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명 기자의 사람이야기]복거일 씨 영어뮤지컬에 감동받은 마이클 터커 美 2사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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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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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굶주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지금 우리가 이곳에 있는 것이다”
천안함 보며 병사들의 고통 떠올라 한국은 손님 환대하는 훌륭한 주인

‘만약의 사태’ 때 서울 등 수도권 일대 방어를 책임지는 주한미군 2사단을 이끌고 있는 마이클 터커 사단장. 지난해 10월 부임한
 그는 “조사를 해보니 주한미군 범죄 대부분의 원인이 술 때문이었다”며 병사들의 에너지를 ‘공부’로 돌려 범죄율을 낮추는 개가를 
이뤘다. 내부 개혁은 물론이고 외부와의 적극적인 소통을 주요 정책으로 펴고 있는 그는 역대 2사단장으로는 처음으로 명예경기도민증을
 받기도 했다. 동두천=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만약의 사태’ 때 서울 등 수도권 일대 방어를 책임지는 주한미군 2사단을 이끌고 있는 마이클 터커 사단장. 지난해 10월 부임한 그는 “조사를 해보니 주한미군 범죄 대부분의 원인이 술 때문이었다”며 병사들의 에너지를 ‘공부’로 돌려 범죄율을 낮추는 개가를 이뤘다. 내부 개혁은 물론이고 외부와의 적극적인 소통을 주요 정책으로 펴고 있는 그는 역대 2사단장으로는 처음으로 명예경기도민증을 받기도 했다. 동두천=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서울에서 북쪽으로 불과 75km 떨어진 경기 동두천 주한 미군 2사단 캠프 케이시 정문 주변은 ‘영화 세트장’처럼 낯설었다. 나지막한 건물을 빼곡히 채운 간판들은 1970, 80년대 거리에서 보던 페인트칠한 영문 간판이었다. 시간과 공간이 다른 곳에 온 것 같은 이질감은 부대 안으로 들어서면 더하다. 황량하다시피 한 벌판에 탱크와 장갑차 같은 무기가 대거 포진하고 있다.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만나는 이런 장면들은 존재하지만 잊고 사는 ‘북한’처럼 함께 살고 있지만 ‘고엽제’ 같은 사건이 일어나지 않으면 잊고 사는 ‘주한미군’에 대해 복잡한 상념을 불러일으킨다.

마이클 터커 2사단장(소장)은 바빠 보였다. 그를 만난 1일 오전에도 훈련 준비에다 산하 부대 대대장 이취임식으로 분주했다. 취임식 시작 20분 전에야 겨우 짬을 낸 그를 만났다. 며칠 전 그가 국내 문미포 여성악극단의 창작 영어뮤지컬 ‘장진호전투(The Battle of Chosin·극본 연출 복거일)’를 보고 감동을 받았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터라 연극 평부터 물었다. “훌륭한 연기를 펼친 여성 16명에게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정말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어린 연기였다.”

‘가장 감동적이었던 부분’을 묻자 “살을 에는 듯한 추운 날씨 속에 남으로 피란 가는 행렬을 보던 미군 장교가 병사들에게 ‘이 굶주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지금 우리(미군)가 이곳에 있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대목이다. 나를 비롯한 2사단 장병들에게 왜 우리가 지금 한국에 있는지 일깨워 주었다”고 했다.

―‘왜’ 미군은 지금 이곳에 있는가.

그는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단호하게 말했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한미동맹을 굳건히 하기 위해서다.”

―요즘 한국 젊은이들 중에는 6·25전쟁이 북침인지 남침인지 모르는 사람도 있다. 젊은 미군들도 그런가.

“6·25 때 미군들은 지구상에 ‘한국’이라는 나라가 있는지조차 몰랐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2사단 파병 미군들은 역사수업도 받고 판문점도 가고 피폭된 천안함도 가서 본다. 한국과 6·25에 대한 지식뿐 아니라 북한의 위협이 실제 상황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요즘 미국에는 한국의 성장에 놀라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한국과 인연을 맺은 미군들에게 또 다른 자부심을 준다”고도 덧붙였다.

“6·25가 끝난 한국은 ‘달 표면’처럼 초토화됐었다. 그런 한국이 이뤄낸 성과는 ‘선(善)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는 예’다. 도움만 받던 나라가 아프가니스탄에 병원을 세우고 해외 파병을 하니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그의 말과 표정은 한없이 진지했다.

