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서 만난 삼국유사]전북 고창 선운사에 가면…

  • 입력 2003년 11월 13일 17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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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고창군 선운사는 동백꽃이 필 수 있는 한반도의 가장 북쪽에 자리해 있다. 다만 꽃이 피는 때를 맞춰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언제 가도 사철 푸른 동백잎을 만나고, 미당 서정주의 ‘선운사 동구(洞口)’가 새겨진 시비를 보러 가는 재미로 설레는 이도 있다. 그가 태어난 선운리 마을에는 이제 미당 문학관이 들어서 있는데, 넓은 마당에 시원스럽게 자리 잡은 이 집을 둘러보는 일도 즐겁다.

시비는 제목처럼 선운사 동구에 섰고, 미당의 친필이 동백꽃 대신 다정스럽게 다가온다.

“선운사 골째기로/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읍디다/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읍디다.”

그런데 ‘미당시전집’을 읽다가 눈을 다시 씻어야 할 일이 생겼다.

여섯 줄에 불과한 시에서 선운사가 지닌 소박함과 미당 특유의 위트를 만끽하는 것이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단 한 단어, 다섯째 줄의 ‘상기도’가 주는 시적 울림에 떨었던 것인데, 전집에는 이 말이 ‘오히려’로 바뀌어 있다.

고창읍성 성곽을 따라 한 바퀴 도는 데는 1시간 정도 걸린다. 세 바퀴 돌면 극락왕생한다고 하는데, 한 바퀴 돌기에도 숨이 차니 세 바퀴 돌 수 있다면 틀림없이 무병장수하겠다.
(오른쪽}고창읍 도산리의 여염집 뒤란에 있는 탁자식 고인돌이다. 이 근처 죽림리나 상갑리는 마을 전체가 온통 고인돌투성이다.

미당이 그렇게 고쳤을까? 물론 이 구절 이외에도 바뀐 부분이 있지만, 자타가 공인하는 시의 장인(匠人)이 손 댄 것 치고는 패착이 아닐 수 없다.

‘상기도’를 ‘오히려’로 바꾼 데에는 이 말이 강원도나 함경도의 사투리라는 데 까닭을 둘 수 있겠다. 전라도에서 쓰지 않는 말을 여기 집어넣지 못하겠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막걸리 집 여자의 쉰 목소리에서 희미한 기억의 지난봄 동백꽃을 떠올리는 시인의 가슴을 ‘상기도’라는 말 이상으로 표현해 줄 단어가 없었을 텐데.

사실 선운사는 삼국유사에 나오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굳이 이곳을 찾는 것은, 미당의 시에서 얻는 담백하면서도 처연한 어떤 느낌처럼, 백제 불교의 묘한 분위기가 이 절을 감싸 안고 있기 때문이다.

삼국유사에 소개된 혜현(惠現·570∼627)이라는 백제 승려 이야기에서도 그런 느낌을 지우지 못한다. 그는 처음에 수덕사에서 지내다 강남의 달라산으로 옮겼다는데, 강남이나 달라산이 어디를 가리키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산중에서 고요히 앉아 세상을 잊고 생애를 마쳤다고 하니, 우리는 그곳이 금강 이남 곧 내장산이나 선운산을 중심한 어디쯤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그가 죽고 난 뒤 시신을 석실에 옮겨두자, 호랑이가 모두 뜯어 먹어 뼈만 남고, 경전을 부지런히 외우던 혀만 살아있었다고 한다. 이것은 법화신앙(法華信仰)이 뿌리 깊었던 백제 불교의 특징을 보여주는 예이다.

선운사 주변에 서너 개의 암자가 남아 있다. 어디를 올라도 분위기는 비슷한데, 신라 진흥왕이 말년에 수도하였다는 진흥굴이 있어서, 선운사의 창건자를 진흥왕으로 보는 설도 있다. 도솔암 마애불상은 조선조에 조성된 것 같지만, 경주 남산에서 보던 것들과는 색다른 분위기가 있다.

