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영 칼럼]침묵의 이불을 덮은 하얀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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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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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 년 만에 처음이라는 적설량이다. 안부를 묻자 전화 속 친구의 목소리가 오래 잊었던 풍경을 상기시킨다. “전원교향곡에서처럼 많은 눈이 쏟아졌어.” 베토벤의 음악이 아니라 앙드레 지드의 소설이다. 오래된 책을 펴본다. “사흘째 내리 퍼붓는 눈으로 길이 모두 막혀 버렸다. 나는 15년 전부터 매달 두 번씩 예배를 보아 주어 오던 R마을에도 갈 수가 없었다.” 스위스 산속 마을. 주인공인 목사는 ‘어쩔 수 없는 감금상태’ 속에서 눈먼 소녀 제르트뤼드를 회상한다. 깊이 쌓인 눈은 바쁜 걸음을 멈추고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는 성찰과 참회의 계기가 된다.

나도 눈 때문에 산속에 갇혔다. 자발적 감금이다. 첫 번 눈이 쌓였을 때 이웃집 분이 강 건너 마을 식당에 가서 점심을 하자고 해서 길을 나섰다가 좁은 비탈길 살얼음 위로 차가 미끄러져서 사고가 날 뻔했다. 길 한쪽이 바위계곡이어서 위험한 지형이었다. 염화칼슘과 스노체인이 필요한데 읍내를 헤매고 다녀도 구입할 곳이 없었다. 면사무소, 군청에서도 다중이 통행하는 대로가 아니면 각자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답이었다. 우리 골짜기는 깊고 길지만 인가가 드물어 일손이 부족하다.

며칠 후 인터넷으로 염화칼슘을 주문하고 체인을 구입해 장착해 두었다. 만약을 위해 차는 계곡 아래에 세워놓고 걸어서 올라왔다. 새벽에 깨어 보니 또 눈이 온다. 처음에는 아주 가는 가루눈이 온 우주를 잠재울 미약처럼 뿌린다. 많이 쌓일 눈이다. 적설량 10cm가 훨씬 넘을 것 같다는 예보. 지난주에 혼이 난 경험 때문인지 이웃은 다 도시로 떠난 듯 쥐죽은 듯하고 불빛이 없다.

경쟁과 반목 위 소복이 쌓인 눈

그런데 저 소리 없이 쏟아지는 미약에 취한 것인가, 마음이 한가하고 넉넉하다. 이런 거대하고 숭고한 침묵 속에 갇혀본 것이 얼마 만인가. “새벽이었다. 거위털 같은 함박눈이 한들거리며 내려 쌓이고 있었다. 날이 밝아올 무렵인데도, 방안은 여전히 따뜻했다. 눈이 내리는 날의 아침은 그래서 항상 늦잠을 잤다. 잔허리와 엉덩짝에 착 달라붙는 녹작지근한 온기의 미련 때문이었다. 어머니의 고즈넉한 숨소리와 천장이 낮은 방에 고여 있는 짙은 살 냄새조차 부드러운 피곤으로 희석되어 나를 감싸고 있었다. 문밖으로 내리는 눈발은 우리들의 숨소리조차 차곡차곡 삼켜버리고 있는 듯했다. 방안은 바닷속처럼 고요했다.”

김주영의 소설 ‘홍어’는 이렇게 시작된다. 우리가 어렸을 때 눈은 이렇게 왔다. 나와 세상이 하나였다. 온돌은 따뜻하고 밖은 매섭게 추웠다. 일기예보 같은 건 알지도 못했다. 사실은 기댈 곳 없이 배고팠던 그 시절이 시간의 눈에 매몰되어 있었던 탓인가, 지금은 낙원처럼 기억 속에 떠오른다.

그러나 낙원 속에는 제설차가 오지는 않는다. 한나절 줄곧 자동차를 세워놓은 곳까지 혼자 눈을 치워 작은 오솔길을 내느라 바빴다. 눈 속에 발이 무릎까지 빠진다. 눈은 내리고 또 내린다. 저기 산 아래 경쟁과 질주와 반목도 잠시 멈춘 듯 고요하다. 시인이 속삭인다. “괜, 찬, 타… 괜, 찬, 타… 울고 웃고 수구리고 새파라니 얼어서 운명들이 모두다 안기어 드는 소리…”

나는 차에 체인을 감고 인적 없는 계곡을 따라 큰길까지 몇 번을 오가며 바퀴자국을 냈다. 돌아서면 내가 눈을 치운 오솔길이 다시 지워진다. 물론 눈은 녹고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에서 친구 비행사 기요메는 표고 4000m 안데스산맥의 눈 골짜기에 추락했다가 살아 돌아왔다. 그는 두고 온 아내도 “보험증서면 비참하지 않게 살겠지” 하는 믿음에 의지하여 사경을 넘어왔다. 그는 저 산 꼭대기 바위 위에 올라가 몸을 눕히면 눈 녹은 여름에 천길 심연으로 쓸려 내려가지 않겠지 생각한다. “다시 일어나면 저 바위까지 갈 수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그는 이틀 밤 사흘 낮을 한발 한발 걸어 돌아왔다.

설원이 베푼 너그러움의 축복

세상이 한 장의 침묵의 이불을 덮었다. 이런 축복이 어디 있는가. 오직 걱정이라곤 눈을 치우는 일뿐이라니. “괜, 찬, 타… 끊임없이 내리는 눈발 속에서는, 산도 산도 청산도 안기어 드는 소리.” 가래를 눈 속에 꽂아 놓고 잠시 주위를 둘러본다. 모든 것을 다 잊고 잠시 이 순결한 나체의 골짜기와 숲만을 바라볼 수 있다니 얼마나 큰 축복인가.

물론 눈은 녹고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그러나 우리 모두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기요메처럼 행복도시에 이르는 길로 한발 한발 나아가지 않을까. 짧은 일생이다. 새해 벽두의 눈밭이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전라의 설원에 눈을 던지고 자신의 참얼굴을 보라. 새로운 관점이, 새로운 너그러움이, 새로운 이해가 마음속에 되살아날지 모르지 않는가. 100여 년 만에 쏟아진 눈을 맞으며 피해자만 된다면 너무 억울한 일이다.

김화영 문학평론가·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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