육군 보병으로 구성된 미 2사단의 별칭은 인디언헤드(Indianhead), 모토는 세컨드 투 넌(second to none·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이다. 글자 그대로 막강 전투력을 자랑한다. 2사단 주둔 지역인 의정부, 동두천은 한마디로 전략적 요충지. ‘만약의 사태’가 일어나 2사단이 무너지면 삽시간에 수도권이 위험에 빠진다. 2사단장의 상황 판단은 전황을 좌우하는 관건이기 때문에 사단장은 미군 중에서도 선택된 사람들이 온다고 한다.

그러나 2사단은 ‘주한미군 범죄의 지뢰밭’이기도 하다. 1992년 동두천시 기지촌 윤금이 씨 살해 사건 범인도 2사단 소속 이병이었고 2000년 서울 이태원동 주점 여종업원 살해범도 2사단 상병이었다. 효순 미선 양 사건(2002년 6월 13일)을 일으킨 장갑차도 2사단 44공병대(캠프 하우즈) 소속이었다.

지난해 10월 제90대 사단장으로 취임한 터커 사단장도 부임 4개월 만인 올해 2월 소속 장병이 동두천 한 노부부의 집에 침입해 부부를 둔기로 때리고 부인을 성폭행하려다 구속되는 사건을 겪었다. 당시 터커 사단장은 ‘2사단 병사들에게 요구되는 높은 자격기준에 전혀 미치지 못하는 일이 일어났다. 피해 가족과 한국에 진심으로 사과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역대 2사단장들의 고민은 아무래도 병사들의 범죄일 것이다. 사단장은 ‘진정한 전사프로그램(REAL Warrior Program· Responsible, Educated, Alcohol Limiting·책임 교육 술절제)’이라는 독특한 제도를 도입했는데….

“취임 후 조사해보니 물의를 일으킨 병사들의 90% 이상이 술 때문이었다. 미 신병의 절반 이상이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한국으로 파병된다. 2사단 병사의 94%가 갓 입대한 이등병과 일등병이다. 에너지가 넘치고 타국 생활이 힘드니 술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의 에너지를 어떻게 하면 건전한 방향으로 돌릴 것이냐 그게 문제였다.”

터커 사단장이 제시한 것은 ‘공부’였다. 학위를 희망하는 병사들에게 일주일에 두 번 2시간씩 근무시간에서 빼주는 파격적인 조치로 2009년 3월 87명에 불과했던 ‘학사 장병’은 2011년 3월 5151명으로 60배 가까이 늘었다. 놀랍게도 병사들의 폭행 등 대인범죄가 지난해 4월∼올해 3월 325건으로 전년 동기 936건보다 65%나 줄었다.

▶본보 6월 16일자 A2면 참조
주한미군에 대학교육을 시켰다… 2년만에 범죄율이…


이 같은 ‘내부 개혁’과 함께 그가 한 것이 적극적인 외부 소통. 경기도와 협의채널을 만들어 미군사격장 야간사격 자제, 훈련일정 통보에 합의했고 올 초 포천 연천 구제역이 일어났을 때는 9개월이나 준비한 훈련을 중단하고 이미 훈련 중이던 1개 여단 병력까지 철수시켜 방역에 협조했다. 주한 미군 범죄가 일어났을 경우에 대비해 의정부지검과의 간담회도 정례화했다.

올해 군문(軍門)에 들어선 지 39년째가 된다는 그의 직업관이 궁금해졌다.

―미군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주는가.

“조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를 도와줄 수 있어 자부심을 갖게 한다. 특별히 도움이 필요한 나라에 파병되면 우리는 그곳 국민이 처음 접한 미국인일 때가 많다. 그래서 나는 부하들에게 ‘미군은 나라를 대표하는 외교관’이라고 말한다.”

―한국과의 소통에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를 수호하고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왔다. 미국인으로서 미국 문화를 가져오는 것이 아닌 한국의 전통과 한국 법에 따를 의무가 있다.”

―한국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한국민들은 참으로 훌륭한 ‘주인’이다. 우리 같은 ‘손님’을 언제나 환대해주며 관대하게 배려해준다. 많은 나라에서 복무했지만 그런 배려와 관대함은 세계 최고다.”

―군인이라는 직업은 죽음과 가까이 있다. 두렵지는 않은가.

