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명 기자의 사람이야기]31년 만에 국내육상 100m 기록 바꾼 19세 김국영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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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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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트는 내게 높고 높은 山… 우쭐대는 日선수들부터 꺾을 것”

어렸을 때부터 “책상에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해 공부는 싫었지만 뜀박질만큼은 자신이 있었다”는 김국영 선수. “남이 뭐라 해도 내가 하고 싶으면 한다”는 김 선수는 스파르타 훈련이 주는 육체적 고통을 게임이나 놀이로 생각하는 당돌한 신세대였다. 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어렸을 때부터 “책상에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해 공부는 싫었지만 뜀박질만큼은 자신이 있었다”는 김국영 선수. “남이 뭐라 해도 내가 하고 싶으면 한다”는 김 선수는 스파르타 훈련이 주는 육체적 고통을 게임이나 놀이로 생각하는 당돌한 신세대였다. 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7일은 한국 육상의 새 역사가 쓰인 날이다. 남자 육상 100m에서 31년 만에 신기록이 나온 것. 주인공은 열아홉의 신예 스프린터 김국영 선수(안양시청 소속). 그는 이날 오전 10시 18분 대구스타디움 제64회 전국육상경기선수권대회 예선에서 10초31로 한국 육상의 ‘마의 벽’이라고 불린 ‘10초34’를 깼다. 이어 낮 12시 1분 준결승에서는 10초23을 찍어 자기 기록을 자신이 깨는 기염을 토했다(결승전에서는 10초43). 이날 쾌거는 대표팀에 발탁돼 본격적으로 태릉선수촌에 합류한 지 5개월 만에 이룬 것. 일약 ‘단거리 제왕’으로 부상한 그를 10일 서울에서 만났다. 얼굴에 여드름 자국이 남아 있는 영락없는 10대였지만 자기주장이 뚜렷하면서도 “자만이 가장 두려운 적”이라고 말하는 속 깊은 신세대였다.》
상금 1억원으로 꼭 하고 싶은 건 육상선진국 유학
목표기록은 안 정해… “그게 달성되면 끝이잖아요”

―눈이 좀 충혈됐네요.


“3일 내내 잠을 못 잤어요. 아직도 그때 그 느낌을 잊을 수가 없어요.”

―스타가 되었는데 기분이 어때요.

“적응이 잘 안돼요. 전화도 엄청 많이 오고. (잠시 뒤) 운이 좋았어요. 단거리 기록은 바람이 조금이라도 세거나 약하면 안 돼요. 늘 최선을 다하지만 운도 따라야 해요.”

(김 선수가 기록을 세울 당시 기준 풍속은 마지노선인 초속 2m였다. 조금만 더 세게 불었다면 기록 경신은 물거품이 될 뻔했다.)

―기록을 깨겠다는 목표가 있었나요.

“마음을 비우려고 했어요.”

―그거는 어른들도 힘든데….

“선생님들이 비우라고 하니까 비우려고 노력했어요. 저는 제 생각이 일단 ‘틀렸다’고 전제하고 선생님들이 말씀하시는 것을 다 받아들이자는 주의예요.”

동석한 강태석 안양시청 감독(35)이 한마디 거든다. “선수와 감독도 사람이어서 감정의 변화가 있거든요. 아무리 좋은 길을 제시해도 선수가 싫다고 하면 안 되는 거예요. (옆에 놓인 커피를 보며) 국영이는 아무리 맛없는 커피라도 먹으라고 하면 맛있게 먹는다고나 할까.” 강 감독은 김 선수가 중학교 2학년일 때 ‘떡잎’을 알아보고 집중훈련을 시켜 오늘의 재목으로 만든 사람이다.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하는 성격’이라면서요.

“공부가 싫었던 게 그 때문이었어요. 책을 본다든가 심지어 PC방에서 게임하는 것도 싫었어요. 뛰어노는 게 최고였지요.”

―어릴 땐 어땠나요.

“말썽꾸러기였어요. 학원 땡땡이치고 친구들하고 놀고. 전 내키지 않으면 누가 뭐래도 안 하는 성격이거든요. 그렇다고 크게 사고 친 적은 없어요.”

‘달리기는 어떻게 하게 됐느냐’고 묻자 바로 “학교 가기 싫어서”라는 답이 나왔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반 친구가 달리기 경기 나간다고 학교를 쉬는 거예요. 옳다구나 하고 체육선생님을 찾아갔어요. 연습도 안 하고 나갔는데 경기도 대표 소년체전에 선발됐어요. 그리고 소년체전에서 전국 6등을 했어요. 학교 안 나가도 되고 상도 타고 너무 좋았죠.”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집이 경기 의왕에서 안양으로 이사 가는 바람에 전학을 해 중학교 1학년 때까지 운동을 잠시 쉬었다. 아버지는 계속 공부를 하라고 했지만 국영은 막무가내였다.

