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북 카페]서구 열강 침탈에 맞선 아시아 사상가들의 궤적 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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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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印 작가 판카즈 미시라의 ‘제국의 폐허로부터’

세계적인 경제 사학자인 니얼 퍼거슨 하버드대 교수는 지난해 ‘시빌라이제이션’에서 (동양 문명에 비해) 서구 문명은 여전히 우수하다고 주장했다. 지식재산권 경쟁 과학 의학 소비사회 노동윤리 등 6가지 ‘킬러 앱스(Killer apps)’가 이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이 나온 직후 인도 작가 판카즈 미시라는 영국 문학잡지 ‘런던 리뷰 오브 북스’에 게재한 서평에서 “(퍼거슨은) 서구문명이 번창한 데는 노예제도 식민주의 도제노동이 있었다는 점을 소홀히 취급했다”고 비판했다. 퍼거슨은 곧바로 반박문을 실어 미시라가 자신을 인종주의자로 몰아가며 모독했다고 맹비난했다.

이 논쟁의 주인공인 미시라가 최근 영국 등에서 출간한 ‘제국의 폐허로부터’(사진)가 4일 미국에서 출간된다. 이 책은 20세기 중반까지 서구 열강이 아시아에 세력을 넓혀갈 때 새로운 아시아를 만들기 위해 각국에서 활동해 온 사상가들의 궤적을 따랐다.

이 책에 소개된 첫 번째 인물은 아프가니스탄 카불 출생으로 ‘진정한 이슬람정신’의 복귀만이 서방의 침략을 극복할 수 있다고 주창한 자말 알딘 알아프가니(1838∼1897)다. 그는 이슬람의 몰락을 퇴폐로 규정하고, 이성과 과학기술의 존중과 헌법 제정을 통한 의회제의 도입을 주장했다. 이슬람 국가의 폭군정치를 비난했는가 하면 여성 교육을 주장한 거의 최초의 인물이기도 했다. 또 서구의 식민주의에 항거하기 위해서는 이슬람권이 단합해야 한다는 범이슬람주의를 제창했다. 저자는 그의 목소리가 살아 있는 동안 빛을 보지 못했지만 후세에 이슬람권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다음으로 그가 주목한 인물은 근대 중국의 개혁을 주창했던 사상가이자 정치인이었던 량치차오(梁啓超·1873∼1929)다. 서구식 민주주의를 중국 정치제도의 대안으로 생각했던 량치차오는 1903년 미국을 처음 방문한 뒤 빈부격차, 뉴욕 거리의 지저분한 빈민가 등을 보고 생각을 바꿨다. 이후 그는 중국 인민들에게 ‘루소 사상’을 알리려면 20∼50년의 시간이 필요하며 그때까지는 전제정치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해 개방을 주창한 세력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마오쩌둥을 비롯한 근현대의 중국을 건설한 청년들은 예외 없이 그의 영향을 받았다.

이 밖에 아시아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인 인도 문학가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베트남 공산혁명을 이끈 호찌민 등도 눈에 띈다. 1919년 프랑스 베르사유에서 열린 평화회의에서 당시 우드로 윌슨 미 대통령의 눈에 띄기 위해 서양식 양복을 입기도 했던 호찌민의 일화는 씁쓸함을 자아낸다. 그는 이 회의에서 서양 제국주의의 아시아 침략을 멈출 것을 요구하려고 했지만 실패하자 결국 공산주의자의 길을 걷게 됐다.

이 책에 대한 평가는 크게 엇갈린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는 니얼 퍼거슨처럼 이 책 또한 한쪽에서만 역사를 바라보았다는 점에서 실망스럽다며 별점 2개(5개 만점)를 주었다. 하지만 미국 출간을 앞두고 이 책이 관심을 끄는 것은 그만큼 200년 가까이 이어져 온 서구의 번영이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는 조바심의 반영으로 보인다. 한국 근대 사상가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뉴욕=박현진 특파원 witness@donga.com
#책의 향기#글로벌 북 카페#제국의 폐허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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