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후지와라 기이치]韓日은 동병상련의 이웃

  • 입력 2009년 7월 14일 02시 56분


한일 양국 간에는 몇 가지 과제가 있다. 교과서의 역사 기술이나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영유권 문제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조차도 없다. 대북 문제만 해도 한국이 북한의 위협을 강하게 의식했던 1970, 80년대에는 일본은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으나 한국이 햇볕정책으로 전환한 시기에는 북한의 위협에 대한 관심이 일본에서 전례 없이 높아졌다. 한일 양국의 지리적 거리는 가까워도 심리적 거리는 먼 것처럼 보인다.

양국 간 거리가 줄어든 사례도 있다. 하네다(羽田)∼김포공항 노선의 개설로 사람들은 서울∼부산이나 도쿄∼후쿠오카(福岡)를 오가는 것과 같은 느낌으로 서울∼도쿄를 왕래할 수 있게 됐다. 일본에서는 한류드라마가 대히트 중이고, 일본의 팝이나 소설이 한국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져 사회적인 의미에서의 거리도 좁혀졌다. 셔틀외교 등 양국 정상의 빈번한 만남으로 정치에서의 양국 커뮤니케이션도 확대됐다.

아시아에서, 나아가 세계의 눈으로 볼 때 한일 양국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비슷한 입장에 놓여 있다. 양국은 미국에 안전보장을 의존하고 있다. 양국은 국방을 위해 미국을 필요로 하지만 미국은 그 정도는 아니다. 이에 따라 양국은 미국의 판단으로 자칫 바라지 않는 전쟁에 휘말려들 수도 있다는 ‘휘말림의 공포’와 미국이 가버리면 안전을 위협받는 ‘방치의 공포’를 공유하고 있다. 두 가지 공포에 관한 한 한미관계와 미일관계의 역사는 빼닮았다.

경제면에서의 대미관계도 공통점이 많다. 수출지향 공업화를 달성한 전형적인 사례로 꼽히는 한일 양국은 자유무역의 수혜자로서 미국이 보호무역으로 회귀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해왔다. 농업 등 경쟁력이 부족한 부문이 무역자유화로 타격을 입을까 우려하는 점도 같다. 자유무역에 의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유화의 확대를 두려워하는 이중성이 한미, 미일관계의 핵심이다.

중국과의 관계도 문제다.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한일 양국은 대중(對中)관계에서 미국보다 적극적이었고 대중 투자도 활발했다. 미중 간에 뿌리 깊은 대립이 남아있던 시기에 양국은 중국을 서방 세계에, 특히 미국에 접근시키는 중개 역할을 모색했다. 톈안먼(天安門)사건 이후 일본의 대중정책과 전두환정권 이후 한국의 대중정책은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

21세기에는 중국 경제가 양국을 압도하면서 미중관계가 긴밀해졌다. 양국은 이제 미중 협력에 의해 두 나라가 방치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갖게 됐다. 6자회담이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도 양국은 미국과 중국이라는 G2가 실질적인 결정권을 행사하는 상황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다. 양국이 국제무대에서 다국 간 협력을 계속 주장하는 배경에는 G2가 모든 것을 결정해버리면 스스로의 입지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자리 잡고 있다.

이렇게 보면 아시아와 세계에 놓인 양국의 상황에는 공통점이 실로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식민지 지배라는 잔혹하고 무모한 권력행사로 근대세계에서의 한일관계가 시작된 것은 반복돼선 안 될 비극이다. 그러나 지금 양국은 독립주권 국가로서 서로를 인정할 수 있는 신뢰관계를 맺고 있다. 국제관계에서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닮은 입장에 놓여 있고 공통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는 점을 알면 알수록 양국의 협력은 긴밀해질 것이다.

늦어도 10월까지는 일본에서 민주당 중심의 정권이 들어설 가능성이 크다. 새 정권의 발족을 기회로 양국이 협력하는 의미를 다시금 확인하도록 양국 정부에, 또 국민에게 요청하고 싶다.

후지와라 기이치 도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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