“중학교 올라오니까 내신 관리도 해야 하는데 반에서 40명 중에 20∼30등을 하니까 부모님 걱정이 많았죠.”

―본인은 걱정이 없었나요.

“전 성적표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다시 밖으로 나가 놀았어요. 그리고 중학교 2학년이 되면서 다시 경기에 나가게 해달라고 졸랐죠. 결국 아버지도 승낙하셨어요.”

―힘들지 않았나요.

“공부보다 낫다고 생각했어요.(웃음) 뛸 때마다 기록이 단축되니 재미도 났고요.”

신세대인 김 선수에게 스파르타 훈련이 주는 육체적 고통은 현실을 잊기 위한 게 아니라 현실을 즐기기 위한 게임이나 놀이로 보였다.

―옛날에는 ‘라면만 먹고 뛰었다’는 사람도 있었는데….

강 감독이 말을 받았다.

“요즘은 운동도 돈 없으면 못 해요.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투자를 해야 결과가 나옵니다. 본인 의지도 중요하지만 부모를 비롯해 주위에서 얼마나 뒷받침을 해주느냐가 관건이에요. 또 종목상 100m 단거리는 순간적인 힘을 요구하는 운동입니다. 거리가 짧으니 별거 아니라고 하지만 단거리를 온 힘으로 뛴다는 게 얼마나 힘든데요. 국영이 같은 경우 중산층 집안에 부모님도 자식을 지원해야겠다는 마인드를 갖고 계시니 다행이지요. 아무리 집안이 부유해도 그런 생각이 없으면 안 되잖아요.”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나요.

“(강 감독을 바라보며) 선생님에게 전화해 하소연하면 반은 풀려요. 선수촌에서는 주말 외박을 기다리는 게 유일한 낙이고요. 삼겹살 실컷 먹고 나면 기분이 좋아져요.”

―여자친구가 있나요.

(역시 신세대답게 수줍음도 없이 이름이 바로 나왔다.)

“단거리 국가대표 김다정 선수요. 중국 전지훈련 때 만나 2년 됐어요. 제가 고등학교 2학년일 때이고 다정 누나가 3학년일 때였죠.”

―연상이네요.

“(무슨 상관이냐는 표정으로) 둘이 있을 때는 이름 부르고 선생님이나 선배들 계실 때는 누나라고 하죠.”

―이번 기록으로 상금 1억 원을 탈 거라는데 앞으로 돈도 많이 벌겠네요.

“벌써부터 ‘집 사라 차 사라’ 하는데,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어요.”

‘뭐냐’고 물었더니 “육상 선진국으로 유학 가고 싶다”는 당찬 답이 나왔다.

―슬럼프가 있었나요.

“작년이 좀 힘들었어요. 시즌 초반부터 계속 하향곡선을 그렸어요. 사람들이 ‘김국영도 끝났구나’ 하는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운동 세상’이라는 데가 남 잘되는 것을 못 보는 곳이거든요. 그럴 때마다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죠. ‘마음껏 떠들어라, 다음에 좋은 기록 보여 주면 다시 변할 테니까.’”

―제일 두려운 게 뭐예요.

“저 자신이 가장 겁나요. 이미 기록을 깼는데 또 달려야 돼? 이런 생각이 날까 봐요. 행동이든 운동이든 (기록) 깨기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하려고 노력해요.”

그는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성품을 가진 듯했다. 단점을 장점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성공 인자를 가진 사람들의 전형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7일 대구에서 열린 전국육상경기선수권대회 남자 육상 100m에서 질주하는 김국영 선수. 그는 이날 예선과 준결승에서 자기 기록을 자신이 갈아 치우며 31년 만에 한국 육상 신기록을 수립했다.동아일보 자료 사진
7일 대구에서 열린 전국육상경기선수권대회 남자 육상 100m에서 질주하는 김국영 선수. 그는 이날 예선과 준결승에서 자기 기록을 자신이 갈아 치우며 31년 만에 한국 육상 신기록을 수립했다.동아일보 자료 사진
―‘키가 작아 힘들다’는 말도 많이 들었죠.

“정말 많이 들었어요. 최소 180cm는 돼야 하는데 작은 거 아니냐(176cm) 하시는 거예요. 하지만 결국 신기록은 제가 냈잖아요.”

―본인이 생각하는 장점은….

“발 돌아가는 회전이 빠르다고들 하세요. 남들 두 걸음 뛸 때 저는 세 걸음을 뛰니까요(김 선수는 100m를 대략 47, 48걸음에 주파한다. ‘인간탄환’ 우사인 볼트는 41걸음에 달린다). 보폭을 늘려 가는 게 숙제예요.”

