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고인과 마지막 5년을 함께한 강진형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교수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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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치료 스스로 중단했던 최인호… 그를 통해 삶과 죽음의 의미 깨달아

강진형 교수는 최인호 소설가에 대해 “뜨거운 열정을 지녔으며 사람을 사랑할 줄 알았던 분”이라고 추억했다. 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강진형 교수는 최인호 소설가에 대해 “뜨거운 열정을 지녔으며 사람을 사랑할 줄 알았던 분”이라고 추억했다. 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강진형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종양내과 교수(53)는 지난달 25일 별세한 소설가 최인호 씨의 마지막 5년을 함께한 주치의다. 그는 일부러 빈소를 찾지 않았다고 했다. “나중에 묘소를 찾을 것”이라고 했다. 많은 죽음을 봐온 의사이지만, 한 작가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리는 듯했다.

인터뷰를 청했을 때 강 교수는 “특별히 선생님에게 해드린 것도 없는데… 송구스럽다”며 망설였다. 어렵사리 인터뷰에 응한 그를 2일 서울성모병원 본관 8층 교수라운지에서 만났다. 최인호 씨는 2008년 6월 침샘암 진단을 받았지만 재발해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치료고통 참고 두달만에 소설 써내

강 교수가 들려주는 ‘활달하고 다정하고 장난기 많은’ 환자 최인호의 모습은 기자도 생전에 만났던 작가 최인호의 모습과 정확히 일치했다. 고인의 투병 경과를 차분하게 전하는 것으로 그는 말문을 열었다.

“5년 전 목 부위에 덩어리가 만져진다면서 병원을 찾으셨죠. 진단을 맡은 김민식 교수님(서울성모병원 이비인후과)이 ‘최 선생님이 침샘암인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김 교수님이 암 부위를 제거하는 수술을 했습니다. 수술은 잘됐고 국소 재발을 억제하기 위해 방사선 항암치료를 진행했습니다. 당시 최 선생님은 굉장히 마음이 가벼운 상태였어요. ‘내가 치료받으면 완치가 되겠구나’ 하시면서, 훗날 일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요. 하지만 1년 뒤 암이 폐로 전이됐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전신 항암치료를 시작했는데… 침샘암 항암치료가 아주 힘듭니다. 약이 독해요. 구토가 심하고 머리가 많이 빠지고, 손발이 저리고 손톱이 빠져 나갑니다. 손톱과 살 사이에 염증이 생기고 진물이 나오고….”

당시 고인은 그런 상황에서도 소설에 열중했다.

“재발되고 항암치료를 한 기간이 1년 반 정도였는데 오히려 ‘이렇게 아프고 힘드니까 지금 글을 안 쓰면 안 되겠다’ 하셨던 것 같아요. 하루는 막 기분이 좋아서 오셔서는 ‘영감이 떠올라 이 악물고 썼다. 200자 원고지 1200장 분량의 소설을 두 달 만에 다 끝냈다’고 하셨어요.”

당시는 고인이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를 탈고한 때였다. 강 교수는 작가가 직접 사인해준 책을 받았지만 아직 읽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기자에게 “그 책이, 나 자신이 낯설게 느껴지고,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고…이런 내용인가요?”라고 물었다. 실제로 ‘낯익은…’은 주인공 K가 보고 믿어왔던 실재에 회의를 품으면서 진짜 ‘나’를 찾아나서는, 환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이야기다. 읽지도 않은 소설의 테마를 어떻게 짐작할 수 있었을까? 강 교수는 항암치료로 입원한 고인을 어느 새벽에 마주한 날의 기억을 들려줬다.

“21층 병동으로 회진을 갔습니다. 조금 흐린 날이었고 막 동이 트려던 때였어요. 하늘은 뿌연 회색이고. 병실에서 보이는 풍경이라는 게, 산이 없어요. 다 아파트예요. 선생이 창에 기대서서 계속 바깥을 응시하고 있더라고요. 아파트밖에 안 보이는 바깥을. 아, 너무나 쓸쓸해 보였어요. 몸은 힘들지, 방은 답답하지. 오랫동안 서울에, 이 도시에 살았는데 선생이 자신을 이방인처럼 느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계속 뚫어지게 (밖을) 보고 있었거든요. 도시가 낯설게 느껴진다는 생각? 아마 거기서부터 (소설이) 시작됐을 거예요. 영감이 떠올랐으니 빨리 끝내야겠다, 하셔서 손톱이 빠진 자리에 골무를 뒤집어쓰고 글 쓰셨을 거예요.”

죽음 맞는 순간까지 창작 열정 불태워

기자는 강 교수를 만나기 전 호스피스 병동에 들렀다. 병동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생존기간 2∼3개월의 시한부 진단을 받은 말기 암 환자들이다. 계속 머무는 것은 아니고 육체적 통증을 참을 수 없을 때, 심리적으로 힘겨울 때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입원한다. 자원봉사자들이 환자가 누운 침상을 둘러싸고 성가를 불러주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어떤 환자들의 얼굴은 그늘져 있었지만, 평온한 표정의 환자들도 보였다. 최인호 선생도 어느 순간 죽음이 가까이 온 것을 감지했을까. 강 교수는 “그러나 그때 선생은 자포자기한 심정이 아니었다”고 돌아봤다.

