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하태원]우주인 켈리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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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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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원 워싱턴 특파원
하태원 워싱턴 특파원
요즘 미국에서 가장 주목 받는 부부는 가브리엘 기퍼즈 연방 하원의원(41)과 우주비행사 마크 켈리(47) 부부다. 미국언론은 이들에게 ‘국가커플(nation's couple)’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지난달 8일 애리조나 주 투손에서 발생한 총격사건으로 머리에 중상을 입은 기퍼즈 의원의 재활은 미국인에게 각본 없는 최고의 드라마로 주목받고 있다. 세 번이나 우주로 날아갔던 비행사 켈리 씨는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부인의 병상을 묵묵히 지켜 화제가 됐다. 켈리 씨는 지난달 25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국정연설에 특별 게스트로 초청을 받았지만 휴스턴으로 옮긴 기퍼즈 의원의 재활훈련을 돕는다며 정중히 거절하기도 했다.

그런 켈리 씨가 4일 ‘중대결정’을 내렸다. 텍사스 주 휴스턴 존스우주센터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그는 “우주로 복귀한다”고 밝혔다. 임무는 4월 19일 알파자성(磁性) 분광계를 싣고 우주정거장으로 날아가 2주일간의 임무를 마치고 지구로 복귀하는 것. 5명의 승무원을 지휘하는 우주왕복선 인데버호의 선장 역할이다.

1992년 5월 첫 비행을 시작한 우주왕복선 인데버호는 이번이 마지막 비행이다. 켈리 씨도 이번 비행이 개인적으로 네 번째이자 생애 마지막 비행이 될 가능성이 높다. 쉽지 않은 결정을 내린 때문인지 기자회견 내내 그의 얼굴에는 불안과 결단의 표정이 교차했다.

켈리 씨의 이번 결정에 미국은 또 한 차례 술렁였다. 한 달 동안 간병인 역할을 자처하느라 우주인 훈련을 게을리했던 켈리 씨는 322km 상공에서 시속 2만8163km의 속도로 비행하는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강도 높은 우주비행 훈련을 시작한다. 게다가 4월 비행 직전 2주 전부터는 외부와 격리된 삶을 살아야 한다. 일부에서는 그가 이기적인 결정을 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삶의 희망을 남편에게 걸고 마지막 사투를 벌이고 있는 부인을 팽개친 채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우주복을 고집했다는 지적.

이 같은 비판을 의식한 듯 켈리 씨는 “개비(기퍼즈 의원의 애칭)와 나의 가족, 그리고 미항공우주국(NASA) 등 관련자들이 숱하게 논의한 끝에 결정한 사항”이라고 강조했다. 기퍼즈 의원의 ‘허락’을 직접 얻지 못했지만 “내가 개비를 잘 알고 아내가 뭘 원하는지를 알기 때문에 오히려 결정이 어렵지 않았다”고도 했다. 국가와의 약속이나 봉사라는 거창한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하지만 기자회견을 지켜보는 기자의 뇌리 에는 순직한 한주호 준위의 모습이 자꾸 중첩됐다. 지난해 3월 30일 천안함과 함께 백령도 앞바다에 가라앉은 장병들을 구하겠다며 자원해서 구조작업을 벌이는 장면이 선명히 다가왔다.

연방하원이라는 자리에서, 그리고 우주비행사라는 자리에서 국가를 위한 봉사의 길을 걸어온 부부가 다시 고단한 여행을 시작한다. 기퍼즈 의원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빼곡히 짜인 재활 프로그램을 소화해야 하고 켈리 선장은 병상의 부인을 잠시 제쳐두고 미지의 하늘로 날아가 인류가 살아갈 미래의 모습을 고민하게 된다.

머리에 관통상을 입고 살아날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켈리 씨는 4월 19일 인데버호가 지구를 떠나는 날 부인이 케네디 우주센터로 와 카운트다운을 지켜보는 장면을 상상한다고 했다. 그는 어쩌면 2주일간의 임무를 마치고 지구로 복귀하는 그날 기퍼즈 의원이 밝은 얼굴로 손을 흔들며 환영하는 모습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겠다. 미국인들은 켈리 선장과 함께 또 다른 기적을 꿈꾸고 있다.

하태원 워싱턴 특파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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