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이철용/분양원가 공개 공방

  • 입력 2004년 2월 5일 18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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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에서 원가를 공개하는 나라는 없다.”

아파트 원가공개 얘기가 나올 때마다 주택건설업계가 제시하는 반대 논거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영국, 자메이카나 동유럽 국가들에서는 공기업은 물론 민간기업도 공공성 있는 재화나 서비스에 대해서는 원가를 공개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특히 민영화 기업이 공급하는 전력 가스 통신 등의 제조원가는 100% 공개되고 사회적 합의를 거쳐 가격이 결정된다고 한다.

이런 공공서비스 가격은 소비자물가상승률을 기준으로 업계, 소비자, 언론 등이 참여하는 공개토론을 통해 결정된다. 원가가 세목별로 공개되고 원가절감 가능 폭이 논의된다.

“영국의 공기업 민영화가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은 소유권을 민간에 뒤탈 없이 잘 넘겼기 때문만은 아니다. 민간의 자율과 재규제(re-regulation)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의 원가공개는 4일 서울시의 상암 7단지 40평형이 국내외를 통틀어 처음이다. 건설업계는 이를 ‘이명박(李明博) 서울시장의 선심 쓰기’로 폄훼한다. 하지만 수백∼수천가구 규모의 아파트단지라는 상품은 한국에만 있다. 공공성 측면에서 한국의 아파트는 홍콩이나 미국의 그것과 다른 측면이 있다는 반론이 나올 만하다.

아파트가 완전한 사적 재화라면 원가공개는 시장경제 원리에 어긋난다. 하지만 △공개념 성격이 있는 토지를 기초로 하고 있고 △생필품이며 △이 때문에 생산 및 배분과정에서 정부 지원을 받기도 한다면 ‘완전한 사적 재화’라는 주장은 하기 힘들어진다.

학계 일각에서는 “이번 기회에 주택공사가 짓는 아파트나 토지공사가 조성한 택지에서 공급되는 민간아파트 등 공공성이 높은 아파트에 대해 분양원가 공개를 의무화하자”고 제안한다.

정보 공개에 따른 비용과 편익을 적절히 비교해볼 필요가 생긴 것이다.

이철용 기자 ic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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