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위원회 좌담]아동 대상 성폭행 사건과 언론 보도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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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에도 사후관리 필요… 재범 방지책 촉구해야

《지난해 12월 중순 경기 안산시에서 발생한 초등학생 S 양(8) 성폭행 사건의 실체가 9월 뒤늦게 밝혀지자 온 국민이 분노했다. 범행의 잔인함뿐만 아니라 재판 과정에서 검찰이 미숙하게 대응하고 법원이 음주를 이유로 형량을 낮춰준 사실 등이 드러났다. 동아일보사 독자위원회는 3일 이른바 ‘나영이 사건’을 계기로 ‘아동 대상 성폭행 사건과 언론 보도’를 주제로 이번 사건의 언론 보도 전반을 살펴보았다.》

동아일보사 독자위원회는 3일 본사 편집국 회의실에서 회의를 열고 ‘아동 대상 성폭행 사건과 언론 보도’를 주제로 토론했다.
왼쪽부터 박태서 스탠더드에디터, 박명식 미디어연구소장, 이민웅 위원, 정성진 위원장, 윤영철 위원, 최영훈 김동철
스탠더드에디터. 김미옥 기자
동아일보사 독자위원회는 3일 본사 편집국 회의실에서 회의를 열고 ‘아동 대상 성폭행 사건과 언론 보도’를 주제로 토론했다. 왼쪽부터 박태서 스탠더드에디터, 박명식 미디어연구소장, 이민웅 위원, 정성진 위원장, 윤영철 위원, 최영훈 김동철 스탠더드에디터. 김미옥 기자


―‘나영이 사건’이라고도 하고 ‘조두순 사건’이라고도 하는 이번 아동 대상 성폭행 사건과 관련해 재판에서는 양형의 적정성 문제가, 언론 보도에서는 범행의 묘사와 피해자 및 가해자의 신상을 어느 정도까지 밝힐 것인지의 문제가 제기됐습니다.

▽최영훈 스탠더드에디터=이번 사건은 아동을 상대로 한 극악무도한 범죄라는 점에서 피해자인 아동의 인권을 어떻게 보장하면서 보도할 것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사건 이전에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혜진·예슬이 사건’ 때도 그랬습니다만 범행의 수법을 너무 선정적으로 자세히 보도하면 모방 범죄가 발생할 우려가 있을 뿐 아니라 피해자의 인권을 또다시 유린할 수 있다고 봅니다. 언론이 피해자의 인권에 대해 정말 신경을 많이 써야 합니다.

▽정성진 위원장=이 사건의 보도는 재판이 확정된 사건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가해자에 대한 인권 또는 인격권 침해 문제는 상대적으로 덜했습니다. 그런데 사법 절차에 따라 도출된 결과라고는 하지만 검찰의 상고 포기와 특별법의 미적용 및 피해 어린이에 대한 과도한 조사, 법원의 양형 등과 관련해 국민의 비난이 일었습니다. 그 결과 국민 정서와 법 운영상의 괴리를 줄일 개선책을 모색하는 계기가 마련됐습니다. 미국에서는 범죄의 증거를 매우 엄격하게 해석하지만 일단 범죄가 인정되면 형량을 엄청나게 높이는 데 반해 우리는 증거를 인정하고도 집행유예로 내보내는 등 형량을 낮춰 주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법원이 반성하고 있으니 차츰 나아지리라고 봅니다.

▽이민웅 위원=피해자가 겨우 8세의 어린이였다는 점 말고도 범인 조두순의 잔인한 범죄 수법, 간교한 범행 은폐 기도, 조사 과정에서의 뻔뻔함 등이 있었고 누가 강제로 마시게 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마셨는데도 술에 취해 있었다며 법원이 이른바 음주 감경을 해줬다는 점에 국민은 특히 분노했습니다.

▽윤영철 위원=보도 차원에서 보면 이번 사건에서 피해자의 인권은 상당히 중요하게 부각됐지만 범죄 수법이 극악하고 형이 확정됐기 때문에 가해자의 인권 문제는 대두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차제에 범죄의 잔인성이나 가해자의 신상을 어느 시기에 얼마나 공개할 것인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국민의 알 권리, 범죄의 예방 등 공익 차원과 인권 보호라는 차원은 상충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동 성폭행이나 연쇄 살인 같은 공개 대상 범죄를 정하고 언제 어느 정도의 신상 공개를 할지에 대한 기준을 세울 필요가 있습니다. 동아일보만이라도 준칙을 마련하기 바랍니다. 그래야 인권도 보호하고 공익을 구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엉뚱한 사람을 범인 지목

▽정 위원장=수사 중이거나 재판 중이면 범죄가 아무리 극악하다고 해도 무죄 추정이 기본입니다. 과거 ‘윤 노파 살인사건’ 때에도 단정적으로 범인이라고 지목된 이가 재판 결과에선 무죄로 확정됐습니다. 이젠 그런 오류를 범해선 안 됩니다. 확정 판결이 나지 않은 사건에서는 익명으로 보도하고 신원을 공개하지 않는 것이 헌법 정신이고 원칙입니다. 수사 과정, 재판 과정, 형 확정 등 각 단계에 맞춰 구분해서 보도해야 합니다.

