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길]<130>‘愛人敬天’ 도전 4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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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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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여성경영인의 호소를 듣다

회사 경영 어느 정도 자리 잡히자
경험 부족 여성 CEO들 도움 요청
함께 관공서 찾아가 문제 해결도

여성경제인박람회에서 장영신 회장(가운데)이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여성으로선 드물게 대기업 총수를 맡고 있는 장 회장에게는 다른 여성 경제인으로부터 크고 작은 고충 상담이 끊이지 않았다. 사진 제공 애경그룹
여성경제인박람회에서 장영신 회장(가운데)이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여성으로선 드물게 대기업 총수를 맡고 있는 장 회장에게는 다른 여성 경제인으로부터 크고 작은 고충 상담이 끊이지 않았다. 사진 제공 애경그룹
신문 지면은 화제의 인물을 자주 소개한다. 언제부터인가 여성을 지면에서 자주 보게 됐다. 여성 사관생도, 여성 군인, 여성 전투기 조종사, 여성 타워크레인 기사 등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남성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던 일에 여성이 진출했다는 뉴스다. 이뿐 아니다. 골프와 피겨스케이팅, 역도 같은 스포츠 종목에서 여자 선수가 남자 선수 못지않은 기량을 발휘하며 세계적인 선수로 발돋움하는 뉴스를 이제는 쉽게 접할 수 있다.

세계 인구의 절반은 여자다. 어느 분야에서든 남자와 여자가 반반씩 존재해야 정상이다. 그런데도 이런 뉴스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보면 여자가 이 사회를 살아가는 일이 그리 녹록하지 않다는 증거이다. 특히 결혼한 여성은 출산과 육아 부담 때문에 여전히 남성에 비해 경제나 정치 분야 진출에 어려움이 많고, 실제 진출한 사례도 적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여성 최고경영자(CEO)나 정치인은 남성보다 수적으로 훨씬 적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컨버전스, 퓨전, 권위 타파, 감성마케팅이 중요한 경영 요소로 주목받으면서 기업 현장에서 여성의 섬세함과 정밀함이 재평가 받았다. 내가 기업경영을 처음 시작한 1970년대 초반과 비교하면 경제계에서 여성 CEO의 활약상은 눈에 띌 정도로 많아졌고 그들의 활동도 다양해졌다. 불과 10∼20년 전까지만 해도 여성이 회사를 운영하는 일은 현실적으로뿐만 아니라 제도적으로도 막혀 있다시피 했다.

내가 경영 일선에 나선 지 20년이 다 되어 가던 1990년대 초반, 어느 정도 회사 경영이 자리 잡혔다고 생각할 즈음 다른 여성 경영인에게서 도와달라는 요청이 늘기 시작했다. 이들은 나와 별다른 개인적 친분이 없던 여성 CEO였는데 대부분 중소기업을 운영했다. 굳이 인연을 찾자면 같은 여성이라는 점이었다. 여성인 내가 대기업에 속하는 애경그룹을 경영한다고 하니 같은 여성으로서 조언이나 협조를 구하기 위해 나를 찾았던 것이다.

이들의 민원 가운데는 관공서와 관련된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묻는 상담이 많았다. 아무래도 여사장은 그런 방면으로는 지식이 적었고, 남성 사업가보다는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든 해결하려는 적극성이 떨어졌다. 남성 같았으면 대수롭지 않게 처리할 수 있는 일도 이들은 겁을 냈다. 비단 여성이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주변에 여성 사업가가 워낙 적어 조언을 구하거나 의지할 사람이 많지 않았던 탓이다. 어떤 여성 CEO는 회사 운영과 관련해 당시 상공부와 국세청 은행 조달청 등 주요 관공서에 함께 가서 억울함을 호소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들의 사정을 듣자니 일면식도 없는 남의 회사 일이지만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너무 불공평한 대접을 받고 있어 안타까웠다. 충청도에서 국수사업을 하던 여사장은 “회사 경영은 내가 하는데 은행에서 대출을 100만 원이라도 받으려면 회사와 상관없는 남편이 보증을 서 줘야 가능하다”고 하소연했다. 기업체를 운영하는 여사장의 개인 신용으로는 대출이 안 되고 직업도 없는 남편의 보증이 있어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여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제도적으로 대출이 막혀 있는 셈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이겠지만 당시에는 실제로 그랬다. 여자가 사장을 맡는다는 일 자체를 우리 사회는 매우 이례적이고 어색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세금과 관련된 문의도 많았다. 나 역시 경영을 하면서 가장 어렵다고 느꼈던 점 중 하나다. 한 번은 패션사업을 하는 여성 CEO가 “통보 받은 세금을 모두 납부하면 회사 문을 닫아야 할 지경이다”라면서 찾아왔다. 사정이 워낙 다급하고 딱해 보여 여사장과 함께 세무서를 찾아가 가까스로 문제를 해결해 줬다. 남성 위주의 기업 현장에서 다양한 어려움을 겪는 사정이 남의 일 같지 않아 시간이 날 때마다 힘껏 도왔다. 그러던 어느 날 여성경제인연합회 허복선 회장(작고)이 나를 찾아왔다.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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