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2004뉴스]<4>신행정수도특별법 위헌 결정

  • 입력 2004년 12월 22일 18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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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이전 위헌”10월 21일 오후 서울역에 모인 시민들이 대형 TV를 통해 헌법재판소 윤영철 소장이 수도 이전 위헌 결정을 내리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동아일보 자료 사진
“수도 이전 위헌”
10월 21일 오후 서울역에 모인 시민들이 대형 TV를 통해 헌법재판소 윤영철 소장이 수도 이전 위헌 결정을 내리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동아일보 자료 사진
《수도 이전 논란은 여전히 인화(引火)성이 강한 ‘불씨’로 남아 있다. 10월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린 이후 충청권의 분노와 상실감은 ‘태풍의 눈’을 연상시킬 만큼 한껏 부풀어 오르고 있다. 수도 이전 문제가 처음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2002년 9월 30일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 앞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였다. 하지만 대선 후반 주요 쟁점으로 부상했던 수도 이전 문제는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는 물론 2003년 12월 국회에서 ‘신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이 통과된 이후에도 정작 실현성이 떨어지는 ‘로드맵’ 정도로 치부돼 왔다. 올 6월 ‘천도(遷都)’ 논쟁으로 비화되기 전까진 야당은 물론이고 언론마저 국운을 좌우할 주요 사안에 대해 너무 오랫동안 눈을 감아 왔던 게 사실이다.》

▽여권, “헌재 너무 믿었다”=‘주문(主文). 신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은 헌법에 위반된다.’

10월 21일 오후 2시 28분, 윤영철(尹永哲) 헌재 소장이 위헌 결정을 내리자 청와대는 깊은 적막감에 휩싸였다. 노 대통령이 “정권의 명운을 걸겠다”고까지 선언했던 핵심 국정과제였던 만큼 참모들은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노 대통령은 결정 하루 전인 20일 밤에야 “위헌 결정을 내릴 것 같다”는 보고를 핵심 참모에게서 받았다고 한다. 청와대가 안이하게 대처했다는 탄식이 여권 안팎에서 터져 나왔다.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린 헌재를 너무 믿고 방심했던 것이다.

충청주민 분노
충남 공주·연기지역 주민들이 11월 공주시 연문광장에서 ‘신행정수도 사수 2차 궐기대회’를 벌였다. 궐기대회에 참석한 수천 명의 주민들은 이날 신행정 수도건설을 계속 추진하라고 요구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노 대통령은 헌재가 위헌 결정의 이유로 든 관습헌법에 대해 “처음 들어 보는 이론”이라며 불만을 토로한 뒤 “수도 이전은 전략이 부족했다”고 자성했다. 수도 이전이라는 거대 정책에 대한 국정홍보의 미흡함을 자책한 것.

청와대 한 고위 관계자는 “솔직히 위헌 결정은 아무도 생각 못했다. ‘국민투표에 부치라’고 결정할 경우 어떻게 할 것이냐는 얘기가 나오는 정도였다”고 털어놨다.

▽여권, “과욕이 화를 불렀다”=여권 핵심 관계자는 “4·15총선에서 과반의석을 차지하며 욕심이 생긴 게 화근이었다. 그전만 해도 행정수도 이전 정도였는데 자신감이 붙으면서 입법부와 사법부까지 포함하는 수도 이전으로 발전됐다. 언론에서 문제 제기한 ‘천도’ 논쟁에 휘말려 주도권을 빼앗기면서 여론이 더욱 불리해졌다”고 털어놨다.

논란의 불씨는 김안제(金安濟)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장이 지폈다. 김 위원장은 6월 9일 한나라당 중도파 의원들 모임인 ‘푸른정책연구모임’ 간담회에서 “지난해 국회에서 통과한 법에 따르면 신행정수도 이전이 맞지만 입법부와 사법부가 다 옮기면 천도가 맞다. 나도 예전엔 사업 추진에 힘을 받기 위해 ‘국민투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고 밝혔다. 국민투표는 법 통과 이전에 해야 했는데 이미 늦었다는 고백이었다. 단순히 중앙부처 몇 개쯤 옮겨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180도 다른 차원의 얘기였다.

본보는 사설을 통해 충분히 국민여론을 수렴할 것을 거듭 촉구하는 한편 6월 ‘집중점검-천도 논란’을 주제로 6회에 걸쳐 관련 기획시리즈를 내보내며 뒤늦기는 했지만 집중적으로 수도 이전에 따르는 문제를 점검했다. 수도 이전에 반대논리를 편 것이 아니었는데도 청와대 측은 이에 대해 ‘청와대 브리핑’을 통해 “저주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우왕좌왕한 한나라당=2003년 12월 29일 문제의 신행정수도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을 때 한나라당은 과반의석을 가진 거대 야당이었다.

