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 필수품… 코카콜라도 못 넘은 ‘일곱개의 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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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년/한국의 장수 브랜드 10]<3>롯데 ‘칠성사이다’

40, 50대 독자들이라면 학창 시절 소풍날 아침 이것을 가방에 넣어주시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면서 한 번쯤 미소 지었던 기억이 떠오를 것이다. 이것 하나에 김밥, 찐 계란만 있으면 그날 점심시간이 든든했다. 이것은 바로 대한민국 넘버원 청량음료인 ‘칠성사이다’이다.

광복 전 평양 강생회(현 홍익회)의 대표이자 빵과 사이다 등을 팔았던 최금덕 씨는 광복이 되자 함께 일했던 장계량 씨와 모피를 가지고 1947년 남쪽 땅을 밟았다. 이들은 일본에서 청량음료학을 공부하고 광복 전까지 평양의 유명한 음료 제조업체였던 금강사이다의 공장장으로 재직했던 박운석 씨를 만난다. 최 씨와 박 씨는 함께 공장을 차리고 청량음료를 팔기로 합의했고, 1948년 경기 수원시 매산동에 터를 마련한 후 금강청량음료공업사를 설립했지만 실패를 맛본다.

세 사람은 다시 공장을 세우기 위해 정선명 주동익 김명근 우상대 등 4명을 새 사업 파트너로 합류시킨다. 이들 7명이 주주가 돼 1949년 12월 15일 오늘날 롯데칠성음료의 전신인 동방청량음료합명회사를 설립한다. 칠성사이다의 전설은 1950년 5월 9일 롯데칠성음료의 전신인 동방청량음료에서 칠성사이다를 출시하면서 시작됐다. 당초 칠성사이다의 제품명은 주주로 참여한 7명의 성이 모두 다른 점에 착안해 ‘칠성(七姓)’이 거론됐지만 회사의 영원한 번영을 다짐하는 의지로 북두칠성과 관련지어 ‘칠성(七星)’으로 결정됐고 현재까지 내려오고 있다.

지난해 전체 사이다 시장에서 칠성사이다는 약 80%에 이르는 점유율로 독보적인 1위를 차지했다. 매출액으로 따지면 약 3600억 원에 달한다. 코카콜라의 스프라이트, 펩시코의 세븐업 등 세계적으로 많이 팔리는 사이다들이 끊임없이 한국 시장에 진출했지만 칠성사이다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올해로 65세를 맞은 칠성사이다는 국내에서 ‘사이다는 칠성사이다’란 인식이 있을 정도로 브랜드 신뢰도가 높다. 브랜드 파워뿐만 아니라 제품의 질에서도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게 롯데칠성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롯데칠성 관계자는 “변화의 조짐이 나타날 때마다 적절하고도 신속한 대응책을 수립하고 추진한 것이 칠성사이다를 한국을 대표하는 장수제품으로 만든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고 밝혔다.

백연상 기자 bae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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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성사이다는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캔의 디자인을 바꿔 왔다. 위쪽 사진의 왼쪽 2개 캔은 1980년대 초 디자인이고 3번째는 1984년에 바뀐 디자인이다. 1984년 디자인은 16년 정도 지속되다가 2000년에 현재 우리가 마트에서 볼 수 있는 디자인(4번째)으로 바뀌었다. 흑백 사진은 1971년보다 매끈한 병 모양으로 바뀐 뒤 신문에 나온 광고다. 롯데칠성음료 제공

칠성사이다는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캔의 디자인을 바꿔 왔다. 위쪽 사진의 왼쪽 2개 캔은 1980년대 초 디자인이고 3번째는 1984년에 바뀐 디자인이다. 1984년 디자인은 16년 정도 지속되다가 2000년에 현재 우리가 마트에서 볼 수 있는 디자인(4번째)으로 바뀌었다. 흑백 사진은 1971년보다 매끈한 병 모양으로 바뀐 뒤 신문에 나온 광고다. 롯데칠성음료 제공

칠성 사이다. 롯데칠성음료 제공

칠성 사이다. 롯데칠성음료 제공

칠성 사이다. 롯데칠성음료 제공

칠성 사이다. 롯데칠성음료 제공

칠성 사이다. 롯데칠성음료 제공

칠성 사이다. 롯데칠성음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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