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삶]김원겸/걸어야 산다는데…

  • 입력 2004년 3월 8일 19시 15분


코멘트
고향을 찾은 다음날 아침, 혼자서 들로 나갔다. 갈아엎어 더 강한 적갈색을 띠는 황토밭들, 초가지붕처럼 완만한 곡선을 이루는 언덕들을 바라보며 일차로 아스팔트 길을 걸었다.

어릴 때 큰 저수지가 있는 친구네 마을로 가노라면 늘 그 길로 가곤 했다. 당시에는 자갈도 깔리지 않은, 리어카가 간신히 지나다닐 너비의 흙길이었다.

이제 그런 길로는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듯하다. 마을들은 말쑥한 아스팔트 길로 이어져 있다. 내가 멱 감고 참외서리 하러 가던 그 좁은 길들은 영영 폐기되었다고 할까. 솔숲 길들은 그 굽은 소나무들과 함께 아예 자취를 감춰버렸고.

나는 어른이 되어 그 길들을 좋아하게 됐다. 암으로 위를 도려내는 수술을 받고 나서였다. 서른 살, 첫 아이 태어난 지 반년도 되지 않았을 때였고, 제대 뒤 안정된 일터를 얻은 지 한 해 조금 지나서였다.

내 걷기는 그때부터 시작됐다. ‘살고 싶으면 열심히 걸으라’는 의사의 말을 신의 말씀처럼 받아들였다. 항암 주사로 피골이 상접한 몸에 집에서 10여분 거리에 있는 관악산 자락 약수터까지 가기에도 힘이 부쳤지만,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나마 걷노라면 당장 몸 상태가 좋아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걷는 동안에는 죽음에 대한 공포랄지 잡념들이 사라졌다. 수술 후 반년쯤 지났을 무렵부터는 격일근무 중 집에 있는 날이면 잠자는 시간 빼고는 대부분을 걷기에 할애했다. 그로부터 또 반년 뒤에는 아예 서울을 떠나 근교 농촌 마을로 이사를 갔다.

만 하루의 근무를 마치고 귀가해 점심을 먹고 나면 버릇처럼 물과 간식을 넣은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서곤 했다. 늘 목적지는 없었다. 동네를 벗어나 논밭 사이 조붓한 길들을 따라 산 넘고 개울 건너, 마을들을 순례하며 마냥 가는 거였다.

병은 재발하지 않았다. 나는 걷기 덕이라고 믿는다. 걸으면서 곧잘 고향 길들을 떠올리곤 했다. 객지로 나와 죽을병에 걸린 나를 살려준 걷기의 시작은 이미 그때부터 시작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 친구 집으로 향했던 오솔길을 통해 태양빛과 소나무 숲의 피톤치드와 자연 속 음이온 따위에 내가 잘 길들여져 있었던 게 아닐까.

언제부턴가 고향에 내려가면 꼭 산책에 나서고, 사라진 솔밭들과 꼬불꼬불 가느다란 그 길들을 더더욱 아쉬워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걷기 위해 이사가 살았던 그 동네도, 내가 이사 나올 즈음에는 산등성이들이 무참하게 잘리고 있었다. 서낭당이 있던 으슥한 숲길, 까치독사가 가로막던 언덕길, 동양화 풍경 같던 마을들이 있는 그 공간 속으로 어느 날 갑자기 들어갈 수가 없었다. 다 깔아뭉개고 아파트 단지를 조성한다고 했다.

거기뿐이랴. 지금 10여년째 살고 있는 이 신도시 주변도 마찬가지다. 나지막한 구릉과 숲, 길들이 자취를 감췄고 지금은 더 빠르게 사라지는 중이다. 그들의 흔적이 지워지는 것은 너무 간단했고 무참했고 순식간이었다. 사라진 오솔길과 길을 따라 있던 풀꽃과 나무와 새들이 못내 아쉽다. 또 앞으로 그런 운명을 맞을 다른 생명들을 생각하면 더 안타깝다.

김원겸 동요작사가·지하철 역무원

:약력:

1955년생. 지하철 역무원으로 일하는 틈틈이 자녀들에게 노래를 써주다 보니 어느 날 동요작가가 돼 있었다. 2003 MBC 창작동요제 대상을 받았고, KBS 동요제에서도 3차례 대상을 수상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