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 만난 사람]“외로운 독신? 강아지 삼둥이 키우며 가족의 소중함 배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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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A 예능프로 ‘개밥 주는 남자’의 주병진

웰시코기 삼형제와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주병진. 하지만 삼둥이가 찾아오기 전까지 그의 마음은 굳게 닫혀 있었다. 큰 성공과 좌절을 겪었고 기댈 가족도 없었다. 주병진은 “길을 걷다가도 요놈들을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난다”고 했다. 채널A 제공
웰시코기 삼형제와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주병진. 하지만 삼둥이가 찾아오기 전까지 그의 마음은 굳게 닫혀 있었다. 큰 성공과 좌절을 겪었고 기댈 가족도 없었다. 주병진은 “길을 걷다가도 요놈들을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난다”고 했다. 채널A 제공
대한, 민국, 만세 다음은 대, 중, 소?

매주 금요일 오후 11시에 방영하는 채널A 예능프로그램 ‘개밥 주는 남자’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난해 12월 18일 처음 전파를 탄 ‘개밥남’은 개그맨 주병진(57)과 그가 키우는 ‘웰시코기’종 강아지 삼형제 대, 중, 소가 빚어내는 좌충우돌 이야기로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고 있다. 예능프로 ‘해피선데이―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송일국과 세쌍둥이 대한, 민국, 만세의 인기를 대, 중, 소가 이어받을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최근 인터넷 포털 검색어 순위에는 주병진과 그의 강아지 삼둥이가 상위권에 오르기도 했다.

주병진은 싱글남이다. 2013년 어머니를 여의었고 분가한 형제들(누나와 남동생)과도 떨어져 산다. 그는 개그맨과 쇼 프로그램 MC, 그리고 사업가로 큰돈을 벌었다. 방송에 나오는 그가 사는 2층 구조의 펜트하우스는 660m²(약 200평)에 이르는 큰 집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혼자 사는 사람의 그늘이 있었다. 집에 오면 구석구석을 청소하거나 인스턴트식품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게 일상의 전부였다. 사우나 시설까지 갖춘 화려한 화장실과 넓은 거실은 사람의 온기가 없어 얼음장 같았다.

지난해 11월 말 그의 집에 입양된 강아지들은 독신의 덫에 갇혀 있던 그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냈다. 집 안 여기저기에 싸놓은 강아지 똥을 치우면서도 그의 얼굴에서 웃음이 가시지 않는다. 집과 장난감 등 소장품에만 애정을 투사하던 싱글남에게 ‘가족’이 생긴 것이다. 그의 인생은 강아지들이 몰고 온 온기로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강아지들과 함께 새로운 ‘인생의 쇼’를 시작한 그를 최근 동아디지털미디어센터(DDMC)에서 만났다. 그의 ‘가족’ 안부부터 물었다.

―소는 잘 크나.

“아주 예뻐졌다. 푸석푸석한 털이 없어지고 건강해졌다. 세 마리 중에서 소에게만 유산균을 챙겨 준다. 아직 대와 중보다 작고 약하다. 예전에도 키우던 개를 떠나보낸 적이 있어 겁나더라.”(8일 방송에서 막내 소는 몸에 상처가 발견돼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요즘 강아지들의 근황은….

“아직 똥을 못 가린다. 아침에 일어나 비닐장갑을 끼고 여기저기 널린 똥을 치우는 데 30분이 걸린다. 그런데 샤워하고 나오니 또 질러 놓았더라. 좀 자라니까 서열 싸움이 시작됐다. 대와 중은 심각하게 싸운다. 소는 작아서 그런지 나머지 두 마리가 서로 감싸준다. 지금은 먹이 줄 때만 싸우지만 앞으로 싸움이 더 심해진다고 하니 걱정이다. 주인 옆에 가는 것도 서열대로라고 하더라. 동물병원에서는 한배에서 난 강아지 세 마리를 한집에서 키우는 게 아니라고 하더라.”

