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영화, 생각의 보물창고]반지의 제왕 - 왕의 귀환

  • 입력 2007년 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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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꾸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누구도 영화화를 엄두 내지 못했던 J R R 톨킨의 판타지 소설 ‘반지의 제왕’. 이 소설을 모두 9시간이 넘는 3편의 대작 시리즈 영화로 옮겨 매년 한 편씩 개봉한다는 기상천외한 ‘꿈’을 꾼 것이 바로 뉴질랜드 출신 감독 피터 잭슨이었습니다. 당초 피터 잭슨은 별 볼일 없는 감독이었습니다. 그가 1987년 ‘고무인간의 최후’라는 이상야릇한 공포 영화를 데뷔작으로 내놓았을 때 세상은 그를 “악취미적이고 조잡한 저질 영화를 만드는 괴짜감독” 취급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꿈을 버리지 않았고, 장장 7년의 준비 끝에 ‘반지의 제왕’ 3부작을 완성해냈던 것이죠. 그가 보여주는 꿈의 스케일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오늘은 ‘반지의 제왕’ 3부작 중 가장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 마지막 편 ‘반지의 제왕-왕의 귀환’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영화는 2004년 제76회 미국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등 무려 11개 부문을 휩쓴 상업영화의 최고봉이죠.》

[1]스토리 라인

절대반지를 영원히 파괴하기 위한 반지원정대의 위태로운 여정은 계속됩니다. 절대반지를 목에 건 ‘프로도’는 동료 ‘샘’의 도움을 받으며 ‘불의 산’을 향합니다. 악의 화신 ‘사우론’의 세력에 맞서 절대반지를 완전히 없애기 위해서죠.

한편 사우론의 군대는 인간 종족을 멸망시키기 위해 곤도르 왕국을 공격합니다. ‘아라곤’ 왕이 떠난 곤도르 왕국은 구심점을 잃은 채 섭정의 횡포에 시달리고 있죠. 착한 마법사 ‘간달프’는 곤도르의 병력을 수습해 최후의 일전을 치르지만 역부족입니다. 절체절명 위기의 순간에 아라곤 왕 일행이 유령 병사들을 이끌고 와 합세하면서 전세는 팽팽해집니다.

이 틈을 타 프로도는 불의 산에 다다릅니다. 끓어오르는 용암 속에 절대반지를 던지려던 프로도. 하지만 이게 웬일입니까. 프로도는 그만 반지의 유혹에 넘어가 버립니다. 바로 그때, 절대반지를 호시탐탐 노리던 골룸이 나타나 반지를 낚아챕니다. 골룸은 반지와 함께 용암 속으로 떨어져 최후를 맞고, 결국 절대반지는 영원히 파괴됩니다.

[2]주제 및 키워드

절대반지라는 핵심소재를 중심으로 바라본다면 이 영화가 던지는 가장 중요한 문제의식은 ‘인간의 탐욕’일 것입니다. 절대반지는 그것을 독점하려는 사람들로부터 끊임없는 탐욕을 이끌어내 왔고, 결국 프로도 일행은 이 절대반지를 영원히 없앰으로써 인간의 저주스러운 탐욕에 종지부를 찍고자 한 것이니까요.

하지만 절대반지에 우리의 생각을 고정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좀더 시각을 유연하게 넓혀봅시다. 이번엔 이 절대반지를 목숨을 걸고 옮기는 반지원정대에 초점을 맞춰봅시다. 프로도 일행이 반지를 파괴하기 위해 위험천만한 여정을 계속하는 이유는 뭘까요? 반지를 파괴하고 세상을 구원해 영웅이 되려고? 아니면 여생을 편히 먹고살 큰 보상이 기다리고 있어서?

모두 아닙니다. 그들이 원했던 건 졸졸 흐르는 개울물 소리, 보드라운 풀의 감촉, 그리고 달콤한 산딸기 맛이 전부였으니까요. 그들은 ‘단지’ 그것들을 지키기 위해 싸웠던 겁니다.

영화 말미에서 보듯, 절대반지를 파괴한 프로도 일행은 드디어 귀향합니다. 하지만 누구도 그들의 위대한 업적을 알지 못합니다. 바로 여기에 영화의 주제가 암시되어 있습니다. 프로도 일행이 목숨을 내걸었던 건 의무감 때문도, 정의감 때문도, 막대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평화로운 일상을 지키기 위해서는 탐욕의 근원인 절대반지를 없애야겠다는, 100% 순수한 자신의 의지와 선택으로 반지원정대가 되었던 겁니다.

