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의 일과 삶]이광희 이광희부띠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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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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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에서 망고나무는 ‘희망’입니다”

“60세를 바라보는 요즘엔 남수단 톤즈에 망고나무 심어주기 운동이 내 삶의 목표가 됐다”는 이광희 대표가 ‘희망고(희망의 망고나무)’ 운동을 알리는 엽서를 들고 웃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60세를 바라보는 요즘엔 남수단 톤즈에 망고나무 심어주기 운동이 내 삶의 목표가 됐다”는 이광희 대표가 ‘희망고(희망의 망고나무)’ 운동을 알리는 엽서를 들고 웃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2009년 처음 찾은 남수단 톤즈 지역은 한창 건기를 지나고 있었다. 가뜩이나 먹을 것이 없는 곳에 건기가 찾아오니 상황은 더 나빴다. 길거리엔 힘없이 널브러져 있는 사람들 천지였다.

물이 거의 말라버린 강가에 잠시 앉아 있는데 일곱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기쁜 얼굴로 작은 물고기를 잡아 들고 가는 게 보였다. 장난기가 발동했다. 두 손을 아이 앞으로 내밀면서 “그 생선 나 줄래?” 했다. 당연히 안 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뜻밖에 아이는 선뜻 물고기를 내밀었다. 스스럼없는 그 행동에 그만 화들짝 놀랐다. 그 물고기가 아이에겐 전부였을 텐데. 어쩌면 며칠을 굶었을지도 모르는 터였다. 기특한 아이를 쓰다듬어 준 뒤 돌아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저 아이가 자신의 전부인 물고기를 내게 내밀었던 것처럼 나도 그들에게 뭔가 아낌없이 주고 싶다’고.

○ 망고 한 그루는 슈퍼마켓 같은 것

이광희 이광희부띠끄 대표(59)의 망고나무 심기 운동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 대표는 정·재계 안방마님들이 선호하는 디자이너 중 한 명이다. 서울 남산에서 ‘이광희부띠끄’라는 이름으로 숍을 열고 26년간 옷을 지어왔다. 그런 그가 3년 전부터는 망고나무 심기 캠페인에 푹 빠져 있다. 2009년 월드비전 친선대사인 탤런트 김혜자 씨를 따라 우연히 톤즈에 갔던 것이 평생 숙제를 안겨줬다.

이 대표는 “톤즈 사람들에게 망고나무 한 그루는 한국인들에겐 슈퍼마켓과 비슷한 의미”라며 “아이 셋을 망고나무 몇 그루 덕분에 키웠다는 어느 과부의 이야기를 듣고 망고나무의 효용성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망고는 심은 지 5년째 되면 1년에 두 번 열매를 맺는데 건조한 아프리카에서도 잘 자라는 것이 특징이다. 한 번 심어 놓으면 100년은 너끈히 산다고 한다. 톤즈 사람들은 망고 열매를 따 먹기도 하고 시장에 내다 팔기도 한다. 망고나무는 따가운 햇볕 아래 시원한 그늘도 만들어 준다.

이렇게 쓸모가 많은 망고나무를 톤즈 사람들이 심지 못하는 것은 나무 심을 여유조차 없기 때문이다. 망고 묘목 한 그루를 심는 데는 15달러(약 1만6000원) 정도 든다. 얼마 되지 않는 돈이지만 톤즈 사람들에게는 큰 부담이다. 10달러가 있으면 한 달은 먹고 살기 때문이다. 당장 먹고살 일이 빠듯한 이들에게 망고나무 심기는 쉽지 않은 투자다.

○ ‘엄청난’ 인내가 필요해

남수단 톤즈를 찾은 2009년, 가진 돈을 전부 털어 망고나무 묘목을 산 뒤 톤즈 지역 거주 가정에 심어준 이광희 대표가 한 아이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이광희부띠끄 제공
남수단 톤즈를 찾은 2009년, 가진 돈을 전부 털어 망고나무 묘목을 산 뒤 톤즈 지역 거주 가정에 심어준 이광희 대표가 한 아이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이광희부띠끄 제공
톤즈를 찾은 첫해 이 대표는 가지고 간 돈을 모두 털어 묘목 100그루를 심었다. 한국에 돌아온 후에는 ‘톤즈에 망고나무 심어주기’ 아이디어를 현실화할 방법을 찾았다. 그 다음해 3월 사단법인 ‘희망고’를 만들고 기금 마련을 위한 패션쇼, 바자회를 본격화했다.

조금씩 모은 기금으로 톤즈에 묘목장을 만들었다. 묘목장에서 3, 4개월간 기른 후 망고 묘목을 나눠 준다. 지금까지 묘목장 6군데를 마련했다. 지난해 톤즈를 두 번째 찾았을 때는 총 1만5000그루의 묘목을 근방 가정에 나눠줬다. 이 일은 톤즈에 미리 나가 있는 월드비전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했다.

한국에서 봉사활동 하기도 힘든데 지구를 반 바퀴나 돌아야 갈 수 있는 곳에서 하는 봉사의 어려움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더구나 인종도, 문화도 모두 다른 사람들이 대상이다. 이 대표는 “톤즈 사람들은 우리와 생활방식이 달라 시간 개념이 없고 목적의식도 부족한 편”이라며 “엄청나게 많은 인내심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마을축제를 하겠다고 아침 일찍부터 점심을 준비했는데 오후 4시가 되어서야 사람들이 서서히 나타났다고 한다.

이 대표는 “그들에겐 일거리가 거의 없어 한국 사람이 하루에 할 일을 한 달에 걸쳐 한다”며 “지금 심은 망고가 다 자라려면 5년 걸리니까 그냥 느긋하게 받아들이려 한다”며 웃었다.

○ “아들과 기쁨 나눴으면”

이 대표는 7월 다시 톤즈를 찾아 2만 그루 정도의 묘목을 더 심을 계획이다. 올해는 일을 시작한 지 3년째라 수확기가 점차 다가오기 때문에 조금은 더 긴장이 된다고 한다.

그는 “이번엔 망고 심는 법을 동영상으로 만들어서 트럭에 영사기를 싣고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보여줄 생각인데 생전 처음 동영상을 보는 사람이 많아 신기해할 것”이라며 즐거워했다.

스물아홉 살 큰아들도 데리고 갈 계획이다. 아들은 올해처럼 중요하고 민감한 시기에 이 대표의 편이 되어서 열심히 뛰어줄 든든한 지원군이다. 아들은 미국 유학 후 한국에 들어오기 전 겨울방학 때 아르바이트로 1200달러를 벌어 망고나무 심기 운동에 쾌척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아들이 이 일을 물려받아 해주길 은근히 바라는 것 같았다. 봉사도 해 본 사람이 하고, 기왕 하는 거 잘하려면 젊어서부터 훈련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망고나무 심기 운동을 하면서 나는 톤즈 사람들에게 준 망고보다 더 큰 것들, 보람과 기쁨을 받았다”며 “그런 기쁨을 내 자식도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아들을 위해 봉사했던 아버지 고 이준묵 목사로부터 이 대표 자신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배웠던 것처럼.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 이광희 대표는


△1952년생 △1974년 이화여대 비서학과 졸업 △1977년 국제패션연구원 수료 △1985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 ‘이광희부띠끄’ 오픈 △1985년 프랑스 파리 프레타포르테 참가 △1993년 아시아 패션진흥협회 제정 ‘올해의 아시아 디자이너’ 수상 △1999년 이달의 중소기업인상 수상 △2009년 ‘희망의 망고나무(희망고)’ 심어주기 패션쇼 △2010년 사단법인 ‘희망고’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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