―강아지가 들어온 다음에 본인의 변화는….


“어머니가 계셨을 때는 여행 가서 어머니 선물을 샀다. 다들 여행 가면 가족 선물을 사는 것처럼. 어머니 떠나신 뒤 허전함이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세상에 나 혼자인 것 같고 아무도 의지할 데가 없더라. 그런데 이제 상점 앞을 지나며 ‘강아지들에게 필요한 것은 없을까’라는 마음을 갖는다. 애견용품 가게도 기웃거리게 됐다. 같은 하늘 아래 내 식구가 생겼다는 느낌이다.”

―방송에 나온 호화로운 집이 화제가 됐다.

“어릴 때 단칸방에서 칼잠 자던 것 때문에 항상 마당 있는 넓은 집을 꿈꿨다. 개그맨을 시작하고 20대 중후반에 처음 내 집을 마련했다. 방 2개짜리 다세대 주택이었다. 집 마련하고 온 가족이 너무 좋아 펑펑 울었다. 사업에 성공하면서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큰 집을 샀지만, 어머니가 ‘너무 넓어 무섭다’고 해 (거주하지 못하고) 마당 잔디만 깎았다. 현재의 집은 나의 꿈을 이룬 공간이다. 전망이 서울에서 가장 좋다. 베란다가 4개 있어 마당 역할도 한다. 인테리어 공사에만 1년 6개월이 걸렸다. 벽 색깔을 세 번이나 바꿨을 정도로 공을 들였다. 집 안 곳곳을 내가 디자인했다. 그래서 집이 화폭에 그린 내 그림 같다.”

―어린 시절 얼마나 못살았나.

“아버지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돌아가셨다. 남기고 간 것이 하나도 없었다. 네 식구가 1년에 수십 번씩 단칸방에서 단칸방으로 이사를 다녔다. 8층 건물의 한 개 층 공간을 쪼개서 여러 가족이 공동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기업가의 꿈이 간절했다. ‘밑천 없이 몸 하나로 돈을 벌 수 있는 게 뭘까’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스스로 생각하기에 외모가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연예인을 시작했다.”

―인기 있는 개그맨이었다.


“1990년대 초반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를 진행할 때 정말 재밌었다. 당시에는 담당 PD에게 적극적으로 의사를 개진했다. PD가 준 대본이 마음에 안 들면, 내가 밤새워 써온 대본으로 진행하자고 했다. 결국 내 대본으로 진행해 여러 코너가 인기를 끌었다.”

당시 ‘일요일 일요일 밤에’는 ‘몰래카메라’ ‘배워봅시다’ ‘이휘재의 인생극장’ 등의 코너로 큰 인기를 끌었다. 1990년 한국응용통계조사연구소가 서울 지역 10, 20대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주병진은 가장 인기 있는 남자 개그맨으로 꼽혔다.

그는 이후 SBS ‘주병진쇼’, MBC ‘주병진 나이트쇼’ 등을 진행하며 승승장구했다. 재치 있는 말솜씨와 깔끔한 외모로 개그와 시사 논평을 섞은 그의 토크쇼는 큰 인기를 누렸다. 그에게는 ‘개그계의 신사’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그를 보며 시청자들은 한국에서도 미국의 데이비드 레터맨이나 제이 레노 같은 토크쇼 진행자가 나왔다고 했다. 1990년에는 속옷 회사 ‘좋은사람들’을 설립해 사업가로 나섰다.

