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상우의 그림 읽기]뿌리 깊은 나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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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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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경모, 그림 제공 포털아트
세월-이경모, 그림 제공 포털아트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을 때마다 사람은 한 살씩 나이를 먹습니다. 나무도 사람처럼 한 해를 보내면 나이테가 생성됩니다. 봄부터 가을까지 광합성 작용을 통해 세포가 만들어지고 가을과 겨울 사이에 생장이 느려지면서 치밀한 조직으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한 살을 더 먹는 동안 겪은 일이 모두 다르듯이 나무도 위치, 기후 등 주변 여건에 영향을 받아 나이테가 저마다 다르게 형성됩니다. 그래서 나이테를 보고 나무의 역사나 과거의 기후를 추정하기도 합니다.

사람은 100살을 살기 어렵지만 나무 중에는 수백 년, 수천 년 된 고목도 있습니다. 사람은 유년기 청소년기 장년기 노년기로 인생의 한살이를 형성하지만 나무는 한 해를 기준으로 그와 같은 사이클을 되풀이합니다. 봄마다 연둣빛 새순을 내밀고 여름이면 잎이 무성해지고 가을이면 결실을 이루고 겨울이면 헐벗은 나목이 되어 죽음 같은 인동의 시간을 보냅니다. 하지만 봄이 되면 다시 파릇파릇한 새순을 내밀며 또 다른 한살이를 시작합니다. 그런 이치로 본다면 사람도 나무처럼 탄생과 죽음을 통해 끝없는 생명활동을 되풀이하는지 모릅니다.

나무의 뿌리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듯이 사람의 뿌리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사람에게도 나무에게도 뿌리는 생명의 근간입니다. 뿌리가 부실하면 개체를 지탱하기 어렵고 뿌리가 뽑히면 생명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사람도 나무도 생명의 뿌리가 튼실해져야 숱한 시련을 견딜 수 있습니다. 하지만 뿌리는 하루아침에 튼실해지지 않고 원하는 대로 깊어지지 않습니다.

뿌리가 대지를 뚫고 지층을 향해 내려가는 과정에는 우주적 에너지의 총화가 필요합니다. 하루하루, 한 해 한 해, 온갖 시련과 고난을 겪으며 눈에 보일 듯 말 듯 아주 조금씩 자라고 또한 깊어집니다. 속 깊은 인내와 자기 성실성이 없는 한 뿌리 깊은 나무가 되기 전에 뿌리 뽑힌 나무가 되어 허랑방탕하게 인생을 허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꿋꿋하게 풍상을 견디며 자기 삶의 내성을 키워가는 동안 뿌리는 보이지 않게 자라납니다.

나무의 천차만별한 형상, 사람의 천차만별한 인생은 모두 뿌리에서 기인합니다. 뿌리 깊은 나무가 온갖 풍상과 시련을 꿋꿋하게 견뎌낸 생물학적 인내심의 결과라는 건 비유가 아니라 진리입니다. 천차만별한 인간과 천차만별한 인생, 그 모든 것은 결국 자신이 살아온 생명정보의 누적이라는 얘기입니다. 지금의 나는 내 생명활동의 총화이니 운명이나 사주팔자 타령을 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뿌리의 법칙, 그것이 곧 뿌리는 대로 거두는 자연의 법칙입니다.

뿌리 깊은 나무는 가뭄을 타지 않고 바람이 불어도 어린 나무처럼 아우성치지 않습니다. 뿌리 깊은 나무는 우듬지가 높을수록 숱한 나뭇가지에 골고루 수액을 보내고 더불어 살고 더불어 푸르러지고 더불어 결실 맺는 공존의 도량을 지니고 있습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넉넉한 그늘로 많은 생명을 품고 보듬어 줍니다. 한 살 한 살, 우리도 소중하게 나이 들어 뿌리 깊은 나무가 되어야겠습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꽃도 좋고 열매도 많이 열리나니.

박상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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