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하지현]“잘 해내고 계신가요?”

  • Array
  • 입력 2012년 1월 7일 03시 00분


코멘트
하지현 건국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하지현 건국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며칠 전 화요일, 그러니까 1월 3일에 만나는 사람마다 물어보았다.

“잘 해내고 계세요?”

사람들은 영문을 몰라 “뭘 해내냐”고 되물었다. 난 “오늘이 어떤 날인지 모르세요, 작심삼일의 삼 일째 되는 날이잖아요”라고 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웃으며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던 새해 소망을 하나씩 얘기했다. 금주나 운동 같은 고전적인 것부터 ‘아이들 잡지 않기’처럼 평소의 고민을 고쳐 보려는 것들이었다. 안타깝게 삼 일째가 되는 날에 이미 신년 모임으로 회식을 했고, 방학이라 늦잠 자고 있는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고 나온 엄마도 있었다. “생각해 보니 작심삼일은커녕 하루도 못간 것 같다”면서 “매년 새해 소망과 결심을 하기는 하지만 참 어렵다”며 씁쓸히 웃었다. 이렇게 첫 일주일이 지났다. 오늘, 이 글을 읽는 분들의 새해 소망은 어떤지 궁금하다.

우리는 신년이 되면 한 해의 소원을 만들고, 그걸 한 달은커녕 사흘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좌절하고는 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그 탓에 술을 마시고 작은 실수를 한 아이를 잡는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이유를 한번 생각해 보자.

새해 결심 작심삼일 안되었는지 궁금

먼저, 소망의 설정 자체가 잘못됐다. 새해 첫 소망은 평소와 달라야 한다고 믿는다. 매일과 다른 새해 첫날이니까. 일 년에 한 번밖에 오지 않는 찬스니 거창해야 한다고 여긴다. 그래서 머릿속에 언제나 담고 있는, 꼭 고치고 싶은 일, 하고 싶던 일을 소망으로 삼는다. 나는 그게 문제라고 생각한다. 변화는 고치기 쉬운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새해에 상징적 의미를 주면서 한 번에 큰 변화를 줄 일을 전면에 내세운다. 12월 31일이 1월 1일로 변한 건 사실 그저 하루가 지났을 뿐 대단한 실체적 변화가 오는 건 아니다. 그렇기에 원래 바꾸기 힘들었던 일, 하고 싶었지만 시작할 엄두가 안 나던 일을 새해가 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우리의 주관적 바람이자 환상일 뿐이다.

인간의 행동에는 관성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한번 습관이 들어 관성적으로 하는 행동의 방향을 바꾸거나 멈추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한 줄로 서고 한 줄로 걷기 습관을 두 줄 타기로 바꾸는 캠페인을 열심히 했지만 도리어 혼란을 야기했던 것을 생각하면 그렇다. 그렇기에 아주 작은 변화부터 시작하는 것,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이 동력을 얻어 새로운 관성을 만들기에 수월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런 것은 새해 소망으로는 약하다고 여기고 더 강하고 큰 것을 선택하고는 결국 사흘도 지키지 못하는 악순환을 거듭한다.

이런 악순환을 반복하면서도 매년 거창한 새해 소망을 갖는 것은 바로 우리 마음 안의 ‘리셋 환상’이다. 컴퓨터를 사용하다가 프로그램이 멈추는 문제가 생겼을 때 리셋 버튼을 눌러 다시 시작하면 문제가 해결된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게 인생이 엉켜 있고, 한 군데를 고친다고 다른 문제가 다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 전면적인 변화, 즉 리셋 버튼을 눌러 완전히 새로 시작하기를 원한다. 계속 머뭇거리면서 누르지 못하고 불편한 대로 참고 지내던 차에 신년은 좋은 타이밍이다. 그래서 달력을 새것으로 바꾸며 리셋을 바라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그 꿈은 사흘 만에 환상일 따름이었다는 게 현실로 드러난다. 그럼에도 우리는 매년 새해 리셋 버튼을 누른다. 그나마도 하지 않으면 우리 안에 차올라 있는, 알 수 없는 감정의 똬리, 삶의 정체감을 감당하기 어렵기에.

그래서 우리는 리셋을 희망한다. 희망을 가져야겠다는 절실함은 내가 지금 곤경에 처해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삶에 어려움이 많고, 정체돼 막막함을 느끼고, 결핍감이 강할수록 희망의 필요성은 반대로 커진다. 현실이 어려울수록 희망이라도 간직하고픈 간절함이 강해진다. 사는 것이 만족스럽고 삶에 불만이 없는 사람은 희망을 가질 필요도 없다. 그들이 희망이라고 얘기하는 것도 자칫 과욕이나 욕망으로 보이기 쉽다. 그런 면에서 나는 희망 없는 세상이 오기를 원한다. 희망도 가질 힘이 남지 않은 절망만 남은 세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이 만족스러울 수 있는 세상, 끊임없이 변화를 소리치며 나와 사회를 채찍질하지 않아도 되는 안정적 사회가 온다면 더는 매년 절실하게 새해 소망을 빌면서 뭔가 달라지기를 희망하지 않아도 될 테니까. 그러나 그런 사회는 아직 요원한 것이 현실이다.

실천하기 쉬운 계획 세워 알찬 한해를

그러니 지금은 미래를 위한 희망 한두 개쯤은 갖는 게 정신건강을 위해 필요하다. 삶의 추동력을 얻을 수 있고 성취감을 느낄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소망은 거창한 것보다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작고 일상적인 변화가 좋다. 참고로 나의 새해 소망은 아주 소박하다. 집에 들어와 양말을 빨래통에 잘 넣어 아내의 칭찬을 듣는 것이다. 여기에 욕심을 조금만 더 내보련다. 새로 낼 책이 베스트셀러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반만 팔리는 것이다. 과대망상이라고? 여전히 소박하지 않은가, 겨우 반뿐인데.

하지현 건국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