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들여다보기 20선]<1>대한민국에서 장남으로 살아가기

  • 입력 2006년 9월 18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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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대한민국’ 시리즈 제9부의 테마는 ‘남자 들여다보기 20선’입니다.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도 하지요. 사회의 급속한 변화로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무너지는 요즘, 남자의 내면과 남성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책들을 20회에 걸쳐 소개합니다.》

책 시장의 흐름으로 보면 이 땅의 여성들은 날로 권력이 커졌다. 1980년대까지는 억압받는 대상에 불과했지만 1990년대 초반이 되자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공지영)고 외치기도 하고 ‘여성이여, 테러리스트가 돼라’(전여옥)고 선동하기도 했다. 1990년대 중반에는 ‘천년의 사랑’(양귀자), ‘하얀 기억 속의 너’(김상옥), ‘남자의 향기’(하병무) 등의 주인공처럼 남자에게서 무한한 사랑을 받는 대상이었다. 외환위기 직후에는 ‘모순’(양귀자)에서처럼 남자 고르기를 하거나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은희경)의 주인공처럼 여러 명의 애인을 두기도 했다.

21세기는 그야말로 여성의 시대다. 잘나가는 자기계발서의 저자는 대부분 여성이었다. 그들은 가정이라는 굴레를 벗고 세계로 무대를 넓혀 갔다. ‘나는 나를 경영한다’(백지연)라는 선언에 뒤이어 최상의 멘터는 자기 자신이라는 자신감(‘자기설득파워’·백지연)을 내뿜기 시작했다.

하지만 수백 년 동안 권력을 유지해 오던 남성들의 권위는 처참하게 무너져 갔다. 여성의 상승곡선과 남성의 하강곡선이 만나는 접점에 등장한 책이 ‘아버지’(김정현)다. 이때부터 ‘여성억압’에서 ‘남성억압’으로 논의가 옮겨 갔다. 가정과 직장과 사회에서 버림받고 동정받는 인간으로 전락하던 남자들은 2003년에 들어서야 스스로 ‘권위주의’와 ‘자기애(나르시시즘)’라는 동굴에서 벗어나 자기 정체성을 찾기 시작한다. 진정한 ‘남자의 탄생’(전인권)이 시도된 것이다.

그즈음 그래도 남자가 쓸모 있다는 ‘깃발’을 들고 나온 책이 ‘대한민국에서 장남으로 살아가기’다. 이 땅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장남들에게 장남이라는 굴레는 족쇄이자 고뇌였다. 책의 절반은 부모의 모든 수모와 생존을 향한 몸부림을 지켜보고 자란 장남이 겪을 수밖에 없는 고난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저자는 인생의 후반에 돌입하면서 장남의 역할에 묘한 자부심과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책의 다른 절반에서 저자는 장남정신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신(新)장남 행복학’을 주창한다. 늘 앞장서고 베풀 줄 알고 책임지는 장남정신이야말로 리더십이 사라진 이 시대에 진정한 리더십의 표상이라는 것이다. 조직이나 회사를 제대로 이끌어 가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장남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막다른 골목으로 한없이 쫓기기만 하던 남자의 ‘인간선언’으로 읽힌다. 옛날에는 눈물을 흘리는 것이 여자의 특권처럼 여겨졌지만 지금의 여자들은 이제 울지 않는다. 나아가 세상의 주인이고자 한다. 하지만 울어 본 적이 없었던 남자들은 이제야 모든 허울을 벗어 버리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렇게 실컷 운 다음 우리도 인간이라고 외치고 있다. 많은 사람이 그런 외침에 귀 기울여 주었다는 사실은 드디어 우리 사회가 남자의 서글픈 자기 고백을 받아들일 만한 사회가 됐다는 뜻이 아닐까.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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