 ‘유디트Ⅱ’를 판매하려는 것일까요. 매각 기준은 베네치아와 관련이 있는지 여부랍니다. 이런 기준에 따라 베네치아 화파를 비롯해 도시와 관련된 미술품은 판매 보류되었습니다. 그 대신 타국 태생의 샤갈과 클림트가 우선 매각 대상이 된 것이지요. 정보 과잉의 시대 단호한 결정의 부담이 커져만 갑니다. 골라야 할 점심 메뉴이든, 논의해야 할 역사적 의제든 늘 어렵기만 한 결정의 순간, 명확히 해야 할 것은 선택의 기준이 아닐까요.

공주형 한신대 교수·미술평론가
#구스타프 클림트#유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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