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길]<96>‘愛人敬天’ 도전 40년

  • 입력 2009년 9월 28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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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11월 당시 애경유지 장성돈 사장(왼쪽)이 오정근 당시 국세청장에게 우량모범납세자 표창을 받고 있다. 유한양행에 이어 기업으로서는 사상 두 번째 모범납세 표창 사례다. 사진 제공 애경그룹
1971년 11월 당시 애경유지 장성돈 사장(왼쪽)이 오정근 당시 국세청장에게 우량모범납세자 표창을 받고 있다. 유한양행에 이어 기업으로서는 사상 두 번째 모범납세 표창 사례다. 사진 제공 애경그룹
<19> 털어서 먼지 안 난 세무조사

1971년 ‘탈세 자수기간’ 신고 안해
국세청 2주간 대대적 세무조사
문제점 못찾자 ‘모범 납세자’ 표창

지금도 그렇지만 1970년대에도 국세청의 세무조사는 기업에 큰 부담이었다. 회계 처리를 완벽하게 해도 큰 기업을 경영하다 보면 의도하지 않게 누락되는 부분이 생겨 항상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1971년 6월 22∼30일 당시 정부는 기업을 상대로 특별 세금 재수정 신고기간을 마련했다. 탈세한 부분이 있더라도 기업이 이 기간에 ‘자수’하면 넘어가 주겠다는 취지였다.

대부분의 기업이 자발적으로 다시 세금을 신고했지만 애경은 재신고를 하지 않았다. 성실하게 납세했고 각종 회계 장부도 정확하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굳이 다시 수정할 필요가 없었다.

당시 세무 당국은 다른 기업과 달리 자수를 하지 않은 점을 수상하게 봤던 듯했다. 국세청은 애경에 대해 전면적이고 강력한 세무조사를 시작했다. 당시 애경은 장성돈 사장이 이끌고 있었다. 장 사장은 내 친오빠로, 남편이 사망하기 전까지 애경유지 상무를 맡고 있었다. 창업주의 부재에 이어 세무조사까지 겹치면서 그야말로 위기가 겹겹이 찾아왔다. 나는 1970년 7월 남편의 갑작스러운 사망 직후 유복자로 태어난 넷째 아이를 돌보며 슬픔에서 채 벗어나지도 못한 때였다.

1971년 10월 25일 아침 갑자기 국세청 조사국 직원 10여 명이 애경 본사(당시 서울 남대문로1가 대일빌딩)와 영등포 공장(현 AK플라자 구로본점)에 들이닥쳤다. 같은 시간 대구의 4개 직매소에도 국세청 직원들이 들이닥쳐 장부를 모두 압수해 갔다. 그때 국세청에서 가져간 서류더미는 한 트럭을 꽉 채울 정도였다.

그날로부터 2주 동안 국세청의 강도 높은 심리가 계속됐다. 나중에 들으니 조사담당 직원들은 조사를 하는 동안 깨끗한 서류를 보면서 오히려 초조했다고 한다. “털어 보면 당연히 먼지가 나오겠지”라며 판매 수금대장과 대리점, 도매상의 장부를 회사 장부와 일일이 맞추어 보았다고 한다.

장부 대조 과정에서 문제점을 찾지 못하자 국세청 직원들은 애경이 당시 상공부에 제출했던 생산실적보고와 비누공업협회의 우지배정내용, 원료사용량과 제품 생산량까지 비교하며 조사에 나섰다. 그래도 아무런 잘못이 나오지 않자 제품의 무게까지 일일이 달아봤으나 그것까지 정확했다.

결국 국세청은 머리를 숙였다. 서슬 퍼렇던 국세청이 애경에 대해 표창을 하겠다고 나섰다. 1971년 11월 12일 애경유지는 국세청으로부터 ‘우량 모범 납세자’로 표창을 받았다. 1968년 유한양행이 기업 최초로 우량 모범 납세자 표창을 받은 뒤 두 번째 대상자였다.

당시 오정근 국세청장 명의의 표창장에는 ‘귀하는 납세의무자로서 숭고한 납세의식을 충분히 인식하고 국가 세수증대에 적극 협조하였으며 특히 기장한 제 장부 및 증빙은 그 거래내용이 성실하여 탈세풍조를 근절하고 납세도의를 앙양하고자 하는 국가발전에 부응하여 타의 모범이 되므로 이에 표창한다’고 적혀 있다.

세금 관련 정보를 정확하게 신고하는 것은 기업의 당연한 의무이지만 당시 한국적 풍토에서는 이 점이 신선하게 받아들여졌다. 당시 한 신문은 애경의 표창 소식을 전하면서 “국세청으로서는 세무사찰의 권한이나 장비 등이 미비하여 애로점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전가의 보도격인 세무사찰로 납세자의 권익을 침해하지 말아달라는 납세자의 소리에 타당성이 있음을 입증?”이라고 보도했다.

대전의 이은옥 씨라는 소비자는 애경으로 편지를 보내왔다.

“밝아오는 새 아침 신문을 뒤적이다 반가운 기사를 읽었습니다. 귀사가 세무사찰에 모범이 되어 상을 받으셨다니 애용자의 한 사람으로 무엇보다도 흐뭇했습니다. 부정품이 날뛰는 요즘 털끝만 한 흠도 없는 장부처리를 하셨다니 이는 귀사 제품이 반드시 품질을 보장해 준다는 산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애용자의 한 사람으로 앞으로 전적으로 귀사 제품을 쓰도록 이웃까지 권장하기를 서슴지 않겠습니다. 11월 14일 새벽.”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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