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대연봉 과학기술인]<3>연구 국제교류 이규호 박사

  • 입력 2008년 10월 3일 02시 58분


20여 년을 몸담아 온 연구실에서 실험장비를 조작하고 있는 이규호 박사. 그는 막 기술이야말로 미래 산업에서 에너지와 환경 문제를 해결해 줄 열쇠라고 강조한다. 사진 제공 한국화학연구원
20여 년을 몸담아 온 연구실에서 실험장비를 조작하고 있는 이규호 박사. 그는 막 기술이야말로 미래 산업에서 에너지와 환경 문제를 해결해 줄 열쇠라고 강조한다. 사진 제공 한국화학연구원
伊와 ‘분리막’ 공동연구… ‘윈윈효과’ 톡톡

○ 2008년, 내겐 너무 특별한 이탈리아

로마와 나폴리, 베네치아, 밀라노…. 이탈리아 하면 대부분 이런 도시를 떠올린다.

난 다르다. 칼라브리아. 장화 모양 이탈리아 반도의 앞부리에 있는 시골 지방이다.

이곳과의 특별한 인연이 올 6월 ‘이탈리아 최고 공로 친선 훈장’을 받는 데 한몫했다. 이 상은 이탈리아 대통령이 이탈리아와의 교류 증진이나 국제협력에 기여한 사람에게 준다. 한국 과학기술 분야에서는 내가 처음 받았다.

칼라브리아대에는 분리막기술연구소가 있다. 이 연구소와 우리 연구실은 막 분야의 인력교류와 공동연구를 활발히 진행해 왔다.

이탈리아는 전통적으로 섬유산업이 강세다. 섬유산업에선 폐수가 많이 생기게 마련. 이를 처리하면서 막 연구가 발전하지 않았을까.

막 분야에서 이탈리아는 공정연구를, 한국은 소재연구를 잘해 왔다. 공정과 소재기술이 손을 잡으니 좋은 성과가 많이 나올 수 있었다.

이런 성과를 고맙게도 우리 연구원이 인정해줬다. 지난해 6월 영년직 연구위원에 임용된 것. 정년까지 총연봉의 20%를 올려 받고 매년 일정액의 연구비를 추가로 지원받게 됐다.

2006년 9월. 한국의 막 연구자들은 시칠리아 섬으로 날아갔다. 지중해변에서 우린 서로의 연구를 경청했다. 이탈리아의 음악과 음식, 문화도 함께 즐기면서.

이탈리아와의 인연은 199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 국제학회에서 분리막기술연구소의 엔리코 드리올리 박사를 만났다. 15년 연상에 유럽막학회장을 지낼 정도의 실력자다. 희한하게도 우린 처음부터 오랜 친구처럼 얘기가 잘 통했다.

1995년부터 2년에 한 번씩 서로의 나라를 오가며 국제공동학회를 열었다. 아이디어도 얻었다. 화학물질의 반응과 분리가 동시에 일어나는 막반응기가 바로 그것. 이를 이용하면 실제 화학공정에서 시간과 에너지가 훨씬 절약될 것이다.

○ 1987년, 외국과의 기술 격차 실감

막은 쉽게 말해 섞여 있는 물질을 분리하는 데 쓰인다. 정수기에서 물속 불순물을 거르거나 공장에서 여러 성분이 혼합돼 있는 석유를 정제하는 등으로 말이다.

1987년 미국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왔을 땐 국내에서 막 전문가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하지만 외국은 달랐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선 바닷물을 식수로 쓰기 위한 담수화용 분리막 기술이 실용화됐다. 화학회사 몬산토는 기체(수소)를 거르는 막까지 개발했다.

가만있을 수 없었다. 막 기술이 한국 산업발전에 필수라고 확신했으니까. 1987년 한국화학연구원에서 연구실과 실험장비를 마련해 줬다.

막 하면 작은 구멍들이 뚫린 평면 모양을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의외로 막도 종류가 다양하다.

1996년 동양나일론(현 효성)과 함께 개발한 건 물 처리용 중공사(中空絲)막. 이 막은 샐러드에 넣는 마카로니처럼 가운데가 비어 있는 원통 모양이다. 원통 벽에는 100만분의 1m보다 작은 구멍들을 뚫어 더 많은 물을 통과시킬 수 있게 했다.

중공사막은 반도체 공정 등에 쓰이는 공업용 초순수 제조나 피를 걸러주는 인공신장, 정수기 필터 등에 쓰인다.

○ 1977년, 꿈이 시작되다

사실 유학 전 화학연구원이 처음 설립됐을 때도 잠시 일했었다. 그때 한국 화학연구의 중심이 되겠다는 꿈을 품었다.

그 꿈을 난 아직도 꾼다. 막은 참 변화무쌍하다. 핵융합반응이나 연료전지, 이산화탄소 저장 등 여러 분야에 맞게 자유자재로 변신할 수 있으니까. 막 기술로 한국 산업계의 에너지와 환경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

정리=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sohyung@donga.com

▼주목! 이 기술▼

이규호 박사팀은 2006년 국내 부품소재기업 시노펙스와 함께 미국이나 일본 제품보다 성능을 20∼25% 높인 물 처리용 나노복합분리막을 개발했다. 연구팀은 “하루에 m²당 4∼5t의 물을 걸러내는 이 막의 개발로 2015년 약 1조5000억 달러 규모로 예상되는 세계 물 산업시장에 본격 진입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지금까지 분리막과 막반응기 관련 70여 건의 특허를 등록하고 185편의 학술논문을 발표했으며, 7건의 연구결과를 기업에 이전했다.

● 이규호 박사는

1952년 5월 서울 출생

1975년 2월 서울대 공대 응용화학전공 졸업

1977년 2월 KAIST 응용화학전공 석사과정 졸업

1984년 8월∼1987년 3월 미국 신시내티대 분리막연구센터 연구원

1984년 12월 미국 아이오와대 화학 및 재료공학 박사과정 졸업

1987년 4월∼현재 한국화학연구원 선임·책임연구원, 분리막다기능소재연구센터장, 응용화학연구부장, 연구위원

1993년 12월∼1994년 3월 일본물질공학연구소 초빙연구원

2000년 6월∼현재 국가지정연구실(NRL) 분리막다기능연구실 연구책임자

2002년 1월∼현재 한국막학회 부회장, 회장, 고문

2002년 3월∼현재 고려대 객원교수, 연세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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