수도 이전에 반대했다면 이 법이 국회를 통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당시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한나라당 충청권 국회의원들은 “당에서 반대하면 탈당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결국 최병렬(崔秉烈) 대표 등 지도부에선 “충청 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며 법 통과에 찬성했다.

하지만 당시 지도부는 “마음만 먹으면 나중에 (법안을) 바꿀 수도 있는 것 아니냐”며 대수롭잖게 여긴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4·15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과반의석을 차지하면서 한나라당은 곤경에 빠졌다.

그 후 한나라당은 후속 대안조차 마련하지 못하는 어정쩡한 모습으로 일관했다. 오히려 충청 민심을 감안해 당의 공식 입장을 정하지 않는 게 낫다는 대응논리까지 나와 “당론조차 제대로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당의 고위 관계자는 최근 “당시 ‘차떼기당’이라는 이미지가 워낙 강해 반대를 주도할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찬바람 부는 충청권 민심=“글쎄요, 정부가 신행정수도에 버금가는 대안을 내놓는다는데….”

수도 이전 예정지였던 충남 연기군 남면 금남면 동면, 공주시 장기면은 과거의 적막으로 되돌아갔다.

22일 오전 11시 남면 종촌리 면사무소 거리. 헌재 결정 이전 복부인과 부동산업자들이 타고 온 외지 고급승용차들로 북적대던 모습은 아예 자취를 감췄다. 한때 30여 개까지 늘었던 부동산중개업소들도 몇 곳을 빼곤 문을 닫았다.

남면사무소 관계자는 “위헌 결정 직후의 분노가 지금은 허탈감과 불신으로 변했다. 후속 대안에 대해서도 반신반의하는 눈치”라고 전했다.

15분 거리인 대전 서구 둔산동과 유성구 장대동. 우후죽순으로 신축하던 오피스텔과 원룸들은 골조에 살이 붙지 않아 황량함마저 안겨 준다. 위헌 결정 이후 입주자 계약 해지가 줄을 이어 공사가 중단됐기 때문이다.

박은효(朴恩孝) 대한건설협회 대전시지회장은 “건설사들이 행정수도 특수를 예상해 무리할 정도로 투자했기 때문에 연말에 지급된 관급공사 대금이 떨어지는 내년 3월이면 무더기로 도산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

대전=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충청民心 잃을수야” 행정도시 계속 추진▼

수도이전 대안 모색작업은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 한 달 뒤인 11월 출범한 ‘행정수도건설 위헌 결정 후속대책위원회’가 진행하고 있다.

이해찬(李海瓚) 국무총리와 최병선(崔秉瑄) 경원대 교수가 이 후속대책위원회의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다. 두 사람은 헌재의 결정으로 자동 해산한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회에서도 공동위원장을 맡아 호흡을 맞춰 왔다.

여권은 충청권 민심을 달래기 위해 기회 있을 때마다 수도이전에 버금가는 효과를 낼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혀 왔다.

헌재 결정 이후 처음으로 지난달 9일 대전·충남 지역을 방문한 이부영(李富榮) 열린우리당 의장은 “헌재의 결정으로 청와대와 국회까지 옮기는 건 불가능하게 됐지만, 옮겨야 할 기관은 모두 옮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동석(姜東錫) 건설교통부 장관도 6일 기자들과 만나 “당초 수도 이전으로 거두려고 했던 효과에 버금가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후속대책위는 이달 말까지 대안도시를 △행정특별시 △행정중심도시 △교육·과학 행정도시의 3개 방안으로 압축해 국회에 제출할 방침이다.

행정특별시안은 청와대와 국회를 제외한 모든 중앙부처가 이전하는 것으로, 이 의장이나 강 장관이 밝혔던 것과 거의 같은 수준의 안이다.

행정중심도시안은 청와대와 외교안보 부처를 제외한 중앙부처의 대부분을 이전, 행정의 중심이 되는 도시를 건설하자는 안이다.

교육·과학 행정도시안은 과학기술 및 교육 관련 부처만 이전해 제한적인 행정도시를 건설하자는 것으로, 한나라당의 ‘교육·과학 부총리 산하 7개 부처 25개 기관 이전안’과도 유사하다.

국회는 이 방안들을 검토해 내년 2월경 수도이전 대안을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여권은 행정특별시안을 선호하고 있어 한나라당과의 절충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김광현 기자 kk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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