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총리는 ‘얼굴마담’ 아닌 내각장악 가능한 인물 뽑아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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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리더십 대전환기]
총리 포함한 개각 임박

‘국무회의는 국무총리가 주재. 총리의 정책 조정 및 정책 주도 기능 대폭 강화. 예산·인사·조직에 대한 권한을 각 부 장관에게 실질적으로 위임해 책임장관제 확립.’

박근혜 대통령의 18대 대선 공약집에 적힌 내용이다. 책임총리와 책임장관제로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약속이었다. 하지만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총리의 권한과 위상은 과거 정부보다 약화됐다. 장관들도 대통령의 눈치만 보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결과적으로 국정운영에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고, 세월호 참사를 통해 무기력한 리더십의 민낯을 드러냈다.

새 총리는 황희 정승 같은 인물로

정홍원 국무총리는 역대 ‘최약체 총리’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여당에서조차 “권력서열 50위”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각 부 장관을 향해서도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의 말을 받아 적는 ‘받아쓰기 내각’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세월호 참사 수습과정에서도 팔을 걷어붙이고 현장을 누비는 내각의 리더십은 찾아볼 수 없었다.

건국 이후 헌법에 보장된 권한을 제대로 행사한 국무총리는 거의 없다. 헌법 87조에 적힌 ‘국무위원 제청권과 해임건의권’도 말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이해찬 총리가 그나마 ‘책임총리’에 근접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책임총리제의 취지는 대통령과 총리의 역할 분담이다. 실무 지휘는 총리가 하되 대통령은 국정운영 전반의 큰 그림을 그리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다. 하지만 역대 대통령들은 권력 분산을 우려해 허울뿐인 총리를 내세웠다. “‘얼굴마담’ ‘대독(代讀)총리’가 총리 역할의 본질이냐”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전문가들은 ‘총리 리더십 부재’의 원인을 정 총리 개인이 아니라 박 대통령의 용인술에서 찾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노무현 정부에서 대통령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 국민대 교수(행정학)는 “대통령 한 사람이 모든 걸 움직이는 구조에서는 총리의 역할이 제한될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공직사회가 경직되면서 국가 운영 자체가 느슨할 수밖에 없다”며 “뚝심 있는 리더들을 내각에 발탁해 책임 있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부터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고의 ‘권력 2인자’로 평가 받는 조선시대 영의정 황희의 사례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세종 때 18년간 영의정을 지낸 그는 의정부와 6조를 총괄하며 군주의 뜻에 따라 행정·조세·화폐 개혁을 성공시켰다. 세종은 영의정에게 권한을 위임해 힘을 실어준 뒤 백성과의 소통에 주력했다. 영의정 자리가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위치로 격상된 것도 이때였다.

시장 신뢰 회복시킬 경제 리더십 세워야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 때 없앴던 경제부총리제를 5년 만에 부활시켰다. 경제정책의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현오석 당시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그런 기대와 함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임명됐다.

하지만 현 부총리는 ‘최악의 국무위원’이라는 혹평을 받고 있다. 리더십과 부처 간 조정능력에서 여러 차례 문제를 드러냈고 결과적으로 경제정책에서도 시장의 신뢰를 잃었다. 개각 대상 1순위로 거론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지난해 소득세법 개정을 추진할 당시 최초 마련한 증세 개정안을 하루 만에 수정해 ‘정부의 정책이 뚜렷한 기준 없이 추진됐다’는 비판을 받았다. 지난해 7월 부동산 경기 진작을 위해 추진했던 취득세 인하 문제를 놓고 안전행정부와 국토교통부 간 다툼이 벌어졌을 때도 갈등 조정 역할을 못했다. 개인정보 유출 사태 때는 ‘피해자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정부의 신뢰 기반을 무너뜨렸다.

경제 전문가들은 새 부총리가 지녀야 할 덕목으로 카리스마 있는 리더십과 업무 추진력을 꼽고 있다. 경제 혁신 3개년 계획, 재난 대응 시스템 구축, 공공 부문 개혁 등 굵직한 국정 현안을 중요도에 따라 추진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부처 간 업무 조정을 하면서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 인물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에게 정책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소통 능력도 중요한 기준으로 꼽힌다.

홍성걸 국민대 교수(정책학)는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장이 신뢰를 기반으로 시장에 강한 영향력을 가졌던 것처럼 경제부총리도 시장으로부터 전폭적인 신뢰를 받을 수 있어야 경제정책이 힘을 받을 수 있다”며 “시장과의 소통에 능하면서도 고도의 전문성을 갖춘 인물을 발탁해야 정책도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세억 동아대 교수(행정학)는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관료 출신보다는 기업가 마인드와 행정 마인드를 함께 가져 혁신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리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젊은층의 변화 욕구를 정책적 틀로 담아낼 수 있는 각료를 써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국정기획수석비서관을 지낸 곽승준 고려대 교수(경제학)는 “젊은층과 장년층을 하나로 어우를 수 있는 하이브리드(이종 간 혼합) 리더십을 갖춘 인물을 내각에 발탁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정훈 sunshade@donga.com / 세종=송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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