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고은희 행복한 집 짓기]<1>서울탈출 꿈꾸기-터잡기

  • 입력 2004년 11월 25일 16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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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탈출을 꿈꾸는 사람이 많지만 그저 꿈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도시 생활의 편리함은 접어두더라도 자녀 교육, 직장 문제까지 발목을 잡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고은희씨(46)는 대학 교수 남편과 고2 아들, 중3 딸을 둔 주부.

서울 토박이인 고씨 부부는 지금 강원 영월군에 집을 짓고 있다.

땅을 밟고, 자연과 어울려 살겠다는 오랜 꿈이 다음 달 완성된다.

집짓기를 진두지휘해 온 고씨가 계획에서 실행에 이르는 전 과정을 상세하게 담은 ‘탈(脫)서울기’를 위크엔드에 보내왔다.

5회로 나누어 싣는다.》

우리 부부는 서울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다. 철이 든 후 남편은 서울의 북동쪽, 나는 북서쪽의 변두리에서 쭉 살았다. 집은 허름해도 마당이 있었고 철마다 모습을 바꾸는 꽃과 나무들, 그리고 한 식구처럼 지내는 개도 있었다. 그런데 결혼을 하면서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일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아파트 평수는 몇 번 바뀌었지만 언제나 맨 꼭대기 층에 살았다. 그나마 하늘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위안이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아래층에 노인들이나 신경이 예민한 분들이 살지는 않는지 걱정이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는 불어난 살림 때문에 도무지 집안을 정돈할 수가 없었다. 책도 여러 권 읽고 흉내도 내봤지만 나의 정리 정돈 센스를 탓할 수밖에 없었다. 커다란 보물창고를 가진 집을 꿈꾸기 시작했다.

남편과 가정을 꾸린 지 17년 만인 재작년의 일이다. 대출금을 다 상환하고 적금이 만기가 되자 우리 부부는 꿈을 희망으로 바꾸려는 시도를 했다. 서울과 적당히 떨어져 있으면서도 교통이 그리 불편하지 않은 곳에 우리의 보물창고를 만들 수만 있다면…. 일간지에 나온 급매물, 경매 물건을 유심히 보았고 광고지에 나온 땅들을 비교하기도 했다. 경매를 알아보려 무턱대고 법원에 갔다가 사람이 너무 많아 지레 질려서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그러던 중 현충일(나는 아직도 엄숙해야 하는 현충일에 땅을 샀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낀다) 광고지에서 마음이 끌리는 물건을 발견했다. 영월의 농가 주택이 적당한 가격에 나온 것이다. 더욱 혹하게 한 것은 집의 상태가 양호하다는 것이었다. 좀 멀다 싶었지만 전화를 했고, 주소는 영월이지만 위치는 원주에서 가깝다는 것을 확인하고 바로 가 보기로 했다. 그리고 원주에서 가까운 다른 곳에도 들러 보기로 했다.

중앙고속도로가 개통돼 두 시간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고속도로에서 20km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중개인의 안내로 그 집에 가 봤더니 기가 막혔다. 도시와 같은 예쁜 집을 상상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집은 거의 폐가에 가까웠다. 우리의 보물창고로 쓰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찌 인연을 쉽게 만날 수 있을까, 위안을 했지만 허탈했다.

고은희씨가 구입한 강원 영월군의 양지바른 밭.

그러자 중개인이 “도시인들이 생각하는 집을 농촌에서 찾을 수는 없다”며 대신 다른 땅을 하나 보여주었다. 길에서는 안 보이는, 마을 뒤쪽 산자락 중턱에 있는 밭(780평)이었다. 길가에는 낙엽송이 줄지어 서 있고 오른쪽은 야트막한 산이 이어졌다. 조금 떨어진 곳에 집이 몇 채 있어서 외로워 보이지 않았다. 가격도 평당 5만원으로 그리 부담스럽지 않았다. 남편은 마음이 동했는지 거의 살 것처럼 말을 했고 나도 가슴이 설♬다.

하지만 약속해 놓은 다른 곳에 가 봐야 했다. 그곳은 마을 규모가 더 컸고 집은 마을 끝 한적한 곳에 있었지만 뒤에 사당이 있고 큰 나무가 많아 어두웠다. 방금 전 본 양지 바른 밭과는 비교가 안 됐다. 우리는 바로 영월의 밭을 사기로 했다.

여러 곳을 직접 다니며 조목조목 따져 봐야 한다는 ‘땅 구입 강령 1조’를 무시하고 첫걸음에 마음에 드는 땅을 사다니. 아, 드디어 우리의 꿈이 이뤄지나 보다, 가슴이 뿌듯해졌다.

그러나 대지를 제외한 다른 땅은 용도변경을 해야 집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을 어설프게만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너무나 용감하게 밭을 산 것이었다. 그리고 땅값보다는 건축비와 용도변경 세금이 훨씬 더 많이 든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고은희 ehsophia@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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