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로 구술잡기]왜 사냐면,…웃지요

입력 2007-09-15 03:00수정 2009-09-26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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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매일 겪는 일들이 누군가에게는 전문적인 연구 대상이다. 밥 먹고, 옷 입고, 학교 가서 공부하고…. 요리 전문가, 의상 디자이너, 교육학자 등이 평생을 걸고 탐구하는 주제들이다.

흔하고 익숙해 보이는 우리네 일상은 그토록 특별한 주제들로 채워져 있다. 울고 웃는 모든 일은 내 삶과 기억의 세포들이다. 우리도 이 순간들을 새롭게 집중해 보면, 더 많은 의미로 인생을 채우게 될 터다.

이 책은 ‘웃음’을 주제로 인간성의 깊은 호수를 탐사한다. 저자는 여러 사연에 얽혀 있는 웃음의 역할을 맛깔스러운 문체로 우려낸다. 속까지 잘 익은 감자의 구수한 맛과 향처럼, 소설부터 판소리까지 ‘웃기는 이야기’ 안에 새겨진 깊은 지혜들도 함께 음미해 보자.

먼저, ‘흰 웃음’부터 살펴보자. 마해송의 ‘불씨’에는 불씨 때문에 소박맞게 된 며느리 이야기가 나온다. 며느리는 “뒷집에서 빌려온 불씨가 아니라 빌려준 것을 받아온 것”이라는 하직 인사 덕에 시아버지의 마음을 돌렸다. 고양이의 발톱을 비켜서는 쥐의 기지는 경직된 마음이 아니라 여유에서 나온다. 승패를 떠나 모두가 환하게 웃는 ‘흰 웃음’은 건강하고 사교적인 관계를 만드는 ‘기름 치는 웃음’이 된다.

반면, ‘검은 웃음’도 있다. 다른 사람의 약점을 조롱하면서 병적인 자기만족을 취하려는 ‘교활한 웃음’이다. 특정 국가 사람을 놀려 먹거나 신체의 특징을 야유하는 웃음은 ‘질 낮은 검은 웃음’이다. 인지상정일까. ‘처녀 뱃사공과 과객 이야기’에서 못된 선비가 마지막에 겪게 되는 수모는 너무나 통쾌하다.

한편, 익살이나 기지를 담아 풍자로 승화된 ‘질 높은 검은 웃음’도 있다. 성현의 ‘용재총화’에는 교만에 빠진 고을 수령이 호방을 놀려 먹기 위해 악담으로 시를 짓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호방은 그 시를 패러디하여 수령의 부패를 찌른다. 풍자의 신랄함은 촌철살인의 쾌감을 준다. ‘희극적 도치.’ 기득권 층을 겨냥했던 김삿갓의 풍자시, 박지원의 ‘호질’ 등이 민중의 마음을 달래주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웃음은 인간의 마음을 강하게 한다. “저승이 얼마나 좋으면 죽은 후에 돌아온 사람이 하나도 없겠는가”라 말하는 노인은 죽음 앞에서 유머로 당당해진다. 거문고로 떡방아 소리를 내어 마음을 달랬다는 백결 선생 또한 재치로 가난의 무게를 이겨낸 승자이다. ‘흥부전’에서 흥부에게 던진 따뜻한 웃음과 놀부에게 던진 차가운 웃음은 우리네 삶을 긍정하려는 마음의 한판 굿인 셈이다.

구술시험은 겉보기에는 큰 주제로 접근하지만, 종국에는 내 삶의 고민을 겨냥한다. 인간의 희로애락은 남의 것이 아니라 내 것일 때 소중해지기 때문이다. 웃는 얼굴에는 침 못 뱉고 복까지 찾아온다 하지 않던가. 일부러라도 이 책 속 산책길 따라 크게 웃어 보길 권한다.권희정 상명대부속여고 철학·논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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