주병진은 다재다능했다. 1981년 이미숙(왼쪽 위 사진 위)과 함께 영화 ‘가슴 깊게 화끈하게’의 주연을 맡아 연기력을 뽐냈다. 운동을 잘한 그는 1987년 육상스타 장재근(오른쪽 사진 오른쪽)과 함께 심장병 어린이돕기 국토종단 마라톤을 하기도 했다. 토크쇼 진행자로도 이름을 날리며 1995년 MBC ‘주병진 나이트쇼’의 MC를 봤다. 동아일보DB
주병진은 다재다능했다. 1981년 이미숙(왼쪽 위 사진 위)과 함께 영화 ‘가슴 깊게 화끈하게’의 주연을 맡아 연기력을 뽐냈다. 운동을 잘한 그는 1987년 육상스타 장재근(오른쪽 사진 오른쪽)과 함께 심장병 어
린이돕기 국토종단 마라톤을 하기도 했다. 토크쇼 진행자로도 이름을 날리며 1995년 MBC ‘주병진 나이트쇼’의 MC를 봤다. 동아일보DB
―사업가로도 크게 성공했다.

“내 목표는 원래 사업가였다. 당시 국내에서 남자들은 하얀 삼각팬티만 입었다. 그런데 일본에 가 보니 전부 트렁크를 입더라. 디자인도 다양했다. 디자인이 예쁜 속옷을 만들면 장사가 될 것 같았다. 재래시장을 돌다가 금색 줄무늬 커튼 원단을 발견하고는 가져다가 당장 팬티를 만들었다. 금색 줄무늬 팬티는 일 년 내내 인기를 끌었다.

―당시 마케팅 전략이 신선했다.


“광고도 모두 내 아이디어였다. ‘바지 속의 정장’ ‘오늘밤 무장하세요’ 같은 광고 카피를 만들어 인기를 끌었다. 누드 광고 사건도 있었다. 처음에는 정장을 입고, 다음에는 속옷 차림으로, 그 다음에는 누드로 나오겠다고 한 신문 광고가 화제가 됐다. (하지만 당시의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 때문에 누드 사진은 아이의 발가벗은 사진으로 대신했다.) 당시 금강기획에서 제작한 우리 제품 광고는 세계 3대 광고제 중 하나인 뉴욕세계광고제에서 의류부문 최고상인 은상을 탔다. 광고계의 아카데미상을 받은 셈이었다.” 뉴욕세계광고제에서 상을 탄 광고는 좋은사람들의 ‘응원 편’으로, 서로 다른 팀을 응원하는 두 무리 응원단의 뒷모습을 대비시켜 제품의 우수한 착용감을 강조한 광고였다.

―성공의 정점에서 ‘그 사건’이 터졌다.

“인생에서 가장 잘나갈 때였다. 세상 모든 것을 ‘메이드 바이(Made by) 주병진’으로 만들고 싶던 때다. 뭐든지 내 맘대로 되고, 내가 최고라고 생각했다. 두려움이 없었고 교만하고 못된 행동을 많이 했다. 선배들에게는 깍듯이 대했다. 하지만 선배가 상식 밖의 행동을 하면 나도 상식 밖의 행동으로 응징했다. 인생에서 계속 성공만 했었다. 그러다가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것이다. 절망을 봤다. 절망을 보면서 희망이 없다는 게 그렇게 무서운 것인 줄 알게 됐다.”

그는 2000년 11월 여대생을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됐다. 긴 법정 싸움 끝에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 누명을 벗고, 2007년 자신을 고소했던 여대생과 이를 보도한 주간지와 여성지로부터 배상까지 받게 됐다. 하지만 세상의 시선은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상처가 컸을 것 같다.

“구속돼 구치소에서 한 달간 있다가 (보석으로) 나와서 재판을 받았다. 구치소 생활이 너무 힘들더라. 나오는 순간 너무 좋았다. 그런데 세상이 구치소보다 좁더라. 차라리 보는 사람이 없었던 구치소가 더 좋더라.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세상에 갈 데가 없었다. 술 먹고 며칠씩 걷고 나를 팽개치기 위해 이상한 짓을 수도 없이 했다. 너무 억울했지만 그때부터 세상이 보이더라. 안하무인 격으로 교만했던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2, 3년 지나니까 모난 데가 깎이면서 고개가 숙여지더라. 스스로에게 물었다. ‘과거로 가면 힘들었던 그때를 피하고 싶니’라고. 하지만 내 안의 대답은 ‘아니요’이다. 그 일로 세상을 보게 됐으니까.”