▽이 위원=우리나라에는 최근 가해자에 대한 인권을 과도하게 보호하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신문사가 나름의 내부 준칙을 마련하고 있으며 플로리다 위스콘신 등 주에 따라서는 아예 법으로 피해자의 신원과 사진, 주소 따위를 밝히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예를 참고할 만합니다.

▽박태서 스탠더드에디터=인터넷상에서도 문제점이 나타났습니다. 누리꾼들은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자 범인의 실명을 확인해 공개했습니다. 한발 더 나아가 범인의 사진이라며 공개했는데 이것이 엉뚱한 사람의 사진으로 밝혀졌고, 범인으로 몰린 피해자가 사진을 올리고 퍼뜨린 누리꾼들을 상대로 고소하는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언론에서는 이런 사건이 터지면 보도에만 급급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어떤 법·제도를 만들어야 하느냐’ 이런 것도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김동철 스탠더드에디터=이번 사건을 계기로 사회안전망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전엔 어떤 사건이 터지면 거론되다가도 시일이 지나면 흐지부지되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엔 분위기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성범죄자의 사진을 공개한다든지 하는 것처럼 어떤 식으로든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야 합니다. 특히 아동 대상 성범죄에 대해서는 특별히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 스탠더드에디터=국가는 범죄 피해자들을 돌봐줄 의무가 있다고 봅니다. 국가가 가해자들에게는 한 해 2000억 원 이상의 예산을 쓰는데 피해자들을 위해서는 20억 원도 안 쓰는 게 실상입니다. 특히 성범죄 피해 아동은 평생을 멍에를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만큼 그들에 대한 국가 사회의 배려가 필요합니다.

▽윤 위원=이번 사건의 보도는 예전에 큰 사건을 보도하던 것과는 다른 양상을 보였습니다. 1, 2심 때는 주목을 끌지 못하고 넘어가다 형이 확정된 뒤에 인터넷에서 얘기가 돌고 방송이 다루고 그 다음에 신문이 보도했습니다. 인터넷과 방송을 통해 국민의 공분이 촉발됐는데 신문도 그 분위기를 이어 자극적으로 기사를 쓴 면이 있습니다. 인쇄 매체의 특성을 살려 차분하게 조모조목 따지면서 분석하는 자세가 필요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이 위원=애프터서비스(AS)는 제조업뿐만 아니라 언론에도 필요합니다. 우리 사회는 어떤 사건이 터지면 들끓다가도 금방 가라앉는 측면이 있습니다.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나면 재점검을 해야 합니다. 2차의 정신적 피해를 주는 선정적인 측면은 들어내고 ‘우리 사회가 어떤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 냈는지’를 점검해 보는 ‘애프터서비스 저널리즘’이 필요합니다. 이번 사건만 해도 애프터서비스 저널리즘의 차원에서 의미 있는 기사를 생산할 수 있을 겁니다.

법원 암묵적 관행 사라져야

▽정 위원장=이 사건 이후의 법원 판결에서 아동 성폭행범에 대한 형량이 높아지고 음주 감경 등 암묵적인 관행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는 긍정적인 변화라고 하겠습니다. 선의에서라고 하더라도 피해 아동의 생활환경, 아버지 어머니의 신상이 일부 공개된 것은 부정적인 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제적인 처지가 무척 어렵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동정심이 더 폭발했고 지방자치단체가 피해자 가족을 적극적으로 돕도록 한 측면이 있지만 해당 지역 사람들이라면 이런 정보들만으로도 피해자가 누구인지를 짐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하면 이 부분도 언론이 좀 더 신경 써서 보호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참석자>
○ 위원장
정성진 전 법무부 장관
○ 위원
이민웅 한양대 명예교수
윤영철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장
최영훈 편집국 스탠더드에디터
김동철 출판국 스탠더드에디터
박태서 동아닷컴 스탠더드에디터
○ 사회
박명식 미디어연구소 소장

정리=여규병 기자 3spring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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