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이 천사]<14>‘교도소 선생님’ 김영숙 가정문화원 원장

  • 입력 2004년 4월 2일 18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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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 매주 토요일 안양 교도소를 찾아 재소자에게 한글과 영어를 가르치는 김영숙 가정문화원장.
20년간 매주 토요일 안양 교도소를 찾아 재소자에게 한글과 영어를 가르치는 김영숙 가정문화원장.
매주 토요일 경기 안양교도소를 찾아 전과 3범 이상의 재소자들을 상대로 한글과 영어를 가르쳐 왔다. 20년 동안 단 한차례도 거른 적이 없다.

교도소를 마치 제집 드나들 듯이 하는 가정문화원 김영숙(金英淑·61·여) 원장. 그에게 교도소 강의는 일상의 한 부분이나 마찬가지다.

왜 그는 이 일을 하는가. 세상과 격리된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무엇을 느낄까.

“20년 전 한 친지로부터 교도소에서 강의를 해보라는 권유를 받았을 때 두렵고 무서웠어요. 범죄자로 가득한 곳에서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1년을 고민했죠. 하지만 첫 만남에서 그들도 똑같은 인간임을 깨달았습니다.”

김 원장은 재소자들을 ‘제자’라 부른다. 주는 게 있으면 받는 게 있는 걸까. 재소자들은 그를 ‘어머니’라 호칭한다. 한 재소자는 그에게 보낸 편지에서 ‘당신은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사랑을 느끼게 해 준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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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과정을 마친 한 40대 재소자는 한글을 배운 뒤 세상이 밝아졌다고 하더군요. 사방에 흩어져 있기만 하던 글자의 의미를 알게 되면서 사회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는 거죠. 한순간의 실수로 죄인이 됐지만 새사람으로 바뀌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진한 보람을 느낍니다.”

지금까지 김 원장의 가르침을 받은 재소자는 500여명. 대학을 졸업해 취직하거나 외국에 나가 사업가로 성공한 사람도 있다. 더러 목회자가 된 경우도 있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김 원장이 한글과 영어 교재로 성경책을 이용한 영향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끔 자신이 가르쳤던 재소자를 다시 교도소에서 만났을 땐 억장이 무너지는 허탈감을 느끼기도 한다.

1967년 이화여대 약대를 졸업한 그는 마흔이 넘은 84년 뒤늦게 합동신학대에 입학해 전도사가 됐다. 이때부터 재소자 교육에 뛰어들었다.

가정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달은 것도 이때였다. 결손가정뿐 아니라 부유한 집에 살면서도 범죄를 저지른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 가족이 자주 대화하고 오순도순 지낸다면 문제아가 나오지 않는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95년부터 가정문화원을 운영하고 있는 것도 가정의 소중함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다. 그는 남편인 두상달(杜上達·65) 칠성산업 대표와 함께 기업이나 연수원 등에서 가정교육, 부부대화법 등을 강의하고 있다.

김 원장은 삶이 다하는 날까지 교도소를 계속 찾을 예정이다. 고달프고 힘들 때도 있지만 ‘행복은 나눌수록 커진다’는 믿음을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황태훈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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