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26>통박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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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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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박꽃
―박경희 (1974∼ )

박 중에서
가장 가슴에 남는 박은
바가지로도 쓸 수 없고
죽도 뜰 수 없는
통박!
쪽박도 면박도
통박에 비하면 깨진 박 축에도 못 끼는데

마흔이 다 된 게
밥물도 맞출 줄 모르느냐고
고두밥도 모자라 쌀이 씹힌다고
국수는 오래 삶아야 속까지 익지
예산 국수 공장에서 금방 뽑아 왔느냐고
시금치나물은 살짝 익혀야지
흐물흐물해서 어디 씹히기나 하겠느냐고
소금은 순금으로 만들어
그리 귀해서 간이 싱겁느냐고
두릅은 나무둥치를 잘라서 했느냐고

씹으면 그나마 남은 이 다 부러지겠다고
금니 박아줄 수 있느냐고
그깟 글 나부랭이 써서
어느 세월에 똥구멍에 볕 들 날 있겠느냐고

고향 집에서 돌아오다 바라본
참말로 환장하게 환한 꽃!
박꽃!


이 시가 실린 ‘벚꽃 문신’은 뒤표지 글에 소개된 대로 현재 ‘시골 사람들이 살아가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정성 들여 끓인 구수한 된장찌개 백반 맛’ 시집이다. 대개 노인인 그 시골사람들은 문신 같은 흔적이 남을 정도로 몸을 쓰면서도 삶에 이의가 없다. 한번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거나 구시렁구시렁하거나 담배 한 대 물고 먼 산을 바라볼 뿐. 그들의 딸인 시인도 뒤끝이 없고 건강하다. 통박(痛駁)도 웃음의 말로 만들어 버리는, 박꽃처럼 환한 그 마음!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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