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철칼럼]민심을 그리도 못 읽는가

입력 2005-02-02 18:11수정 2009-10-09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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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초 국정운영의 기조로 ‘개혁과 통합’을 외칠 때 누군가는 두 가지가 양립하기 어려운 것임을 알려주었어야 했다. 지난 2년간 개혁이란 잣대로 매사를 재단하다가 빚어진 친노(親盧)와 반노(反盧)의 사회적 양분화 현상을 보면 통합의 구호가 얼마나 공허했던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개혁이란 것도 집권세력에서는 이런저런 평가를 하겠지만 다수가 인정하는 성공 점수를 받기는 어렵다. 내용과 방법에서 반대의견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며 이는 바로 합의 기반, 달리 말해서 통합의 기초가 부실했기 때문이다.

별로 새롭지도 않은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국정의 우선순위를 다시 점검해 보자는 생각에서다. 국정순위는 궁극적으로 정권을 심판하는 민생의 체감지수와 직결된, 정권의 사활이 걸린 문제이다. 비록 늦더라도 국정순위를 다시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이유다. 정권 초기 국정의 최우선 순위를 국가안보에 두느냐, 아니면 국내정치에 두느냐는 통상의 기준에서 보면 현 정권의 국정순위는 분명치 않았다. 한미동맹이 심각하게 흔들리는 현 상황에 이른 결과를 보면 당초 안보 및 외교를 정책의 하나로 치부했을 뿐 그다지 큰 역점을 두지 않은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동맹파’와 ‘자주파’로 한때 소동이 빚어졌겠는가. 그보다는 국내정치에 보다 역점을 둔 것 같은데 그것도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해내겠다는 욕심이 앞섰다. 취임 직전 대통령직인수위는 3대 국정목표, 4대 국정원리, 12대 국정과제를 발표했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서 의욕적인 프로그램을 제시한 것을 탓할 일은 아니다.

▼국정 우선순위 있나 없나▼

그런데 메시지가 너무 많고 복잡해서 선뜻 이해되지 못했다. 국민에게 전하려는 메시지라면 간단명료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개혁과 통합’은 명쾌한 구호였지만 정작 중요한 내용에서는 짝짓기에 실패한 예다.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반대의견을 무시하려 한 것이 국론분열 양상으로 번진 것이 아닌가.

지금 정치권에서는 상생정치, 무정쟁, 선진사회라는 상호제안이 잇따르고 있다. 여야 간에는 모처럼 덕담도 오간다. 그렇다면 이런 분위기가 시쳇말로 지속성장 가능성이 있느냐가 관심사다. 어떻게 보면 투쟁적 갈등관계에서 경쟁적 보완관계로 물줄기가 크게 선회할 수 있느냐가 결정된다는 점에서 한국정치는 이제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더욱이 노 대통령이 연초에 밝힌 민생경제 역점 추진은 앞으로 정국 풍향의 중요성을 더해준다. 대통령의 민생경제 역점은 지금까지의 어떤 구호보다 효과적이고 호소력이 있다. 정권이 출발하면서 민생 역점이란 명쾌한 구호를 내걸었다면 지금의 정국 상황도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이제 와서 그런 소리를 왜 하느냐고 하겠지만 앞서 말했듯이 국정순위는 정권이 끝날 때까지의 과제 아닌가. 실제로 대통령의 민생경제 강조 이후 반대하거나, 토를 다는 일이 있었는가. 늦긴 했지만 대통령은 민심이 공감하는 과제를 꺼내든 것이다. 여기서 실용노선의 등장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집권세력에서는 대통령이 변한 것이 아니고 원칙도 달라진 것은 없다고 하지만 그럴 필요 없다. 개혁이라는 말을 쓰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 이상적이고 이념적인 거대담론이 개혁이 아니다. 잘못을 고쳐가는 것이 진정한 개혁이다.

▼실용노선 싹 자를 텐가▼

2월 임시국회는 이런 면에서 중대한 고비다. 집권세력 내 강경론자들이 ‘개혁입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국가보안법, 과거사법, 사학법 등 쟁점법안이 어떻게 처리되느냐에 따라 정국의 향후 진로는 크게 달라질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쟁점법안이 원만하게 처리되기에는 아직도 반대의견이 많다는 사실이다. 결국 처리하려면 힘으로 밀어붙이는 수밖에 없다. 그 결과는 뻔하다. 민생경제 역점으로 모처럼 공감대가 형성된 대통령의 국정순위도 크게 흔들릴 것이고 실용노선의 싹도 단숨에 잘리고 만다. 결국 집권 2년을 보내면서 아직도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를 몰라 허둥대는 정부가 되겠다는 말인가. 국정 우선순위를 무너뜨릴 정도의 쟁점법안이라고는 생각 않는다. 민심을 그리도 못 읽는가.

최규철 논설주간 ki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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