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비운의 커트 코베인에겐 무슨 냄새가 났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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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13일 일요일 맑음. 냄새. #78 Nirvana ‘Scentless Apprentice’(1993년)

C는 늘 젖어 있었다. 유난히 땀이 많은 그에게서 기분 나쁜 아가 냄새가 났다. 사람들은 그를 멀리했지만 정작 C 자신은 그 사실을 잘 알지 못했다. 마음씨 고운 나에게도 C는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나에게선 부디 그런 냄새가 나지 않길 바랐다. 그런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난 점점 더 냄새에 민감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난 B를 만났다. B는 나에게서 좋은 냄새가 난다고 했다. 나도 B의 냄새가 좋았다. 서로의 냄새를 맡으며 우린 세상 모든 다른 냄새에 대해 잊기 시작했다.

최근 미국 3인조 록 밴드 너바나의 마지막 스튜디오 앨범인 ‘인 유테로’의 20주년 기념 음반(사진)이 나왔다. 보컬과 기타를 맡은 리더 커트 코베인(1967∼1994)이 권총으로 자살하기 한 해 전에 낸 앨범이다.

‘자궁 안에서’란 제목의 이 작품은 너바나의 메이저 데뷔작이자 록 음악계를 뒤바꾼 ‘네버마인드’ 앨범에 대한 반발이었다. 코베인은 헤비메탈과 인디 록을 뒤섞은 ‘네버마인드’를 “프로듀서에 의해 예쁘게 가공된 팝 앨범”으로 치부했고, “우리가 진짜 원한 거친 록 사운드를 들려주자”며 ‘인 유테로’ 제작에 임했다.

첫 곡 ‘서브 더 서번츠’의 첫 불협화음부터 마지막 곡 ‘갤런스 오브 러빙 알코올 플로 스루 더 스트립’의 길고 난폭한 즉흥 연주까지, 앨범은 지극히 자기파괴적이다. 원래 코베인은 앨범 제목을 ‘난 내가 싫어서 죽고 싶어’로 지으려다 주위의 만류로 그만뒀다.

농담이었다지만 그건 이듬해 현실이 됐다. 앨범 제작 때 만들었다 수록되지는 않은 동명의 곡은 다른 편집 음반에 실렸다가 이번 20주년 기념 ‘인 유테로’에 합류했다. 원 수록 곡들의 2013년 리믹스 버전, 작곡 기간에 녹음된 데모 버전도 잔뜩 실렸다.

‘인 유테로’의 꼭짓점 중 하나인 ‘냄새 없는 수습공’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를 주제로 한 곡이다. 코베인은 어느 날 ‘향수’의 그르누이처럼 갑자기 세계의 왕이 됐고 “서서히 꺼져 가는 것보다 한번에 타 버리는 게 낫다”는 유서를 남겼다. 코베인에게선 무슨 냄새가 났을까.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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