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한민국은 국제평화 유지에 노력,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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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와 함께 하는 대한민국 헌법 이야기]5조 1항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하도록 헌법 해석까지 변경해 국제평화정신을 훼손하고 있다. 15일 아키히토 일왕 부부가 지켜보는 가운데 전몰자 추도식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동아일보DB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하도록 헌법 해석까지 변경해 국제평화정신을 훼손하고 있다. 15일 아키히토 일왕 부부가 지켜보는 가운데 전몰자 추도식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동아일보DB

김현귀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
김현귀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
인류 역사는 전쟁과 평화의 연속이었다. 과거 전쟁은 국가의 생존과 발전을 위한 행위이자 국가 간의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인식되었다. 전쟁 후의 새로운 질서가 국제사회에 세력 균형을 가져올 때 비로소 잠시 평화가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전쟁을 억지하고 평화를 유지하는 역할은 도덕이나 법이 아니라 국방력이나 경제력과 같은 현실적인 힘이었다.

20세기에 들어와 겪은 두 번의 전쟁은 과거와 전혀 달랐다. 지구상의 대부분 국가가 참전한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인적 물적 피해를 가져왔다. 군인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는 대규모 학살은 인간의 존엄에 심각한 의문을 갖게 했다. 그 결과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를 만들어 전쟁을 포함한 무력의 사용을 금지하고, 평화를 교란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회원국이 개별적 집단적으로 대응하여 평화를 정착, 유지하는 새로운 국제법 질서를 만들었다.

그리고 개별 국가들은 국제평화를 위해 노력해야 할 국가의 의무를 헌법에 명시했다. 그럼으로써 국제평화의 이념에 반하는 국가의 행위를 감시하고, 평화를 위한 국제적 연대에 세계 모든 국가가 동참하도록 했다. 특히 일제의 극악한 식민통치를 경험하고, 동서 냉전시대의 희생양으로 남북분단과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은 우리에게 국제평화의 이념은 단지 선언적인 차원을 넘어 생존과 실천의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배경에서 헌법은 전문에서 국제평화의 이념을 구현하기 위해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하겠다는 뜻을, 그리고 제5조 제1항에서는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는 구체적 실천방법을 밝히고 있다. 무력 사용을 금지하는 유엔헌장의 이념을 충실히 수용하면서도 우리가 경험한 제국주의나 공산주의로부터의 침략전쟁에는 단호히 대처하여 국제평화를 수호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일본의 헌법 개정 논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패전국인 일본의 헌법은 국제평화의 이념을 선언하는 것에 더해 일체의 전력을 보유하지 않고 교전권(交戰權)도 부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일본 헌법 제9조). 하지만 실제로는 자위대라는 사실상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고 자기 방위를 위한 자위권은 허용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를 넘어서 동맹국을 위해 군사력을 사용하는 ‘집단적 자위권’도 허용하는 것으로 해석할 뿐 아니라 헌법도 그에 맞춰 개정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는 국제평화의 이념이 탄생한 역사적 배경에 역행할 뿐 아니라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으로 인해 고통을 당한 한국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의 평화를 위협하는 행위로 비난과 감시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국가 간의 협력을 통한 국제평화의 정착과 인류공영을 위해서는 국제질서의 기본규범인 국제법이 존중되어야 한다. 헌법은 ‘헌법에 의하여 체결·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에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부여’함으로써 이를 표현한다(제6조 제2항).

조약의 체결·비준권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지만 안전보장이나 주권의 제약, 국가나 국민에게 중요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등의 중요한 조약에 대해서는 미리 국회의 동의를 얻도록 한다. 국제법인 조약에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부여하기 위해 입법기관인 국회의 관여를 보장하는 취지이다. 조약도 법률처럼 헌법에 합치하는 범위에서만 효력이 있다. 조약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여 헌법에 위반될 염려가 있으면 헌법재판소가 이를 최종적으로 판단한다.

헌법재판소가 조약에 대해 위헌 결정을 하면 조약이 국내에서는 효력을 상실하지만, 국가 간의 합의로서 효력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 때문에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은 조약이 체결, 비준되어 효력을 발생하기 전에 미리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받도록 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국제평화 유지에 노력한다는 헌법조항은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 외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의 인권과도 연결된다. 이들의 법적 지위에 대한 보장은 원만한 국제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전제가 된다.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의 지위는 외국이 우리 국민에게 제공하는 보장 수준에 상응하여 해당국 국민의 지위를 보장하는 ‘상호주의’가 적용된다. 그러나 상대 국가에서 우리 국민의 인권을 침해했다고 우리도 그 나라 국민의 인권을 침해할 수는 없다. 우리 헌법은 국제평화 이념을 비롯한 인권 존중의 정신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현귀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
#전쟁#국제평화#침략#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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