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의 일과 삶]이희상 운산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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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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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마니아… 美서 와이너리 직접 운영합니다
와인은 문화… 좋은 인연 맺어줘
‘로마네콩티’ 10년 약속 지키기도
강소기업 열망에 페라리 수입… 해외 식량생산 투자 확대할 것

이희상 운산그룹 회장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63빌딩에 위치한 자신의 집무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 회장은 지인들과
‘와인을 생각하는 사람들’ ‘국악을 생각하는 사람들’ 등의 모임을 꾸리며 문화 전도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전영한 기자
이희상 운산그룹 회장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63빌딩에 위치한 자신의 집무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 회장은 지인들과 ‘와인을 생각하는 사람들’ ‘국악을 생각하는 사람들’ 등의 모임을 꾸리며 문화 전도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전영한 기자
지인들은 그를 가리켜 ‘풍류를 아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의 와인 사랑은 유별나고, 국악에 대한 관심도 남다르다. 사진에도 일가견이 있다.

지난달 2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63빌딩의 동아원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제분·사료 생산업체 동아원을 이끌고 있는 이희상 운산그룹 회장이다. 그의 접견실에는 국악 한 자락이 흐르고 있었다. 이 회장이 “와인을 마시느냐”고 기자에게 물었다. “종종 마신다”고 하자 “주로 뭘 마시느냐”고 했다. “에스쿠도 로호, 몬테스 알파…” 미적거리는 기자에게 이 회장은 “와인 이름이 외우기 어렵다”며 껄껄 웃었다. ‘와인 전도사’란 별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니었다.

○ 직접 농사짓는 와인 사랑

지난해 말부터 국내에서 판매되고 있는 ‘온다 도로(Onda d'Oro·황금빛 파도)’와 ‘바소(Vaso·항아리)’는 이 회장의 작품이다. 와인에 푹 빠져 1997년 와인수입 유통사인 나라식품을 세운 데 이어 2005년부터는 미국 캘리포니아 내파밸리에 포도밭을 구입해 와이너리(와인 제조장)까지 운영하고 있다. 자신의 호 ‘단하’에서 이름을 따와 ‘다나’로 명명한 와이너리는 요즘 이 회장이 아주 공을 들이고 있는 곳 중 하나다.

와인 사랑의 이유를 묻자 “와인은 술이 아닌 문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다른 술과 달리 와인은 시간을 두고 사람을 사귀기에 좋아요. 와인을 매개로 대화하고 이해하고 그러면서 인연을 만드는 거죠.” 이 회장은 지난밤에도 와인 덕분에 좋은 인연을 나눴다고 했다. “10년 전 문화계 지인들과 집에서 모임을 가졌는데, ‘로마네콩티’를 한번 마셔 보는 게 소원이래요. 그래서 10년 후에 마시자고 약속을 하고 와인 병에 각자 사인을 했죠. 나이 지긋한 한 학자는 ‘난 그때 없으리’라고 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와인셀러를 정리하다 그 병을 발견했죠.” 그 일행이 지난밤 다시 모여 10년 전 약속을 지켰다고 했다. 물론 ‘없으리라’던 학자도 로마네콩티의 맛을 경험했다.

이런 애착 때문에 이 회장은 내파밸리 농장에서 직접 농사를 짓기도 한다. 그의 직원은 “회장님이 1년에 100일 정도는 해외 출장을 가시는데, 농장에서 직접 포도도 따고 정성이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전했다. 그 덕분인지 미국 시장을 겨냥해 내놓은 ‘다나 로터스 비니어드 2007’이 지난해 12월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로부터 평점 100점을 받는 쾌거를 이뤘다. 세계 와인시장을 쥐락펴락하는 파커의 100점은 그 자체로 세계 최고를 의미한다. 게다가 100점 와인은 전 세계적으로 한 해 10여 종에 불과하다.

이 회장은 “진출 초기에는 텃세도 많았기 때문에 이번 성과는 감개가 무량할 정도다. 어떤 분야에서든지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을 확인한 사실도 값지다”고 말했다.

○ “밝은 빛 내는 강소기업 이끌 것”

‘소창다명 사아구좌(小窓多明 使我久坐).’ 운산그룹의 50년 사사(社史) 표지에는 추사(秋史) 김정희 선생의 글이 적혀 있다. ‘작은 창에 햇빛이 밝아 나로 하여금 그 앞에 오래 앉아 있게 한다’는 이 글처럼 운산그룹을 작지만 강한 기업, ‘강소(强小)기업’으로 키우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다. 그래서 이 회장은 직원들에게도 항상 “1등을 넘어서겠다는 자신감을 가지라”고 당부한다.

그룹 산하에 수입차 판매업체 FMK를 설립해 페라리와 마세라티를 국내 시장에 내놓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회장은 “페라리처럼 명품을 생산하는 강소기업이 되겠다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페라리의 철학과 전략을 배우겠다는 것이다.

이 회장이 지난해 12월 출범한 대한상공회의소 중견기업위원회 위원장을 맡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 “등 떠밀려 하게 됐다”지만 강소기업에 대한 열망이 누구보다 큰 그다. 이 회장은 “중견기업은 한국 경제의 허리를 받치고 있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 끼여 지원이나 혜택을 받지 못한다”며 중견기업에 대한 관심과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해야 발전이 있는데, 여력이 있는 중소기업도 일부러 사업규모를 줄여 중소기업에 머무르려 하는 것이 현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중소기업 범위를 벗어나면 각종 세제 및 금융권 지원 혜택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중견기업의 이해를 대변하기 위해 앞으로 할 일이 많다고 했다.

올해는 운산그룹에 있어서 중요한 해다. 2010년을 글로벌 경영의 원년으로 삼고 2015년까지 그룹 매출 1조4000억 원의 강소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선언한 것. 국내 제분 시장의 25%를 차지하는 동아원의 매출만 현재의 2배인 1조 원 이상으로 늘리겠다는 목표다. 이 회장은 “국내 곡물자급률은 쌀을 제외하면 5% 미만”이라며 “동아원도 환율과 국제곡물가 등 외부 상황에 따른 부침이 심한데, 앞으로는 식량자원의 개발 차원에서 해외 생산 시설에 대한 투자를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지난해 한국전자통신연구원과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개발하고 있는 곡물 생산 이력 추적 장치 유비쿼터스센스네트워크(USN)에 거는 기대도 크다. 이 회장은 “머지않아 동아원이 국내 농업 경쟁력 향상에도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 이희상 회장은 :

―1945년 충남 논산 출생
―1967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1970년 원미섬유 뉴욕지사장
―1987년 한국제분 사장 취임
―1997년 나라식품㈜ 설립, 회장 취임
―1999년 한국제분 회장 취임
―2000년 동아제분(현 동아원) 회장 취임
―2002년~현재 한국제분공업협회 회장
―2001~2005년 프랑스 주요 와인명예기사 작위 4차례 받음
―2007년 FMK 설립, 회장 취임
―2008년 국민훈장 모란장 수상
―2009년 대한상공회의소 중견기업위원장 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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