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종사자 3만~4만명‘목욕관리사’그들의 세계

  • 입력 2005년 5월 5일 17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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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를 밀 때는 팔이 아닌 몸의 힘으로 밀어야 손님도 목욕관리사도 편하다. 이 요령을 몰라 허리를 다치는 목욕관리사들이 많다고 한다. 사진은 한국목욕관리사 협회 내 실습실 풍경. 강병기 기자
때를 밀 때는 팔이 아닌 몸의 힘으로 밀어야 손님도 목욕관리사도 편하다. 이 요령을 몰라 허리를 다치는 목욕관리사들이 많다고 한다. 사진은 한국목욕관리사 협회 내 실습실 풍경. 강병기 기자
《어느 목욕탕에서나 볼 수 있는‘때밀이’. 사업장(목욕탕)만

전국 9000여 개, 종사자가 3만∼4만여 명으로 추산될 정도로 당당한 직업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2000년 4월 산업안전관리공단 분류 표준 직업군에 ‘목욕관리사’로 등재됐지만 아직도‘때밀이’ ‘나라시’ ‘세신사’‘입욕 보조사’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는 실정.

서울 동작구 사당1동에 있는 한국목욕관리사협회(회장 강병덕·www.akbma.or.kr)는 이런 척박한 환경 속에서 때밀이업의 학문화, 표준화, 체계화를 시도하는 때밀이계의 ‘메카’이다.》

○ 너희가 ‘때밀이’를 아느냐

이곳은 목욕관리사들의 모임으로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2000년 10월 국가에 등록된 비영리 단체. 2달간의 교육을 거쳐 ‘때밀이’를 양성한다. 이곳에서 때 미는 법만 배운다고 생각하면 오산. 카이로프락틱, 태국전통 마사지, 발, 경락마사지, 스포츠 마사지 등 각종 마사지법과 피부학 소독학 등 이론 강의 외에 남자는 구두닦이, 여자는 팩하는 법도 필수 코스다.

처음 등록을 하면 때수건을 손에 감는 법(사진 참조)만 종일 연습한다. 목욕관리사의 기본이기 때문. 실력이 있는지 없는지는 손님만이 알겠지만 일단 ‘때 장면(때가 국수처럼 길게 밀려 나오는 것을 칭하는 속어)’의 모양이 어떤지를 보면 실력을 판별할 수 있다.

때가 짧게 끊어지지 않고 길게 밀린다는 것은 그만큼 부드럽게 잘 밀었다는 표시. 특히 다른 부위보다 허리와 아랫배 부분에서 때 장면의 모양을 확실하게 볼 수 있다.

오전 7시 반부터 시작되는 강의도 실전을 염두에 둔 시간 배정. 보통 오전 6시부터 일과가 시작되는 목욕관리사의 특성상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이 생활 리듬을 몸에 배게 하기 위해서다.

○ 심장에서 먼 발부터 시작하라

그냥 손 가는 대로 아무렇게나 밀면 된다고 생각하는 때밀이. 하지만 지켜야 할 룰이 있다. 일단 심장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심장에서 먼 곳부터 경락의 흐름에 따라 민다.

흔히 때밀이는 남자는 손, 여자는 발부터 시작하지만 사실은 남녀 공히 귀의 때를 닦아 주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정통. 단지 때수건이 아닌 손으로 하기 때문에 잘 모를 뿐이다.

“원칙적으로 발부터 시작해야 하지만, 남자는 옛날부터 손부터 시작했죠. 혼자 미는 사람도 남자는 손, 팔부터 밀더라고요. 그게 그대로 습관화된 것 같아요.”

강 회장은 “팔의 경우 손 쪽으로 밀 때는 60%의 힘을, 어깨 쪽으로 다시 당겨 밀 때는 40%의 힘을 줘야 한다”며 “이는 인체의 기 흐름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강 회장은 중국 베이징 의과대 해부 과정을 수료했고 미국 코헨대에서 자연 치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남녀의 때밀이 순서에도 차이가 있다. 남자들은 오른쪽 팔, 다리, 몸통을 거쳐 왼쪽으로 넘어가는데 비해 여자들은 왼쪽 다리에서 시작해 대각선으로 오른쪽 몸통, 가슴의 때를 민 후 다시 오른쪽 다리-왼쪽 몸통, 가슴의 순서로 때를 민다.

이 협회 김선숙 원장은 “여성들은 남자에 비해 살과 지방이 많고 가슴이라는 특수 부분이 있어 때를 밀기 어렵다”며 “대각선으로 미는 이유는 살점을 잡고 흔들리지 않게 어느 정도 고정시킨 후 밀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여성의 경우, 가슴을 그냥 밀면 흔들림이 심하기 때문에 한 손으로 받치고 밀어야 한다는 것. 이를 위해서는 서 있는 쪽 반대편이 밀기에 더 편하다.

특히 미혼 여성들은 가슴 아래쪽을 때수건으로 밀면 아픔을 느끼기 때문에 이 부위는 손가락으로 문질러 때를 밀어야 한다고 한다.

○ 한국 고유의 특수한 때 맛사지

협회의 목표는 전문대학에 목욕관리학과를 개설하는 것. 이를 위해 교육장 개설, 교재 집필은 물론 민간자격증 국가 공인화, 협회 고문 변호사 위촉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른바 때밀이 분야의 체계화, 학문화, 표준화다. 또 이 같은 자격을 얻기 위해서 목욕관리사들도 성실하게 세금을 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1990년대 후반에 세금을 내기 위해 세무서를 찾아간 적이 있었죠. 직업이 뭐냐고 묻기에 ‘때밀이’라고 했더니 직업 분류에 그런 이름이 없다고 내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한참을 실랑이하다 결국 ‘피부관리사’란 이름으로 세금을 냈죠.”

강 회장은 “아직도 세금을 제대로 내는 목욕관리사는 거의 없을 것”이라며 “양지로 나가기 위해서는 스스로도 떳떳한 직업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속칭 ‘음지에서 일한다’고 우스갯소리를 하지만 이 직업에도 화려했던 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20여 년 전 제가 처음으로 일할 당시 월 100만원을 벌었죠. 당시 공무원 봉급이 10만 원 정도였으니 엄청 많았죠.”

또 예전에 여관과 목욕탕이 함께 있었을 때는 실력있는 목욕관리사들은 주인이 방까지 줘가며 모셔가기도 했다는 것.

강 회장은 “이제 목욕탕은 단순히 때만 미는 곳이 아닌 긴장 완화, 건강 증진의 멀티 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며 “찜질방, 사우나, 불가마 등 하드웨어는 활성화된 반면 업계 종사자의 교육과 능력 개발이라는 소프트웨어는 취약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때밀이가 한국 고유의 특수한 때 마사지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며 “이미 일본에서는 전문 강사들이 연수까지 오고 있지만 정작 국내 종사자들이 그러한 변화를 못 느끼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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