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프리즘/권순활]떠나는 강봉균, 남은 김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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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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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활 편집국 부국장
권순활 편집국 부국장
강봉균 김진표 의원은 경제관료 출신이란 공통점을 갖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정부 경제팀 수장(首長)인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냈다. 전북 군산이 고향인 강 의원은 경제기획원, 경기 수원 출신인 김 의원은 재무부 핵심 인맥 중 한 명이다.

강봉균은 2002년 군산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뒤 17대와 18대 총선에서도 여의도 입성에 성공했다. 김진표는 2004년 총선 때 수원에서 금배지를 달았고 2008년 재선 의원이 됐다. 두 사람은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등 같은 정당에 줄곧 몸담았다.

‘정계은퇴’ 강봉균의 쓴소리


강봉균은 좌회전 질주가 두드러진 현 민주통합당에서 합리적 목소리로 주목받은 정치인이다. 10년간 집권한 민주당에는 경제장관 출신 의원이 새누리당보다 많다. 그러나 강봉균처럼 상식적 경제관과 정치행태를 공개적으로 드러낸 합리파는 4·11총선에서 민주당의 정치적 험지(險地)인 대구 출마를 결심한 김부겸 의원 등 손꼽을 정도다. 맹목적 반대 투쟁보다 현실적 정책 대안을 중시한 3선 의원 강봉균은 ‘정체성이 뚜렷하지 않다’는 이유로 이번 총선 공천에서 탈락했다. 그는 무소속 출마를 택하는 대신 탈당과 정계은퇴를 선택했다.

정당과 정치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인이 된 강봉균은 언론 인터뷰에서 정치권과 국가의 현실을 우려했다. “중도에 서야 할 민주통합당이 사회주의 색채가 강한 통합진보당 쪽으로 좌클릭하고 보수우파 쪽에 있을 새누리당까지 왼쪽으로 달려가면 대한민국호(號)는 왼쪽으로 기울어져 배가 전복될 수 있습니다.” 그는 엄청난 예산이 들어갈 복지 프로그램들을 내놓으면서 구체적 재원조달 방안을 외면하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짓이라고 꼬집는다.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관료는 자기이익보다 그래도 국익을 생각하고 단기보다 중장기 이익의 관점에서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반면 정치인은 철저히 자기중심이고 근시안적 이익에 집착한다”고 진단했다.

김진표는 한때 낙천설이 돌기도 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공천을 받아 3선 고지에 도전한다. 그는 공천심사 면접에서 이념적 정체성에 관한 질문을 받자 “나는 경제부처에 있을 때 지나치게 진보적이고 과격하다는 평을 받았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당내 강경파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생존정치’라는 말이 나왔다.

과거 ‘경제관료 김진표’를 꽤 가까이에서 지켜본 필자는 ‘정치인 김진표’의 변신을 생각하면 착잡하고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제2의 개항(開港)으로 치켜세웠던 그가 “2007년 한미 FTA와 2012년 한미 FTA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강변한다. 정부 재정을 감안해 국립대도 서서히 사립대 수준으로 등록금을 올릴 필요성을 말했던 사람이 언제부터인가 반값 등록금을 주장한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싸고는 사실과 다른 내용까지 내세우며 공사 중단을 요구한다.

역사 앞에서 누가 더 평가받을까


강봉균은 “정치인은 당이 잘못하면 개인적 이해득실을 떠나 바른 말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후배들이 있다”고 했다. 그와 함께 경제부처에서 일했고 나중에 장관까지 지내면서 시장원리와 건전재정을 역설한 김진표 이용섭 장병완 의원 등의 얼굴이 떠올랐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사형 판결을 받은 뒤 말했다. “떠날 때가 됐습니다. 이제 각자의 길을 갑시다. 나는 죽기 위해서, 당신들은 살기 위해서. 어느 편이 더 좋은지는 신만이 아실 것입니다.” 중국 명나라 명신(名臣) 유대하는 “사람의 삶은 관 뚜껑을 덮고 난 뒤에 논해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강봉균은 정치무대를 떠났고 김진표는 남았다. 당장의 정치 득실만 따지면 강봉균은 패했고 김진표는 살았다. 하지만 긴 역사의 관점에서 보면 더는 양보하기 어려운 원칙과 소신을 지키다 밉보여 전사(戰死)한 강봉균이 더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판단한다.

권순활 편집국 부국장 shkwon@donga.com
#경제프리즘#권순횔#총선#강봉균#김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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