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경영]‘주식회사 한국의 구조조정’

  • 입력 2004년 11월 5일 16시 40분


코멘트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극복에 대한 자신감을 고취시키기 위해 서울 세종로사거리에 내걸린 홍보문구. 우리는 정말 한국경제의 강점이 무엇인지, 또 이를 살리기 위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를 우리의 시각으로 이해하고 있는 걸까. 사진제공 창비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극복에 대한 자신감을 고취시키기 위해 서울 세종로사거리에 내걸린 홍보문구. 우리는 정말 한국경제의 강점이 무엇인지, 또 이를 살리기 위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를 우리의 시각으로 이해하고 있는 걸까. 사진제공 창비
◇주식회사 한국의 구조조정/신장섭·장하준 지음 장진호 옮김/264쪽 1만3000원 창비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부른 외환위기의 원인과 결과를 분석한 이 책은 양 날의 칼이다. 소위 개발독재시대의 발전주의 전략을 적극 옹호하면서 재벌해체론자들을 ‘무국적 경제이론가’라고 공박한다. 또 이러한 주장만 듣고 흐뭇해할 전국경제인연합회 중심의 신자유주의자들에 대해선 ‘황새걸음 따라하다 가랑이가 찢어질 뱁새’라는 식으로 비판한다.

어떻게 이런 비판이 가능할까. 먼저 저자의 면면을 살펴보자.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선진국의 자유무역론이 개발도상국의 추격을 막기 위한 궤변이란 점을 역사적으로 규명한 저서 ‘사다리 걷어차기’로 국제적으로 권위 있는 경제학상인 뮈르달상을 수상했다. 신장섭 교수는 한국에서 14년간 경제지 기자로 근무하다가 1999년부터 싱가포르국립대에서 한국과 싱가포르 대만의 성장전략을 비교 연구해 왔다. 두 사람은 한국을 잘 알면서도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한국 경제를 경험적으로 연구해 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두 학자가 2002년 영문판으로 먼저 출간한 이 책은 1997년 한국의 외환위기에 대한 뻔한 통념들에 대해 강력한 의문을 던진다. 그 통념이란 다음과 같다. 부패한 정부, 재벌의 과당경쟁과 중복투자, 그리고 이들과 결탁해 ‘도덕적 해이’에 빠진 금융권의 특혜대출이란 악순환이 낳은 구조적 재난이다. 하나 더, 한국경제를 세계경제의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제때에 선진화하지 않아서 발생한 ‘내재된 실패’라는 시각도 숨어 있다.

저자들은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한국경제의 진정한 저력이 바로 ‘국가-은행-재벌 연계 시스템’에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들은 미국 경제사학자 알렉산더 거셴크론이 제시한 후발국의 추격 전략의 일환으로 발전주의 전략의 유효성을 역사적으로 추적한다. 또 선진국 대기업과 전략적 연계를 취하는 보완전략을 택한 싱가포르와 대만, 정부가 산업금융을 통해 ‘선택과 집중’으로 재벌을 육성한 한국의 사례를 비교한다. 그 결과 한국은 중소기업 취약 등 불균형발전의 약점이 있기는 하지만 하이테크 분야에서 선진국 대기업과 대등한 경쟁을 벌일 수 있는 경쟁력을 확보했다.

저자들은 이어 1997년 위기는 한국경제의 구조적 위기가 아니라 오히려 국가-은행-재벌 연계의 발전주의 전략을 포기하고 ‘영미식 주주자본주의’로 체질을 바꾸려 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정실자본주의’와 ‘대마불사론’ 등 한국에 대한 비판이 과장됐다는 점도 다양한 통계와 과거사례 분석을 통해 입증한다.

저자들은 현재 한국경제의 위기가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의 경제 관료와 학자들이 군부통치와 발전주의를 샴쌍둥이로 잘못 판단한 것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1997년의 위기는 김영삼 정부가 △산업정책 포기 △금융시장의 급격한 개방 △재벌규제 강화 등으로 한국 경제성장의 동력이었던 발전주의 전략을 포기하고 시장만능주의에 심취한 결과라는 것이다. 또 김대중 정부의 공공부문, 재벌, 금융 구조조정은 국가-은행-재벌의 유기적 연결고리를 절단함으로써 재벌기업의 투자 위축과 400만명에 이르는 신용불량자만 양산했다고 비판한다.

저자들은 영미식 주주자본주의 같은 ‘이론적 이상’보다는 투철한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업그레이드된 국가-은행-재벌 연계의 추격시스템을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은 무엇보다 IMF 관리체제 졸업 후에도 저성장의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한국의 현실이 아닐까.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