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이 한줄]적들을 미워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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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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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들을 미워하지 말라 - 영화 ‘대부 3’ 중

하나. 원수를 사랑하라

인정하자. 99.9%의 사람은 이 말을 실천할 수 없다. 불가능한 명령이기 때문에 이를 실행하려는 자는 불행해지기 십상이다. 그는 자기가 원수를 사랑할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하거나 충동적으로 원수를 도와준 뒤 그 결과를 나중에 곱씹으며 후회하게 된다.

솔직히 말해 다들 가슴 속으로 ‘찢어죽이고 말려 죽인’ 상대가 한 명씩은 있지 않나요? 그 사람, 사랑할 수 있습니까?

둘. 파레토 개선

아무도 손해를 보지 않으면서 누군가가 이익을 얻는다면 그게 좋은 일일까?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에 따르면 이는 개선(改善)이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사촌이 좋은 값으로 땅을 사서 이익을 얻으면 나의 효용이 줄어든 게 없더라도 배가 아프다. 동료의 성공은 나의 상대적 부진으로 해석된다.

까놓고 말해 인간들 대부분은 원수를 사랑하기는커녕 ‘파레토 최적’도 추구하지 못하는 존재다. 당신만 빼놓고 동료의 월 소득이 모두 5%씩 인상되는 A안과, 모두 다 같이 임금이 제자리인 B안 중 어느 쪽이 더 마음에 드시는지요?

셋. 적들을 미워하지 말라

‘두껍고 어두운(厚黑)’ 지혜를 원하는 이들에게 그 방면의 실천철학자인 마이클 코를레오네(알 파치노)는 말한다. “적들을 미워하지 말라(Never hate your enemies)”고. 후계자 수업을 받고 있는 조카 빈센트 코를레오네(앤디 가르시아)가 라이벌 조직을 이끄는 조이 자자(조 만테냐)를 헬리콥터에서 떨어뜨리고 싶다고 말하자 하는 대꾸다.

왜?

마이클은 성경이나 경제학보다 훨씬 더 우리 마음에 와 닿는 근거를 제시한다. “판단력이 흐려지기 때문이다(It affects judgement).” 조이 자자에 대한 연민이나 살인에 대한 거부감 따위는 없다. 다만 적을 미워하면 미워할수록 그 감정에 빠져들어 합리적인 판단을 못하게 되는 것을 오랜 경험으로 알 뿐이다.

우리도 그런 광경을 자주 보지 않나. 자기와 의견이 다른 사람을 ‘저들’이라고 부르는 정치인들이, 저들이 너무 미워서 무리수를 펼치다 역풍을 맞는 모습을. 자신의 성공이 아니라 상대방의 파멸을 바라다 함께 망하는 이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한 걸음 물러나서 보면 어리석고 한심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영화 중반부에서 빈센트가 다시 조이 자자를 없애자고 할 때 마이클이 하는 말은 이거다. “네 생각을 절대 다른 사람에게 알려서는 안 돼.” ‘대부 1’에서 마이클의 아버지인 비토 코를레오네(말런 브랜도)가 장남 소니(제임스 칸)에게 하는 충고이기도 하다.

물론 조이 자자는 총에 맞아 죽고 그 배후도 싹쓸이된다. 대부 연대기 세 편은 코를레오네 패밀리에 대드는 세력이 영화 끝에 가서 모두 다 비명횡사한다는 줄거리다(설마 스포일러?). 그리고 비토와 마이클, 두 대부는 학살극 전까지 그야말로 냉정하다. 적을 조롱하거나 도발하거나 그 앞에서 쓸데없이 자존심을 세우려 들지 않는다. 대부들이 그랬듯이, 나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적을 패퇴시키려면 그 적을 궤멸시키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넷. 그러니까 K야.

여전히 너를 경멸하지만 이제 너를 미워하지는 않으려 해. 널 미워하기 시작하면 나의 성공보다 너의 패배를 더 바라게 되고 잘못된 궁리에 신경을 쏟게 될 테니. 그러면 나한테 손해잖아.

너를 사랑하거나, 내게 손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네 이익을 바라기는 힘들 것 같아. 난 그냥 관심 끊기로 했어. 내 손에 피를 묻히긴 싫고 누가 네 앞길을 가로막아주면 좋겠네. 혼자 제 꾀에 걸려서 망해주면 고맙고. 그런데 참, 밥은 먹고 다니냐?

tesomiom 동아일보 산업부 기자. 장편소설 ‘표백’으로 한겨레문학상 수상. K의 철천지원수.

tesomi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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