“저는 죽음에 다다른 사람들을 많이 봤습니다. 명망 있고 인품이 훌륭하다고 알려진 분들도 있었지요. 그런데 그런 분들 중에 자신의 죽음을 고통스럽게 애달파하면서 삶에 집착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본받고 싶어 한다는 분들이 생의 막바지에서 아우성칠 때 저는 인간에 대해 회의했어요. 그런데 최 선생님을 뵈면서 다른 생각을 하게 됐어요. 오랜 시간 최 선생님과 교류했던 분들에 비하면, 저야 그분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알겠느냐마는, 제가 그분을 통해 얻은 교훈은… 자신의 본분에 대한 열정이었어요. 그 자신 글을 쓰는 작가이고, 작품을 쓰는 게 해야 할 일이라는 것. 고통스럽지만, 버틸 수 있는 한 손톱 빠진 손가락에 골무를 끼고서라도 할 일을 하겠다는 것. 그 연세에, 그 상황에서, 반드시 글을 써야겠다는 그 지독한 열정 말입니다.”

―그 열정은 삶에 대한 집착과는 어떻게 다른 겁니까.

“항암치료 1년 만에 선생님께서 결단을 내리셨습니다. 치료를 받아도 완치될 수 없고 고통만 따르겠다고 본인이 판단하고 (치료를) 중단하셨어요. 선생님이 그렇게 힘들게 글을 쓰신 걸 보고 저도 힘든 치료에 대한 미련은 버렸습니다. 열정과 집착의 차이요? 열정이라는 건 뚜렷한 목표가 있고 그 목표를 향해서 나아가는 로드맵이 있는 겁니다. 그렇지만 집착은 맹목적인 거죠. 목표가 없어요. 열정은 다른 말로 ‘자신과의 싸움’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자신과의 싸움에 투철한 분이셨어요. (선생님이) 더 쓰고 싶은 글도 많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건강하게) 살아계셨다면 더 많은 작품도 쓰셨을 테고요. 그렇지만 힘든 상황에서 할 일을 했기 때문에, 자신과의 싸움을 피하지 않고 맞섰기 때문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본분에 대한 열정이 있었기 때문에, 그분의 떠남이 큰 울림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회진 갈 때마다 따뜻하게 나를 포옹

강 교수는 고인이 떠나던 날인 25일 아침 회진을 떠올렸다. 선생을 깨우니 의식이 없는 중에도 작고 초췌한 얼굴에 환한 웃음이 떠올랐다. “천사의 미소였다”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 그날 오후 7시 2분 고인은 세상을 떠났다.

“25일 오후 7시, 예정대로라면 저는 중국에 있어야 했습니다. 학회 발표가 있었어요. 임종이 가까웠다는 건 알았지만 그날이리라곤 예상을 못했지요. 그런데 전날에서야 중국 비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어요. 필요 없는 줄 알았거든요. 그래서 학회를 못 가게 되었죠. 오후 회진 돌고 저녁 6시로 기억합니다. 레지던트한테 ‘선생님 오셔야겠습니다. 혈압이 떨어집니다!’ 전화가 온 거예요. 그래서 다행히도 임종을 지키게 되었습니다.”

강 교수는 “선생님이 붙잡았는지도 모르지요. ‘네가 튀려고 해? 그래도 주치의인데 끝에는 나랑 같이 있어야 하는 거 아냐?’ 하시면서요(웃음)”라며 생전의 유머러스했던 고인의 모습을 추억했다.

“선생님은 복잡하게 ‘머리 굴리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굉장히 맑고, 밝고,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분이었어요. 회진을 가면 항상 저를 안아주세요. 그런데 내가 안겨요? 당신 몸의 2, 3배인데. 그런데 선생님이 안아주면서 그러세요. ‘강 선생, 조금은 빼야겠다.’ 선생님 때문에 뺀 건지는 모르겠지만, 노력해서 1년 동안 몸무게를 14kg 뺐어요(웃음).”

고인을 버티게 한 힘은 가족

강 교수는 끝까지 사람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최 선생을 통해 배웠다고 했다. 그것을 버티는 힘이 가족이었음도 깨달았다.

“항암치료를 중단하시고는 사모님께서 댁에서 병 수발을 드신 셈입니다. 침샘암은 침이 마르고 가래가 딱 붙어서는 나오질 않아서 환자가 굉장히 괴로워합니다. 사모님이 곁에서 고생 많이 하셨어요. 사모님은 남편한테 순종만 하는, 천생 여자 같은 분인데, 저는 마지막에 사모님이 못 견디실 줄 알았어요. 그런데 오히려 더 담담하셨습니다. ‘최인호’ 선생님 부인 되기가 굉장히 어려운 자리라고 생각하는데, 그걸 다 감당해 내셨어요. 그래서 저는 사모님도 참 좋아합니다.”

고인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하던 강 교수는 “이참에 침샘암에 대해서도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침샘암은 다른 암보다 재활치료가 중요합니다. 재활하면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가능한데 무작정 장애등급을 받아 장애인으로 생활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치료 뒤 재활해 사회에 재편입할 수 있는 통로도 정비되고 장애등급 판정도 제대로 이뤄지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합니다.”

인터뷰가 끝난 뒤 헤어지는 길에 강 교수는 “최 선생님이 소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말고 뭔가 숨겨 놓으신 게 있을지도 몰라요”라면서 웃음 지었다. “(항암치료받고) 그 뒤에 몰래 써놓으셨을 수도 있어요. 나중에 발견하라고. 천국에서 깔깔 웃으시겠지. ‘요놈들아, 놀랐지?’ 하면서.”

그의 말을 듣는 기자의 귀에도 고인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인터뷰=김지영 오피니언팀 기자 kimjy@donga.com
인턴기자 이병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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