“입대하면서 손을 들고 선서할 때 나는 이미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을 약속했다. 그동안 전장(戰場)에서 죽음의 위협에 노출된 적도 많았지만 나라를 지키고 임무를 완수하려면 두려움은 제쳐놔야 한다. 목숨을 아끼지 않고 나라에 헌신할 때 우리는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

그의 직업관은 더 많은 권력이나 명예가 아니라 ‘더 나은 실존’이라는 점에서 울림이 컸다. 이런 직업관의 밑바탕에는 군인을 존경하는 사회문화적 배경도 큰 몫을 하는 것 같았다.

“미국에서는 존경받는 직업군에 군인이 늘 상위로 꼽힌다. 애국심이 모든 미국인들에게 있기 때문에 군인을 존경하고 참전용사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3월 천안함 피격 1년을 맞아 장병들과 현장을 방문하고 4월 9일을 추모일로 정해 병사들에게 한미공조를 주제로 한 정신교육까지 했는데….

“어뢰공격으로 아수라장으로 변한 배 안에서 놀람과 충격 속에서 죽어간 병사들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그는 마치 자신들의 부하가 죽은 것처럼 어두운 표정이 되었다.

한국은 해외 주둔 미군에게 썩 인기 있는 부임지가 아니다. 언어도 잘 통하지 않고(미군을 보는) 시선도 곱지 않기 때문에 독일이나 유럽이 선호된다는 것이다. 군인이 발령지를 고를 수는 없다 해도 그들이 가진 속내의 일단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절차와 조건이 많았던 2사단장과의 인터뷰를 추진하면서 기자는 잠깐 그들의 ‘오만’을 의심했지만 실제 인터뷰를 한 뒤 그것은 ‘피해의식’ 때문이었음을 깨달았다. 그 의식의 밑바탕에는 평소 자신들을 공격하는 사람은 많지만 도와주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경험이 깔려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친미냐 반미냐를 떠나, 우리는 이국땅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는 그들의 목소리를 과연 얼마나 들으려 했나…. 캠프 케이시를 나오는 발걸음은 가볍지 않았다.

동두천=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터커 사단장::

1972년 이등병으로 입대한 뒤 장교후보학교를 수석졸업하고 사단장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군대를 다니며 미 메릴랜드대 심리학 학사, 시펜스버그대 행정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미 군사학교 웨스트포인트에서 부교수로 일하기도 했다.

그동안 독일(22년),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서 복무했다. 주유럽 미군사령관 책임 장교, 미군 기갑사령부 부사령관 등을 지냈으며 러시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이집트 쿠웨이트 등지에서 작전을 수행했다. 미 2사단장으로 오기 직전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작전반장으로 매일 아프간 주둔 42개 나토군과 협조하며 14개월간 일했다. 1991년 걸프전 ‘사막의 폭풍’ 작전에서 승리하고 귀국했을 때를 가장 자랑스러웠던 순간으로 꼽았다. 임기는 올해 10월까지다.
::영어뮤지컬 ‘장진호전투’::


소설가이자 시사평론가 복거일 씨가 여성으로만 구성된 악극단으로 장진호전투를 재연한 것. 6월 11일 경기 동두천 시민회관, 22일 경기 의정부 경민대, 29일 서울 용산 미 8군 영내 서울아메리칸 하이스쿨에서 세 차례 공연해 미군 장병들과 가족들의 박수를 받았다. 복 씨는 “낯선 땅에서 고생하는 주한미군과 가족들에게 감사와 위로의 뜻을 전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기획했다”며 “한국민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그들에게 큰 힘이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고 전했다.장진호전투는 6·25전쟁 때 미 해병 1사단이 개마고원 장진호에서 중공군에 포위돼 혹한 속에서 2주일간 싸우며 흥남항으로 물러난 전투. 미군은 393명이 전사하는 등 2621명의 인명 손실을 입었다. 당시 뉴스위크는 ‘진주만 피습 이후 미군 역사상 최악의 패전’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미 해병이 시간을 끌며 버티지 못했다면 동부전선 미 10군단이 위험에 빠져 전세가 삽시간에 기울 뻔했다. 또 당시 흥남에서 병력 10만5000여명과 민간인 9만1000여 명이 배를 타고 거제도 등으로 철수할 수 있었던 것도 미 해병의 사투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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