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삶]최세현/숲의 날숨, 나의 들숨

  • 입력 2003년 11월 14일 18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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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3년이 지났다. 삶의 방식을 송두리째 바꾼다는 생각으로 배낭 하나 메고 겨울로 접어드는 이곳 산청의 둔철산 자락을 찾은 지도.

그땐 이 아름다운 가을 숲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자본의 논리로부터 한 발짝이라도 비켜서야겠다는 생각으로 귀농학교와 통나무학교를 차례로 수료하면서 나름대로 정신적 무장을 했고 아내와 아이들을 뒤로 한 채 충북 괴산의 한 공동체 농장을 찾았다. 그곳에서 1년2개월간 귀농 실습생 딱지를 달고 몸만들기를 하고서야 겨우 인연이 닿았던 곳이 이곳 둔철산 자락이었다. 당장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와 생계 문제 해결이 급선무였다. 그러니 가을 숲이 제 아무리 아름다웠다 해도 내 눈에 보일 리 있었겠는가.

그해 가을부터 다시 강행군은 시작됐다. 둔철산의 무시무시한 골바람과 매서운 추위 속에서 3개월 만에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가 될 자그마한 통나무집을 지었다. 그리고는 공동체 농장 시절 배웠던 자연친화적 양계를 위해 닭장을 만들었다. 병아리들이 들어오고 그 병아리들이 자라 생명력이 깃든 유정란을 낳기 시작하고 그 유정란이 회원제로 직거래되기까지, 결코 쉽지 않은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어려움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낮게 엎드린 채 흘렸던 땀방울 덕이었을 것이다.

한 해, 두 해 삶의 틀이 잡혀가면서 내가 숲 속에 살고 있음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작고 하찮게 보이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라도 나름의 존재 의미가 있고 그것들이 모여 조화로운 숲이 된다는 것도 알게 됐다. 나의 날숨이 숲의 들숨이 되고 숲의 날숨이 다시 나의 들숨이 됨을 느끼면서 숲과 내가 진정으로 함께 숨쉬고 있음도 깨달았다.

그렇게 숲의 참 모습이 눈에 들어오면서 숲이 주는 수많은 혜택들을 어떠한 형태로든 나누고 싶은 생각에 어설프게나마 숲 공부를 시작했다. 풀이름, 나무이름 하나 더 아는 것보다는 숲의 조화로움을 어떻게 읽고 어떻게 가슴에 담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숲과 만나는 연습을 되풀이했다. 그렇게 만나는 숲은 언제나 다른 모습으로 새롭게 다가왔다.

숲과의 만남도 만 3년이 지난 요즈음, 숲은 내 삶 속 깊숙이 들어와 있다. ‘호텔 꼬꼬’-우리 닭장을 그렇게들 부른다-가 자연친화적일 수 있는 까닭도 숲 덕택이다. 숲 속의 부엽토와 낙엽을 닭장 바닥에 약 30cm 두께로 깔아준다. 부엽토 속에는 숲 속의 청소부인 엄청난 수의 미생물들이 살고 있어 계분을 열심히 분해시킨다. 그러니 닭똥 냄새가 나질 않는다.

‘호텔 꼬꼬’에서는 암탉과 수탉들이 맘껏 뛰어놀면서 건강한 유정란뿐 아니라 훌륭한 퇴비까지 만들어진다. 그 퇴비는 밭으로 나가 풀을 키우고 그 풀은 다시 닭에게로 돌아간다. 이렇듯 모든 것들은 어떠한 형태로든 서로 연결돼 도움을 주고받는다. 이것이 바로 지속가능한 생태적 순환의 모습이 아닐까? 이 순환 고리의 중심에 바로 숲이 자리하고 있다.

이즈음 둔철산 자락의 숲은 저물어가는 한 해를 아쉬워하듯 마지막 불꽃을 피우고 있다. 하지만 숲은 이제 곧 가진 것 모두를 땅으로 되돌려 보낼 것이다. 그런 숲의 모습에서 비움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배우게 된다. 숲의 그 깊디깊은 모습을 알기엔 아직도 한참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럴수록 숲에 말도 걸어보고 만져도 보고 가슴으로 안아도 보면서 더 친해져야겠다. 그러면서 내 스스로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벌레 한 마리가 되는 연습을 매일매일 해볼 작정이다. 그리고 이 기쁨들을 혼자 누릴 게 아니라 모든 이들과 나누고 싶다. 숲이 언제나 제 자리를 지키듯 나 또한 언제나 숲 속에 있으려 한다.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집 근처 가까운 숲이라도 찾아 마음을 열고 숲과 함께 호흡을 나누어 보시길….

▼약력 ▼

1961년생. 11년간의 직장 생활을 접고 경남 산청 둔철산 자락으로 귀농해 자연친화적 양계로 유정란을 생산하고 있다. 숲 연구소 산청학습원을 세워 틈틈이 숲 해설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최세현 농부·숲 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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