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포럼/박범진]‘박정희 기념관’ 논란 언제까지…

  • 입력 2005년 5월 1일 18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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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의 제의로 시작된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관 건립 사업이 노무현 정권에 의해 좌초 위기에 놓였다. 전체 사업비 700억 원 중 500억 원을 민간에서 모금한다는 조건으로 국가보조금 208억 원을 지원했으나 모금 실적이 110억 원에 그치자 이미 지원한 국가보조금 중 사용하지 않은 170억 원을 회수키로 했기 때문이다.

사업회 측은 현재 확보된 자금만으로 기념관 건립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며 사업비를 215억 원으로 축소해 사업 변경 승인 신청을 했으나 정부는 이를 거부했다. 이해찬 국무총리는 국회 답변에서 사업회 측이 다시 실현 가능한 계획을 세워 정부에 요청하면 지원할 방침이라고 밝혔으나 어딘가 석연찮은 느낌이다. 가뜩이나 과거사 진상 규명이 노 정권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취해진 조치여서 국민을 더욱 의아스럽게 하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대통령에 취임한 이듬해인 1999년 5월 박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상북도를 찾아 지역 인사들과의 만남에서 감동 어린 발언을 했다. “6·25전쟁 이후 폐허 속에서 국민에게 자신감을 심어 주고 조국 근대화를 이룩한 박 대통령의 공로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이제 박 대통령은 우리 역사 속에서 재평가되어야 한다.” 그러면서 그는 박 전 대통령의 기념사업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국가보조금 회수로 좌초위기▼

박 전 대통령 시절 가장 고초를 겪었던 정치인인 김 전 대통령이 자신의 입으로 자신을 핍박했던 박 전 대통령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한 것은 전혀 뜻밖의 일이었다. 당시 신문들은 김 전 대통령의 발언을 비중 있게 다뤄 한 면 가득 상세히 보도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김 전 대통령의 긍정적 평가는 오랫동안 대립해 온 민주화 세력과 근대화 세력의 역사적 화해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박 전 대통령 기념관 건립 사업은 이렇게 김 전 대통령의 제의로 시작돼 그해 7월 정식으로 기념사업회가 설립되었고 김 전 대통령 자신은 명예회장을 맡았다. 그리고 자신의 최측근인 권노갑 전 새천년민주당 고문을 박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의원과 함께 부회장으로 참여시켰다. 기념관 후보지는 2000년 7월 청와대에서 신현확 기념사업회장, 권노갑 부회장, 한광옥 대통령비서실장, 최인기 행정자치부 장관, 고건 서울시장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관계자 회의에서 서울 마포구 상암동으로 정했다.

기념관 건립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면 김 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2003년 2월에는 완공되어 김 전 대통령은 기념관 개관 테이프를 끊어 주고 퇴임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우리 정치사에 가장 아름다운 얘기를 남겼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김 전 대통령은 자신의 제의로 시작된 이 사업이 재임 중에 끝날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를 하지는 못했다. 이미 2002년 2월 행자부가 민간 모금 실적이 부진하다는 이유로 사업회 측의 국고보조금 집행 신청을 보류해 건축공사 대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으나 그대로 방치한 것이다.

역대 대통령은 누구나 공과가 있게 마련이지만 그중에서도 박 전 대통령은 국민의 절대 다수에게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 대통령의 기념관 건립 하나 순조롭게 진행시키지 못하고 건립비용 문제로 논란을 벌이고 있는 것은 우리의 국가적 위상에 비추어 부끄러운 일이다.

▼국민 편가르기 논쟁돼선 곤란▼

선거 때마다 수백억 원의 거액 불법 정치자금을 정치권에 제공해 온 경제계가 이번 민간모금 과정에서는 겨우 70억 원밖에 내놓지 않았다는 점도 되돌아보아야 할 일이다. 한나라당도 일부분 책임이 있다. 한나라당은 박 전 대통령 기념사업이 2000년 1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영남을 공략하기 위한 선거용 책략이라고 평가절하하면서 정쟁거리로 삼아 모금 분위기를 어렵게 했기 때문이다.

좋은 뜻으로 시작된 박 전 대통령 기념사업이 국민 간에 편을 가르는 논란거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정부는 구차스러운 행정논리를 내세워 기념사업을 방해하고 있다는 오해를 사지 않도록 좀 더 신축적으로 이 문제를 다루는 것이 바람직하다.

박범진 건국대 초빙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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