그런 선운사에 요즈음 새로운 명물이 하나 들어섰다. 무슨 거창한 불상 이야기가 아니다. 한 스님이 일궈낸 차밭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 차밭을 가꾼 이는 우룡(雨龍) 스님. 6년 전, 세상에서 쌓을 공덕이 이것밖에 없다고 생각한 그는 선운사 골짜기마다 버려진 땅에 차나무를 심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지금은 무려 8만여평.

선운사 아랫마을에서 태어난 스님은 스물여덟 늦은 나이에 출가를 했다. 초등학교도 못 나오고 서울로 올라가 갖은 고생 다해 보고, 돈도 벌 만큼 벌어 보았다. 그러고도 끝내 출가를 결심한 속내를 우리 같은 속인은 감히 묻지 못한다. 파란만장한 지난 6년간의 이야기도 여기 다 적을 수 없다.

갈라진 손등이 언뜻언뜻 보였다. “전생에 지은 업이 많아서”라고 말끝을 흐린다. 그러면서도 차를 심은 까닭만큼은 단호하게 말한다. “내 죽은 뒤에 선운사 스님들은 이 차밭만으로도 먹고살거요. 공장 하나 지으면 우리 동네 사람들 다 먹고살거고. 나 이거 하나 하고 죽을랍니다.”

골짜기의 단풍은 붉게 타는데, 오후의 햇빛을 받는 차밭은 싱싱하게 푸르렀다.

글=고운기 동국대 연구교수 poetko@hanmail.net

:촬영노트: 선운사 차밭은 산비탈 묵정밭을 일구어 만들었기 때문에 보성 차밭처럼 확 트인 모습은 아니지만 아기자기한 조형미를 갖추고 있다.

석상암 주변과 참당암 뒤편의 차밭이 가장 볼만한데 이곳에는 단풍나무, 감나무들이 심심치 않게 박혀 있어 가을이면 단풍과 어울린 초록의 차밭을 찍을 수 있다.

차밭 사진을 찍으려면 아침 일찍 이슬이 마르기 전에 가는 것이 좋다. 멀리 안개가 옅게 끼어 있고, 찻잎이 햇빛에 반짝일 때 가장 생기 있는 사진이 나온다.

차나무에는 가을부터 초겨울까지 찔레꽃보다 조금 큰 흰색 꽃이 핀다. 꽃이 지면 열매가 달리는데, 1년 동안 자라서 이듬해 가을에야 다 영근다. 바로 지금이 차나무 꽃과 열매 사진을 한꺼번에 찍을 수 있는 좋은 때다.

양 진 다큐멘터리 사진작가tophoto@korea.com

▼'여행지서 만난 삼국유사' 선운사 주변엔…▼

고창에서 볼거리로 또 하나 이름난 것이 고인돌 유적지. 고창읍 매산리의 지석묘군, 도산리의 지석묘, 아산면 상갑리와 운곡리의 지석묘 등이 있다.

한편 고창읍 읍내리에 있는 읍성은 조선 초기에 만들어졌는데, 모양성이라고도 하는 것은 이 지역이 백제 때 모량부리로 불렸던 데서 연유한다고 본다.

고창은 조선 후기 판소리의 집대성자 신재효의 고향이다. 고창읍 읍내리에는 그의 고택이 남아있다. 이와 더불어 부안면에 인촌(仁村) 김성수 선생의 생가가 있고, 거기서 가까운 곳에 서정주의 생가와 미당문학관이 자리잡고 있다.

다시 고창으로 나와 전남 장성으로 넘어가는 15번 지방도로의 고갯마루 어름에 석정온천이 있다. 대규모 온천단지가 조성 중인데, 희귀하다는 게르마늄 온천탕이 고창의 새 명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지금은 ‘석정온천’이라는 단 한군데만이 문을 열었다. 여독을 풀기에 매우 훌륭한 곳이다.

이 온천에서 바라보이는 산 위에 미소사라는 작은 절이 있다. 절 이름만큼이나 아름다운 미소를 간직한 이들을 만나 볼 수 있을 것이다.

22번 국도를 따라가다 선운사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풍천 장어집이 즐비하고, 복분자술과 함께 먹는 이곳의 장어구이는 이미 정평이 나있다. 다들 원조를 자랑하지만, 어느 집을 들어가도 그다지 실망하지 않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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