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일의 ‘내사랑’ 스포츠]‘붉은 악마’ 이어 ‘하얀 악마’도 생길까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0월 6일 11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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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악마'. 한국축구대표팀 공식 응원단의 별칭이다.

악마라는 탐탁치 않은 말이 붙어 있기는 하지만 한국축구대표팀 공식응원단을 상징하는 애칭으로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이 붉은 악마의 원조는 1983년 세계청소년(20세 이하) 축구대회에 출전한 한국청소년대표팀이다.

이 때의 멤버를 보자.

박종환 감독, 원흥재 코치. 골키퍼에 김풍주 이문영을 비롯해 신연호 이기근 김종부 김판근 노인우 김종건 강재순 유병옥 이태형 장정 문원근 최익환 김흥권 이승희 최영길 이현철.
멕시코에서 열린 이 대회에서 한국축구는 엄청난 체력과 스피드를 과시하며 승승장구, 세계 축구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사실 이 대회전까지 한국축구는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했다.
1954년 스위스월드컵에 출전했던 한국축구는 이후 지역예선에서 번번이 고배를 들며 월드컵 무대를 밟아보지 못했다. 아시아에서도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국가들과 경쟁하며 겨우 정상권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독사' '냉혹한 승부사'라는 별명이 붙어있던 박종환 감독의 혹독한 훈련을 받아 새까맣게 탄 모습의 태극전사 18명은 멕시코 고원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스코틀랜드와의 첫판은 0-2로 졌다. 2차전은 홈팀 멕시코와의 경기. 멕시코전에서 노인우 신연호의 연속골로 2-1로 승리했고 호주와의 3차전에서는 김종건 김종부가 골을 넣어 역시 2-1로 이겼다.

남미의 강호 우루과이와의 8강전. 한국은 신연호가 혼자 2골을 터뜨리며 2-1로 이겨 4강에 올랐다.
한국축구 첫 세계대회 4강 신화가 작성되는 순간이었다.

1983년 6월 5일 멕시코전부터 시작된 한국의 연승 행진은 당시 전국을 축구 열풍으로 몰아넣었다.
한국의 연승은 4강전에서 이 대회 우승팀인 브라질을 만나 끝났다. 하지만 최강 브라질과의 경기 내용은 막상막하였다. 한국은 1-2로 패했지만 김종부가 골을 넣으며 밀고 밀리는 접전을 벌였다.

붉은 유니폼을 입은 청소년 태극전사들의 플레이가 얼마나 대단했으면 외국 언론이 '붉은 악마'라는 별명을 붙였을까.

멕시코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서의 4강 신화는 이후 한국축구의 발전에 큰 밑거름이 됐다. 30대 이후의 축구팬들이라면 지금도 박종환 감독을 비롯해 그 때의 선수들 이름을 다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이집트에서 열리고 있는 2009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청소년대표팀이 26년 전 '박종환 사단'과 비슷한 행로를 밟아가며 8강에 올랐다.

한국은 카메룬과의 1차전에서는 0-2로 졌다. 하지만 2차전 독일과의 경기에서 1-1로 비긴 뒤 미국과의 3차전에서는 3-0의 대승을 거두며 16강에 올랐다.

16강전에서도 한국은 남미의 강호로 예선에서 단 1실점만을 기록한 파라과이를 상대로 3골을 터뜨리며 승리해 8강에 가뿐하게 진출했다.
한국청소년축구가 26년 만에 4강에 오른다면 그 의미는 크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한국축구가 4강 신화를 이뤘지만 안방에서 전 국민적인 성원을 등에 업고 이룬 것이기 때문.

여기에 이번 청소년대표팀 멤버가 23세 이하 선수로 구성되는 2012년 런던올림픽의 주축 멤버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올림픽 메달 전망도 밝아진다.

아! 한가지. 이번 한국청소년대표팀은 붉은색과 하얀색 유니폼을 번갈아 입고 출전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하얀 악마'라는 별명이 또 하나 생기지 않을까.

권순일| 동아일보 스포츠사업팀장 stt7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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