경쟁 상대를 물었다. ‘우사인 볼트’(자메이카)라는 답을 예상했는데 “일본 선수”라는 답이 돌아왔다.

“지난해 11월 광저우에서 전지훈련을 하면서 일본 선수들을 만났는데 자기네들이 최고인 것처럼 행동하는 게 눈꼴사납더라고요. 현재 일본 챔피언 에리구치 마사시(최고기록 10초07)가 23세인데 제가 그 나이 되면 ‘훨씬 잘 뛸 거다’란 생각을 하고 운동을 해요.”

―불가능에 도전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불가능한 일엔 도전하지 않아요. 저의 한계를 잘 알아요. 우사인 볼트를 이기려면 9초9가 아니라 9초6, 7대를 꾸준히 뛰어도 될까 말까예요. 저는 세계선수권대회 매달이 목표가 아니라 결선 그 자체가 목표예요. 아시아권에서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 결선에 올라간 사람이 아직 단 한 명도 없어요.”

―본인이 생각하는 단점은….

“게을러요. 훈련 안 하면 침대에만 누워 자요. 룸메이트 형이 정말 착해서 그렇지 악덕 선배였으면 많이 맞았을 거예요.”

―종교가 있나요.

“불교요. 부모님이 절에 다니세요. 올해는 시간이 없어서 많이 못 갔는데 작년엔 절도 하고 왔어요. 종교란 게 믿음이잖아요. 가서 절 한번 하고 와서 제 마음만 편안해지면 되는 거잖아요.”

인터뷰 내내 영문 이니셜로 디자인된 목걸이가 눈에 띄었다.

“고등학교 입학할 때 영문이름을 따 어머니가 해주신 거예요. (잠시 뒤) 이건 좀 다른 이야긴데 저는 항상 시합을 뛴 뒤 힘들었던 저 자신에게 ‘고생했다’며 선물을 해요. 지갑 같은 것을 바꾼다거나 하죠. 올해도 1월 5일부터 지금까지 휴가 한 번 없이 달려 왔어요. 이번이 첫 휴가예요. 닷새. 이번엔 저를 위한 선물로 목걸이를 택했어요. 어머니랑 같이 가서 고를 거예요. 18K 반짝반짝 빛나는 연예인 금목걸이 같은 걸로요.”

―앞으로의 목표는….

천진했던 그의 표정이 진지하게 바뀌었다.

“전 목표도 없고 꿈도 없고 희망도 없어요.”

―무슨 말이죠.

“꿈이나 목표를 생각하면 이를테면 9초대를 뛰겠다, 이런 거잖아요. 그런데 그 기록만 달성하고 끝낼 것도 아닌데 부질없는 거 같아요. 굳이 목표를 대라고 하시면 ‘아프지 않는 거’예요. 아프지만 않으면 꾸준히 운동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다 보면 (실력이) 늘지 않을까요. 보통 선배님들이 23세에서 27세 사이가 전성기라고 해요. 서른이 되면 은퇴를 하시고요. 저는 저 스스로 성장이 안 된다고 느껴지면 과감히 그만두고 다른 운동에 도전하고 싶어요.”

기자는 12일 전력상으로 열세인 한국이 그리스를 이긴 월드컵 경기를 보면서 김 선수를 떠올렸다. 우리 태극전사들에게서 더는 ‘심리적 위축’이라는 얼굴 없는 유령이 보이지 않았듯 김 선수에게도 그런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헝그리(hungry) 세대’에서 ‘엔조이(enjoy) 세대’로 넘어온 한국 체육계의 변화가 김 선수를 통해서도 느껴졌다. 박태환 김연아 등 선진국형 기록경기에서 세계적인 스타를 배출한 한국이 이제 100m 육상에서도 세계의 벽을 깰 수 있을지 벌써부터 설렌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 김국영


1991년 4월 19일생. 안양 관양중학교에서 육상을 시작해 3학년 때인 2006년 100m 최고 강자로 발돋움했다. 이듬해 평촌정보산업고로 진학한 뒤 고교 1인자로 자리를 굳혔다. 그를 키운 강태석 감독은 1998년 베트남에서 비공인 한국신기록(10초23)을 세운 스프린터 출신. 김 선수는 현재 대림대 1학년에 재학 중이며 소속은 안양시청. 안양시 체육정책을 총괄하는 김상문 씨(문화복지국장)가 그의 아버지다. 올해부터는 장재근 대한육상경기연맹 트랙기술위원장, 이종윤 육상대표팀 감독의 집중지도를 받고 있다. 2남 중 막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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