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 행복한 시읽기]<374>물리치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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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치료 ―이정주(1953∼ )
여자는 내 어깨 아래 핫백을 밀어 넣는다
나는 데워진다
따뜻하고 어지럽다
여자는 내 어깨에 멘소레담을 바르고 근육들을 만진다
시원하고 아프다
여자는 내 어깨에 전극을 붙이고 스위치를 올린다
찌릿찌릿하고 간지럽다
여자는 물리적으로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미진하다
이 통증은 물리적인 것이 아니다
내 팔은 다른 것을 찾고 있다
지난여름의 돌을 더듬고 있다
돌에 걸려 넘어져 얼굴이 처박혔던
백사장을 더듬고 있다
얼굴 쳐들고 하늘로 뿜었던 욕설을 그리워하고 있다
옆에서 박수치며 웃던 여자를 그리워하고 있다

나는 여자에게 인사한다
여자는 나를 보지 않고 고개만 끄덕인다
여자는 이미 다른 사람을 데우고 있다

목이 마르다
하늘에 맑은 물 한 잔과
붉은 알약 하나가 떠 있다


어깨 통증으로 정형외과에 가면 시의 첫 연에 그려진 물리치료를 받으리라. ‘나는 데워진다’ ‘따뜻하고 어지럽다’ ‘시원하고 아프다’ ‘찌릿찌릿하고 간지럽다’. 물리치료사가 처치하는 과정에 따르는 감각을 사실 그대로 진술하면서 독자로 하여금 관능적 쾌감을 겹쳐 떠오르게 하는 효과를 의도한 화자의 능청. 남자인 화자는 굳이 물리치료사의 성을 가려 ‘여자’라 칭한다. ‘여자는 물리적으로 최선을 다했다’, 물리치료사가 능숙하고 세심하게 치료를 마친 것을 화자도 인정한다. 통증도 사뭇 가셔서 환자로서는 만족스럽다. ‘하지만’ 몸을 추스르고 치료대에서 내려오며 화자는 ‘미진하’단다. 그의 마음은 속삭인다. ‘이 통증은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고. 내게 필요한 것은 물리치료사의 손길이 아니라 다른 손길이라고.

화자의 어깨 통증은 사랑이 끝난 뒤 생긴 것. 마음의 상처를 꾹꾹 누르면 몸의 통증으로 나타난다. 화자는 예민하면서도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인 듯하다. 그런 사람이 어두운 욕망이든, 밝은 욕망이든 서로 삼갈 것 없이 ‘뿜었던’ 오직 한 사람을 잃었으니 이중 삼중으로 고통일 테다. 외로움으로 심약해진 화자는 물리치료사가 다른 환자를 보느라 저를 벌써 잊은 것에도 설핏 섭섭하다. 아, 어깨가 도로 아파지는 것 같네. 병원을 나서니 저녁 하늘에 빨간 동그라미로 떠 있는 태양. 잘 익은 버찌 같은 그 해가 화자 눈에는 ‘붉은 알약’으로 보인다. 혹시 진통제? 화자의 어깨 통증에는 마음의 안마, 심리치료도 필요하겠다. 이 시를 씀으로써 화자의 응어리진 마음이 조금은 풀리지 않았을까. 시 쓰기의 효능은 많기도 하다.

황인숙 시인
#물리치료#이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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