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보기자의 이 한수]“5000년 바둑사 있을 수 없는 역전패”

  • 입력 2007년 12월 6일 02시 56분


코멘트
윤준상 국수(6단)는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그의 얼굴엔 자책의 심정이 묻어나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졌다. 아마 대국실만 아니라면 ‘꽥’ 하는 비명을 질렀을 것이다.

2일 경북 포항시청에서 열린 국수전 도전기 제2국.

중반 무렵 윤 국수는 필승의 형세를 만들어 놓았다. 그의 앞에 수많은 길이 놓여 있었다. 100가지 선택 중 99개는 ‘개선문’으로 향해 있었다. 오직 하나의 길만 ‘패배의 늪’으로 가는 방향이었다. 눈 감고 선택해도 늪에 빠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믿었다. 대마를 잡지 않아도 20여 집 이긴 상황이었다. 하지만 윤 국수는 상대인 이세돌 9단의 대마를 잡으러 간 선택이 당연하다고 믿었다. 이 9단의 성적이 요즘 좀 좋은가. 도전 5번기에서 한 판을 진 상황인 만큼 이번에 확실히 대마를 잡고 이겨 이 9단의 기세를 꺾어야 한다는 판단에 추호의 의심도 없었다.

윤 국수는 가장 확실하다고 믿은 길로 들어섰다. 그 길은 평온하고 향기로웠다. 늪은커녕 승리로 가는 탄탄대로라고 확신했다. 늪은 있을 데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발이 쑥 빠지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늪이었다.

장면도 흑 1이 늪으로 발을 들여 놓은 패착이었다. 백 대마를 잡으러 가는 가장 강퍅한 수였다. 하지만 그는 미처 백 8, 10의 묘수를 떠올리지 못했다.

‘가’와 ‘나’가 맛보기여서 백 대마는 아무런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살았다. 만약 흑이 참고도 흑 1로 보강하면 백 16까지 멋지게 살아간다.

이 무렵 검토실에선 서봉수 9단이 목소리를 높였다.

“5000년 바둑사에서 있을 수 없는 패배야, 내가 2회 응씨배 결승 최종국에서 일본의 오다케 히데오 9단에게 대역전극을 펼친 것도 이 바둑보단 못해. 어떻게 이런 바둑이 역전되나.”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