결국 ‘평화로운 삶을 위한 인간의 선택과 자유의지(free will)’야말로 영화가 숨기고 있던 진짜 주제였죠.

[3]더 깊게 생각하기

그런 의미에서 영화의 진정한 클라이맥스는 절대반지가 파괴되는 순간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쳐 쓰러진 프로도를 들쳐 업은 샘이 물기 가득한 눈으로 이렇게 절규하면서 불의 산을 한 발 한 발 오르는 장면이죠.

“반지는 대신 들어드릴 수 없지만, 나리(프로도)를 들어드릴 순 있어요!”

평소 둔하고 겁 많고 소심했던 샘. 그가 자신의 선택과 의지에서 나온 용기로 프로도를 업고 가파른 산을 오르는 모습에선, ‘시지프스의 신화’가 겹쳐집니다. 다시 굴러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산꼭대기까지 바위를 밀어 올리고 또 밀어 올리는 시지프스의 모습 말입니다. 어찌 보면 힘없고 나약하고 평범한 소시민들의 용기를 대변하는 샘이야말로 영화의 진짜 주인공입니다. 그는 절대반지를 파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의지의 인간이니까요. 이 영화가 키 작고 힘 없는 난쟁이 호빗족(프로도, 샘, 피핀, 메리)을 반지원정대의 핵심 인물들로 부각시키는 것도 ‘평범한 소시민의 진정한 용기’를 강조하고자 하는 영화의 지향점과도 상통하는 대목입니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추하고 더러운 족속인 ‘골룸’도 단순히 ‘탐욕의 화신’이라고만 볼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골룸이야말로 진정 인간적인 존재인지 모릅니다. 선한 자아와 탐욕스러운 자아, 이렇게 분열된 두 개의 자아 사이에서 번민하는 골룸은 늘 선과 악 사이에서 주저하고 갈등하고 고민하는 ‘불안전한 인간’ 혹은 ‘나약한 인간’에 대한 상징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골룸은 절대반지를 볼 때마다 “프레셔스(precious·귀중한)!” 하고 외치는데요. 결국 귀중한 어떤 것, 희소가치가 있는 어떤 것을 쟁취하기 위해 인간은 탐욕을 갖게 되고, 그 탐욕은 모든 인간 갈등과 악행의 근원이라는 사실을 골룸은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4]뒤집어 생각하기

절대반지가 파괴되는 순간은 진정 흥미로운 생각거리를 제공해 줍니다. 천신만고 끝에 불의 산에 도착한 프로도는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절대반지를 용암 속에 던져버리지 못합니다. 아니, 절대반지를 던져버리는 데 실패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반지는 결국 영원히 파괴됩니다. 그건 바로 골룸의 탐욕 때문이었죠. 절대반지가 끼워져 있는 프로도의 손가락을 이빨로 물어뜯어 내고 절대반지를 차지하게 된 골룸. 그는 그토록 갈망하던 반지를 손에 넣었지만, 그 대가로 반지와 함께 운명의 산의 틈 속에 떨어집니다.

바로 이겁니다. 영화는 기가 막힌 아이러니(irony·예상 밖의 결과가 빚은 모순)를 보여줍니다. 탐욕의 근원인 절대반지, 이 절대반지가 최후를 맞게 된 건 역설적이게도 프로도의 탐욕과 골룸의 탐욕 때문이었던 것이죠! 절대반지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것이 결과적으로 절대반지를 파괴해 버리고 만 운명의 아이러니….

프로도는 절대반지를 지배하려는 유혹에 굴복하였지만, 우리는 프로도의 심정을 십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 또한 일상 속에서 귀중한 어떤 것, 차지하고 싶은 어떤 것을 둘러싸고 얼마나 많은 유혹과 갈등을 느끼는지요. 어쩌면 이 세상엔 탐욕에 절대 흔들리지 않을 ‘절대 선’이란 없는지도 모릅니다. 이 영화가 말한 것처럼, 탐욕은 더 큰 탐욕에 의해서만 사라지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곤도르의 왕 아라곤은 사우론과의 일전을 앞둔 병사들에게 이렇게 외칩니다.

“언젠간 인간이 용기를 잃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은 결코 그날이 아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절대반지’를 물리칠 용기가 필요한 때입니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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