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성이 국가경쟁력이다]<4>대학 인재양성 시스템

  • 입력 2009년 4월 3일 03시 02분


창의-융합적 사고가 차세대 리더 키운다

“창의적 사고의 핵심은 차이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미국 버펄로 뉴욕주립대에서 ‘문제 해결의 창의적 접근법’이란 수업을 맡고 있는 메리 머독 교수는 기자와 만나 “학생들이 여러 지식의 공통점을 모으는 수렴적 사고와 하나의 지식을 다양하게 해석하는 발산적 사고를 동시에 익히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이 수업은 학생 4, 5명이 한 팀이 돼 브레인스토밍 등 토론을 거쳐 문제를 찾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 대학의 국제창의성연구센터는 이번 학기에만 5개의 창의성 수업을 개설했다. 대부분 창의적 문제 해결이 주제다.

미국 대학에선 최근 창의성 바람이 거세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달 10일 교육정책을 언급하며 “학생들이 문제 해결, 비판적 사고, 기업가 정신 그리고 창의성 같은 ‘21세기형 기술’을 지녔는지 평가할 기준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학 국제창의성연구센터 제럴드 푸치오 교수는 “창의성 교육을 통해 사회가 요구하는 창의적 인재를 키울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며 “창의적 인재는 21세기형 리더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국제창의성연구센터의 석사과정에 다니는 라이언 이스텀 씨는 “공립학교에 다니면서 시험 점수로 평가받은 기억밖에 없다”며 “대학원에서 공부하며 어릴 때부터 창의적인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신념이 확고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졸업하고 고향에 돌아가 초등학교에서 활용할 수 있는 창의성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할 계획이다.

○ 창의성 교육은 신입생 필수 과목

창의적 인재 양성은 국내 대학에도 절박한 당면 과제다. KAIST는 지난해 ‘디자인 및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강의를 개설했다. 1학년들은 이 강의를 필수로 들어야 한다.

수업은 철저히 팀 프로젝트 위주다. 자연대와 공대, 인문사회과학부 교수 20명은 주제를 던져주고 조언할 뿐 문제를 설계하고 해결방법을 찾는 일은 전부 학생들의 몫이다. 작년 2학기에는 ‘아프리카에 백신을 공급할 새로운 방법을 개발하라’ ‘인터넷 발달이 낳은 정보 접근의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라’ 같은 과제가 떨어졌다.

강의를 기획한 KAIST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이태식 교수는 “이공계 학생들은 주어진 수식을 계산하고 데이터를 분석하는 데는 뛰어나지만 통합적인 사고에는 상대적으로 약해 이 강의를 개설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문제를 설계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창의적 사고가 나오도록 유도한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의 만족도도 높다. 지난해 1학기 수업이 끝난 뒤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67.7%가 수업에 만족하며, 68.3%는 사고능력이 향상됐다고 답했다.

○ 새로운 것을 만드는 융합 사고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은 창의적 인력을 양성한다는 목표 아래 지난달 석·박사과정 학생 32명을 처음으로 선발했다. 교수진은 철학박사 경영학박사 공학박사 등 인문사회와 이공계 전공자들을 두루 섞었다. 건물 안의 동선도 일부러 복잡하게 만들어 학생들이 오가다 서로 마주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과와 상관없이 연구실도 한 공간에 몰아넣어 자유롭게 토론할 분위기를 만들었다.

윤의준 부원장은 “북유럽에서도 최근 인문사회와 이공계 분야의 벽을 허물고 융합교육을 시도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며 “다른 분야가 섞여 새로운 결과물을 내는 과정에서 창의성이 샘솟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음악원 이진원 교수는 이런 융합적 사고를 자신의 전공으로 승화시켰다. 경기과학고를 졸업한 이 교수는 KAIST에서 물리학을 공부한 뒤 지금은 전통음악을 연구하고 있다. 그는 “과학을 공부한 덕에 단소와 퉁소를 다른 시각에서 연구할 수 있다”며 “전통음악을 연구할 때도 ‘왜 그럴까’ 같은 과학적 사고를 늘 한다”고 말했다.

버펄로=이현경 동아사이언스 기자 uneasy75@donga.com

▼美 버펄로대 국제창의성연구센터 푸치오 교수▼

“감자튀김 용기 케첩통도 창의적 사고의 산물”

미국 버펄로 뉴욕주립대 국제창의성연구센터는 1967년 세계 최초로 창의성을 연구하는 대학원 과정을 개설했다. 이곳은 브레인스토밍 기법이 탄생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학과장을 맡고 있는 제럴드 푸치오 교수(사진)는 “당시 창의성 연구가 생소한 탓에 대학에서 설립 승인을 얻기 힘들었다”며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2년 동안 창의성 수업을 들은 그룹이 학업 성취도 등 여러 방면에서 우수하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푸치오 교수는 창의성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생산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했다. 창의적인 사람은 지식과 상상력, 판단력을 두루 갖추고 있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창의성이 거창한 개념은 아니다. 푸치오 교수는 “햄버거 세트에 나오는 감자튀김 용기에 작은 케첩 통을 다는 아이디어도 창의적 사고의 산물”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제창의성연구센터에는 새로운 디저트를 개발하려는 식품회사(크래프트), 유아용 장난감을 개발하는 완구회사(피셔프라이스) 등 창의적 사고가 필요한 기업의 요청이 줄을 잇고 있다. 푸치오 교수는 “한 분야의 아이디어를 다른 분야에 적용하는 연습이 창의성을 기를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조언했다.

이현경 동아사이언스 기자 uneasy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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