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로 구술잡기]‘알이 닭을 낳는다’

  • 입력 2006년 9월 9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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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이 닭을 낳는다/최재천 지음/408쪽·1만 원·도요새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우리가 흔히 팽팽하게 맞선 상반된 원칙을 두고 선후를 가리기 어려울 때 쓰는 말이다. 자유와 평등, 성장과 분배, 개발과 환경 등 현실 속 묵직한 쟁점들은 대개 이런 양상을 띤다.

구술에서는 복잡한 변수가 중첩되어 있는 문제를 즐겨 다룬다. 예를 들어 최근의 인구감소, 저출산, 고령화, 사회복지, 양성평등 문제 등은 모두 함께 다닌다. 꼬여 있는 문제 상황을 들춰내는 대학들의 의도는 분명하다. 바로 학생들의 문제해결 능력을 보려는 것. 길을 잃지 않으려면 높은 안목과 원칙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책은 한 동물행동학자의 눈으로 바라본 현대 한국 사회에 대한 비평서이다. 우리 인간들의 세상살이를 동물행동과 비교하면서 재미있게 그 원리를 풀어낸다. 애정을 품고 터득한 원리 이해는 필시 대안으로 이어지는 법. 이 책은 동물들의 다양한 생존전략을 원칙 삼아 인간 사회의 문제를 풀어낼 실마리를 일깨워 준다.

하이에나에게 공격당하는 새끼를 눈앞에 둔 영양은 새끼를 포기하고 자신의 목숨을 아낀다. 비정한 듯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더 많은 자손을 남기는 쪽으로 자연은 진화한다. 인간 사회에서도 이미 투자한 자본이 아까워 손을 털 수 없는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콩코드 여객기 개발에서 유래한 ‘콩코드 오류’는 유명한 사례다. 사행성 게임 사태나 각종 국책 사업 논란에도 적용해볼 만하다.

‘세계보건기구가 발표한 한국 중년남성의 사망률을 보면 매우 당황스럽다. 자연 상태의 수컷들은 암컷을 얻기 위한 경쟁 때문에 ‘짧고 굵게’ 사는 쪽으로 진화했다. 인간도 20, 30대 남성 사망률이 여성보다 무려 세 배나 높다. 그러나 한국 남성만은 40, 50대에 사망률이 치솟는다. 사회생물학자는 이 같은 통계 속에서 진화의 섭리를 거스르는 ‘소모인간사회’를 읽어낼 수도 있다.

문화읽기는 어떨까. 유네스코는 지난 500년간 인류 언어의 절반이 절멸했고, 이번 세기가 끝날 때쯤 다시 절반이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생물학자들은 생물의 멸종과 언어의 소멸 사이에 비례관계를 밝혀낸다. 생물종의 보호는 언어의 보호와 궤를 같이한다.

그런데 과연 닭이 먼저일까, 달걀이 먼저일까. 딜레마의 대명사인 이 의문문도 생물학자의 눈에는 명쾌하다. “닭은 달걀이 더 많은 달걀을 얻기 위해 잠시 만들어낸 매개체에 불과하다.” 하버드대 교수인 윌슨의 말처럼, 개체(닭)는 죽어 사라지더라도 달걀 속의 유전자는 영원히 이어진다. 닭과 달걀의 관계를 넘어 생명의 원리로 접근하는 탐구방법도 새롭게 다가온다.

학생들은 이 책에서 상반되는 입장으로 보일지라도 일관성 있게 사태를 파악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유전자의 명령으로 진행되는 동물계의 모습에서 우리 사회의 대응 전략도 함께 유추해 보길 바란다.

권희정 상명대부속여고 철학·논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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