―상처는 어떻게 극복했나.

“자포자기하는 심정에서 나를 팽개치는 행동을 많이 했다. 그러다가 ‘세월이 가면 (분노와 슬픔이) 소멸될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런 와중에도 재기할 기회를 얻기 위해 운동을 열심히 했다. 잃어버린 세월이 아까워 스스로 꼭 보상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술 취하면 ‘(다시 일어서기 위해) 나는 늙을 수 없다’고 한동안 중얼거리고는 했다. 인간적 배신감을 겪고 나면 감정에 굳은살이 박인다.”

―앞으로 사업을 계속할 것인가.

“일할 때는 사람들과 갈등이 생기게 마련이다. 의견 충돌이 생기면 치열하게 논리 싸움을 하는 편이다. 사업하면 마음에 상처가 많이 난다. 스파르타 전사처럼 치열해야 하는데, 이제 그런 힘이 없다. 만약 사업을 한다면 강아지 털이 안 날리는 게 하는 상품을 개발하고 싶다.”

그는 2008년 ‘좋은사람들’의 지분과 경영권을 270억 원에 매각했다.

―방송 계획은….

“지금 내 정체성이 혼란스럽다. 연예인도 아니고 사업가도 아니고…. 머리 회전도 느려지고 외모도 예전 같지 않다. 아직 혼란스럽다. 여러 방송에서 제안이 들어오지만 우스운 모양새로 시작하고 싶지는 않다. 이 나이에 전전긍긍하면 추해 보인다. 아직 자존심은 살아 있다. 예전에는 방송의 실력자들이 많았다. 요즘은 그런 실력자들이 없으니까 출연자를 여러 명 쓰고 동시에 여러 대의 카메라를 투입해서 오랜 시간 찍는다. 그러다 보니 현실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빠른) 리듬감을 만들어 낸다. 이런 걸 보니 사람들이 과격해진다. 첨가물이 과다 투여된 인스턴트식품을 먹는 것과 같다. 슬로푸드 같은 방송을 하고 싶다.”

―앞으로 인생 계획은….

“두렵다. 어머니 가신 이후로는 ‘이렇게 살다가 죽는 것인가’라는 생각도 들더라. 지금도 혼자 밥 먹으며 누군가가 제대로 된 밥을 가지고 오는 것을 상상하곤 한다. 가끔 겁이 난다. 냉동밥 먹다가 갑자기 죽으면 어쩌지. 하하. 30, 40대에 동물보호센터를 차리려고 했다. 더 나이 들면 센터를 꼭 차리고 싶다.”

―연애와 결혼은….

“마음이 열려야 하는데, 이제 혼자 사는 게 너무 익숙해졌다. 누가 (이 집에) 들어오면 이제 혼란스러울 것 같다. 욕실에 가면 화장대 거울이 두 개다. 막연하게 한 사람이 더 들어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두 개를 설치했다. 집 안 인테리어도 굵직한 구조만 만들고 섬세한 부분은 미뤄 놨다. 아마도 누가 들어올지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이었던 것 같다. 어머니가 항상 ‘너 이 다음에 장가가면…’이란 말을 달고 사셨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항상 (결혼을) 상상한다.”

―‘개밥남’ 시청자에게 하고 싶은 말은….

“요즘 나처럼 혼자 사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반려동물을 많이 키운다. 방송에서는 동물의 귀여운 측면만을 보여준다. 하지만 반려동물을 키우는 일은 어렵다. 많은 애정을 쏟아야 하는 일이다. 유기견 문제가 심각하다. 동물을 키우기 전에 심사숙고했으면 좋겠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주병진#개밥 주는 남자#웰시 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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