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승호의 경제 프리즘]공짜 전기에 돈 얹어주는 ‘바보 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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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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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승호 논설위원
허승호 논설위원
경북 포항에 있는 D철강의 ‘합금철’ 사업부는 아크 방전으로 망간 광석을 녹여 정련한 후 포스코 등에 원료로 납품하는 일을 한다.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실상은 전기 스파크로 돌덩이를 녹이는 무식한 작업이다 보니 전기요금만 월 33억∼39억 원씩 나온다. 이 회사는 한전의 ‘수요조정 제도’ 대상업체다. 수요조정이란 한전이 요청할 때 전기를 꺼주면 평상시 전깃값의 2∼5배를 환급해 주는 제도다.

전기요금 싸니 땔감처럼 펑펑 쓴다


절전(節電) 사전 예고기간은 통상 1∼7일인데 짧을수록 환급액은 커진다. 급할 때는 3시간 전에 “불 끄라”는 전화가 온다. 5월부터 전력예비율이 떨어진 경우가 많아 140시간 스위치를 내렸는데 결과는 놀라웠다. 그달 전기료가 33억 원, 환급금이 36억 원이었다. 전기를 쓸 만큼 쓰고도 돈 3억 원을 받은 것이다. 이 때문에 20억∼30억 원 수준이던 월평균 영업이익이 5월 이후 갑절로 커졌다. 이 회사 사람들은 “장사도 안 되는데 횡재했다”며 좋아하고 있다. 사장님은 앞뒤 사정 모르는 투자자가 2분기 공시를 보고는 ‘불황을 극복하고 놀라운 성과를 낸 것’으로 오해할까봐 은근히 걱정하는 판이다.

요즘 이런 용도로 하루 100억 원씩 정부 예산이 쓰이고 있다. 이미 2400억 원이 소진됐고 올해 4000억 원쯤 나갈 것 같다. 전기가 모자라면 이처럼 공장 가동을 중단시켜야 하는가, 가정과 가게에서 십시일반 아껴야 하는가? 수급관리에 실패한 데다 아무리 절전 캠페인을 해봐도 별 효과가 없다 보니 생겨난 코미디다(‘4조 원 들여 150만 kW급 원전 1기를 짓느니 수요 피크 때 절약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이 낫다’는 견해도 있긴 하다).

전기요금을 올리지 않으면 수요 조절에 근본적 한계가 있다. 한국의 전기 소비 증가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5배로 우리는 대표적인 ‘전기 저효율 다소비’ 국가다. 전기는 ‘원가가 가장 비싼 고급 에너지(석유의 2.5배)’이지만 값이 싸니 땔감처럼 펑펑 쓰는 것이다.

한전은 최근 2년간 해외사업 입찰에서 줄줄이 탈락했다. 한전은 올해 초 에티오피아 송·배전 컨설팅 입찰을 신청했으나 참가 자체가 제한됐다. 작년까지 연속 4년 적자를 기록하는 바람에 ‘최근 3년 연속 결손이 아닌 회사’라는 사전심사(PQ) 기준을 못 맞춘 것이다. 지난해 카자흐스탄 송·변전 건설에서는 PQ에 탈락하자 금융보증을 받아 겨우 2차 PQ를 통과했다. 같은 해 인도네시아 발리 석탄화력과 이집트 다이루트 복합화력 프로젝트에서 탈락했다. 2010년 인도네시아 칼젤 석탄화력과 반텐 석탄화력 프로젝트에 입찰을 하지 못했다. 김중겸 한전 사장은 지난해 취임 후 “해외 시장을 개척해 매출의 절반을 해외에서 올리겠다”고 큰소리쳤지만 말짱 공염불이 됐다.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올해 4월 한전의 누적 적자를 이유로 ‘자체 신용등급(정부와의 관계를 배제한 등급)’을 A2에서 Baa2로 3단계 낮췄다.

해외입찰 참가자격 잃은 한전

한전 관계자는 “원가에 못 미치는 전기요금 때문”이라며 “아랍에미리트(UAE)에 원전 수출을 한 것처럼 해외 수익을 늘려야 국내 적자를 보전할 수 있는데 지금은 누적적자 때문에 이마저 막혀 악순환의 늪에 빠졌다”고 말했다.

정부는 물가 안정을 내세워 원가 이하의 전기요금을 강요하지만 이는 수급불안을 초래할 뿐 아니라 에너지를 낭비하게 만들고 에너지 수입도 늘린다. 전력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며 탄소 배출량을 늘려 ‘녹색성장’과도 멀어진다. 전형적인 ‘정부의 실패’다. 전기요금을 정상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전기시장의 정부 독점체제를 깨고 경쟁을 도입해야 한다. 2004년 좌절된 남동발전 등 발전 자회사의 매각도 전깃값이 현실화돼야 가능해진다. 전력산업 경쟁 도입은 세계적 추세다. 더 중요한 식량도 민간이 생산하고 시장가격에 거래된다. 전기라고 그렇게 못할 이유가 없다.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
#허승호의 경제프리즘#경제#한전#한전 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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