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주 칼럼]일본의 두 모습

  • 입력 2006년 3월 2일 03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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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데이비드 어빙(David John Cawdell Irving)이라는 영국 역사학자는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를 부인한 혐의로 오스트리아에서 3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폴란드에 있는 아우슈비츠를 한 번만 방문했어도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 독일의 만행을 알 수 있었을 텐데, 그가 홀로코스트는 크게 과장되었고 히틀러는 그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주장한 것은 분명히 역사적 사실을 외면한 행위였다.

오스트리아와 독일을 포함한 11개국이 홀로코스트 부인(否認) 범죄에 대한 형법을 가지고 있고, 가해 가담국인 오스트리아에서 그 법에 의해 실형이 선고되었다는 사실은 아직도 과거 문제로 분쟁을 경험해야 하는 한일 관계에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일본은 물론 그러한 법이 없을 뿐만 아니라 주변국에 준 피해에 대한 명쾌한 사과의 모습을 보여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으로서는 일제를 나치 독일에 비유하는 것 자체가 불만스러울 것이다. 나치는 수백만 유대인을 체계적이고 의도적으로 학살한 것에 비해 일본은 당시 세계의 다른 나라들도 자행한 제국주의 정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주변 국민에게 피해를 주었을 뿐이라고 변명한다. 일본은 또한 그동안 충분히 반성하고 사과하지 않았느냐고 항변한다. 전쟁이 끝난 지 60년도 더 지났는데 오늘 새로운 세대가 옛일에 책임질 필요가 있느냐고 묻기도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난징 대학살과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부정하거나 축소한다고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반성과 사과도 상대가 요구하여 협상에 의해 억지로 하는 것은 그 의미가 반감되는 것이 사실이다. 일본의 미흡한 태도 중에서도 가장 난해한 것은 일본의 지도층 일부가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를 고집하는 현실이다. 문제는 그 행위가 주변의 피해국들을 소홀히 하는 모습을 드러내는 것일 뿐 아니라 일본의 국익에도 극히 위배되는 행동이라는 점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고집함으로써 일본은 많은 것을 잃고 있다. 일본은 아시아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고립을 자초하고 있으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 되는 가능성도 상실하였다. 북한 핵 문제와 같은 일본 안보에 직결되는 문제에서 한국 중국 등과의 협의, 협조에도 차질을 빚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의 뉴욕타임스조차 아소 다로 일본 외상 등의 역사인식 부족을 신랄히 비판하는 사설을 게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고이즈미를 포함한 몇몇 지도자는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고집하고 있는가? 그것을 국내 정치용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너무나 단순한 설명이 될 것이다. 잘못된 자존심과 오도된 애국심이 그 원인이 아닌가 생각한다. 고이즈미 총리가 9월에는 퇴진한다지만 그 이후에도 이와 같은 문제들이 남아 있을 것이 우려된다.

그러나 다행히 일본에도 역사를 올바로 보고 나아갈 길이 무엇인가를 똑바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있다. 요미우리신문의 와타나베 쓰네오 회장 겸 주필, 아사히신문의 와카미야 요시부미 논설주간이 그러한 사람이다. 그들은 이념을 달리함에도 불구하고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공동 투쟁을 선언하였다.

일본이 자진하여 과거를 반성하고 사과하는 데 소극적인 것은 기본적으로 주변국의 문제라기보다 일본 자체의 문제이다. 독일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폴란드 바르샤바의 피해자 추념비(追念碑)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했을 때 그것은 폴란드나 이스라엘보다는 독일에 필요하고 유익한 일이었다.

한일 간의 불행이 거듭되었던 오랜 역사를 돌이켜 보면 진정한 뜻으로 골을 메우는 것은 퍽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그것을 극복하는 것은 한일 양국에 다 도움이 되는 일이다. 이 시점에 과거 일본의 행적이 어떠했느냐보다는 그러한 과거에 대하여 현재의 일본이 어떠한 태도를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이 과거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고 주변국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은 자국에도 이익이 되는 일이다. 과거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고 있는 일본의 양식 있고 용기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격려하는 데 우리는 인색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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